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디지털영상 | 리뷰

단편 애니메이션, 볼륨을 늘려라

2011-01-04


한국에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애니메이션 학과가 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애니메이션 전문 입시 미술학원이 있는 곳은 아마도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젊은 인재들을 육성한다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그 노력을 반영이라도 하듯 요즘 세계의 유명 애니메이션 영화제의 초청작들을 살펴보면 한국 작품이 유독 많은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다소 실망스런 부분도 없지 않다. 꾸준히 활동하는 소수의 작가들 이외엔 대다수의 작품이 대학교 졸업 작품이라는 것. 그것들 대부분이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는 것들이다.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산업전선으로 뛰어들고 대다수가 애니메이션과 약간의 교차점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나 디자인 등으로 진로를 선회한다. 그들을 받아줄 애니메이션 회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4년 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은 대체 무엇이며 언제까지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글 | 박재옥 애니메이션 감독(okyi98@naver.com)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인터뷰 통역 │ 서동욱

얼마 전 남산의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2010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영화제 수상작 초청전이 열렸다. 4대 애니메이션 영화제란 안시, 자그레브, 히로시마, 오타와 영화제를 말하며 이들 영화제에서 수상한 알짜배기 단편들을 상영하는 그런 영화제였다. 그 중 마시마 리이치로 감독의 단편작품 섹션이 있었다. 단편작품이라면 보통 어렵고 난해한 작품을 떠올릴 수도 있는데 마시마 감독 작품은 코믹하고 중독성이 매우 강한 특징이 있었다.

마시마 감독은 원래 치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졸업 작품으로 만든 <스키 점프 페어> 가 안시 영화제를 비롯 전세계 30개국 이상에서 초청 및 수상하게 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 후 일본에서 발매된 3장의 DVD 판매누계가 50만부를 돌파하는 등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마시마 감독은 단편 애니메이션의 상업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제에서 만난 마시마 감독의 단편 섹션에서 <시네마 경마> 시리즈를 볼 수 있었다. 우선 경마대회의 팡파르가 울리며 경주마 소개가 시작된다. 경주마 캐릭터가 다소 황당하기 짝이 없는데 예를 들면 펜더나 기린 따위를 타기도 하고 사람 두 명이 깡통 말을 뒤집어쓴 ‘소도구의 슬픔’이라고 불리는 경주마가 경주에 참가하기도 한다. ‘핑크 페로몬’은 페로몬을 풍기며 다른 기수들을 현혹시키는가 하면 ‘스시보이’는 스시워크라는 기술을 사용해 말이 두발로 춤을 추며 달리기도 한다.

경주가 진행될수록 승부는 예측하기 힘들다. ‘헐리우드 리무진’에 탑승한 쌍둥이 기수가 코사크 댄스를 추며 앞서 나가다 보면 ‘스시보이’가 스시워크를 추며 역전하기도 하는 등 언제 어떤 기수가 황당한 기술을 쓰며 추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단편 작품이 여러 개의 시리즈 물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다. 일본식 표현으로는 ‘볼륨을 늘린다’고 한다. 경주마 소개 이후 초반부는 동일한 영상이 사용되지만 중, 후반 레이스부터는 다른 경기 양상이 보여지면서 경기 결과가 바뀌게 된다. 앞부분에 동일 영상이 계속 보여지기 때문에 다소 지루해질 수도 있지만 감독은 이점을 고려해 경주마를 소개하는 해설자의 내레이션에 변화를 주어 그런 점을 최소화 하였다.

시리즈 물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상업적인 측면이다. DVD는 장편에 준하는 러닝타임이 요구되는데 이렇게 단편이라 할지라도 여러 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어있다면 이런 부분을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마니아 층에 의해 활성화된 일본 DVD시장이 한 몫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단편보다는 장편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마시마 감독이 저예산으로 최대의 러닝타임을 낼 수 있는 반복되는 스포츠라는 소재를 선택한 점과 3D소스를 재활용하는 측면에서의 경제적인 연출방식은 개인작가가 장편을 만드는데 어려움을 다소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마시마 감독과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흥미로웠던 사실은 이 경마 애니메이션 영상을 통해 실제로 일본 경마 협회 사이트에서 사이버 경마를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실제 돈 거래가 오가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머니를 통해 진행되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이 시리즈는 마시마 감독의 <스키 점프 페어> 시리즈를 본 일본 경마 협회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경마는 대단히 활성화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그것처럼 젊은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없다고 한다. 때문에 일본 경마 협회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보고자 마시마 감독에게 의뢰를 한 것이다.

처음에는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홍보를 시작했다고 한다. 우선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관객들에게 경마 번호가 표기된 팜플렛을 나눠준다. 극장의 예고편 시간에 마시마 감독의 경마 애니메이션이 상영되고 경마 번호와 우승 말이 일치한 관객에게는 소정의 상품이 주어지게 된다. 이런 식의 홍보방법은 많은 돈이 들어가는 TV광고보다 훨씬 실질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다.

비록 사행성 게임이라고 할지도 모르나 단편을 만드는데 있어 상업적인 접근방식은 주목할만하다. 마시마 감독은 이외에도 <도쿄 온리픽> 이라는 장편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기상천외한 스포츠’라는 소재로 여러 명의 단편작가들이 갖가지 기법으로 만든 단편을 하나로 묶은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의 프로듀싱을 마시마 감독이 직접 하였는데 앞서 언급했던 장편 애니메이션 DVD의 상업적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상업성이 떨어지는 단편 애니메이션도 동일한 키워드를 가지고 볼륨을 늘려나가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라는 것이다.

식사 자리에서 마시마 감독은 최근 한국의 단편 작가들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며 그 가능성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다. 필자가 단편 애니메이션의 프로듀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자 마시마 감독은 그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결국 좋은 프로듀서가 없다면 자신이 직접 프로듀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작품을 만드는데 모든 힘을 쏟은 나머지 정작 작품을 홍보하는 일에는 인색했던 우리네 작가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 아닌가 싶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데 정답이 없듯이 아마 좋은 프로듀싱에도 정답은 없을 것이다. 더 이상 픽사나 지브리 혹은 포켓몬이나 뽀로로만 상업적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마시마 감독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단편의 볼륨을 늘리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시장상황은 일본과는 다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만의 또 다른 어떤 것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일본 경마 협회 - 저팬 월드컵 2

스키 점프 페어

facebook twitter

이은정
잡지디자이너 과심은 여러분야에 관심은 많으나 노력은 부족함 디자인계에 정보를 알고싶어함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