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디지털영상 | 리뷰

돼지의 왕, 그 첫걸음의 의미

2011-03-15


한국에서 ‘독립 영화’란 거대 자본에 기대지 않고 작가의 생각과 의도가 잘 드러나게 만든 영화를 일컫는다. ‘독립 애니메이션’ 또한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독립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은 대다수가 단편일 뿐이었다. 지금까지의 장편 애니메이션은 제작하는 데는 많은 자본이 투자하고 투자한 자본을 회수하기 위해 충분히 상업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이 얼마나 상업적이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글 | 박재옥 애니메이션 감독(okyi98@naver.com)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원더풀 데이즈’, ‘아치와 씨팍’, ‘오디션’ 등 우리를 기대하게 만들었던 많은 장편 애니메이션들은 원활하지 못한 제작비 수급 문제 때문에 난항을 겪었다. 결국 제작일정은 무기한 연기되었고 영화가 세상에 나왔을 때는 이미 그 시기를 한참 놓쳐버린 영화일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영화들의 릴레이 속에서 결국 한국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1년에 한편이라도 만들어진다면 반가운 상황으로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많은 자본이 들어가고 위험이 큰 장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가 점점 꺼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은 이런 상황 속에서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약 7개월 전 남산의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돼지의 왕’ 제작 발표회가 열렸다. 그리고 7개월이란 제작기간이 지난 지금 총 120분 분량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98%이상의 영상이 완성되었고 현재는 성우 녹음을 진행하고 있다. 총 제작비 1억 2천, 혹자는 작품의 완성도를 의심할 수 있겠지만 직접 본 ‘돼지의 왕’의 완성도는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2002년 ‘지옥’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독특한 자기 색깔을 선보인 바 있는 연상호 감독은 2006년에 ‘지옥: 두 개의 삶’에 이어 2008년에 ‘사랑은 단백질’을 연출하며 그 연출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그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때문에 연상호 감독은 한동안 스튜디오의 운영을 위해 외주 애니메이션을 받아 제작을 진행했다. 하지만 들쑥날쑥한 외주 일의 성격과 지불 받아야 할 돈을 못 받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국 연상호 감독은 스튜디오를 접기로 결심한다.

그 동안 동고동락했던 스탭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을 때 연상호 감독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후 연상호 감독은 한 영화 제작사와 함께 영화시나리오를 진행한다. 그러나 1년 가까이 진행되던 시나리오는 결국 진행되지 못하고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영화계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니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후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던 연상호 감독에게 뜻밖의 좋은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상상마당’에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지원한다는 것. 외주제작을 하면서 틈틈이 ‘돼지의 왕’ 콘티작업을 진행했던 연상호 감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된다.

‘돼지의 왕’ 콘티는 믿을 수 없는 제작기간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시크릿 노트였다. ‘3D레이아웃’이라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방식을 가지고 만들어진 이 콘티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3D프로그램에서 카메라를 설치해 레이아웃을 잡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반 3D애니메이션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의 화면을 보면 3D애니메이션이 아닌 2D애니메이션의 비주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메인 프로덕션이 시작하기 전에 이정도 완성도의 콘티를 완료하고 시작한 점은 제작 일정을 앞당길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콘티와 현재 완성본 영상의 싱크로율은 100%에 가깝다고 한다. 이렇게 3D레이아웃으로 잡힌 이미지는 인물의 움직임과 배경이미지의 가이드라인이 되는데 배경이미지는 2D로 제작이 되고 인물의 움직임은 상황에 따라 디지털 2D 작화와 3D 카툰렌더링이 번갈아 가며 사용이 된다고 한다.

3D 기술이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까지 표정의 미묘한 변화라던가 옷 주름의 표현 등이 가능하기 위해선 많은 제작비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연상호 감독은 클로즈업 샷과 같은 부분을 2D 디지털 작화를 사용했다. 이미 레이아웃된 3D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일반 종이 작화보다 훨씬 단 시간 내에 제작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외에도 2D와 3D기술을 넘나드는 연상호 감독만의 노하우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2.5D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체계적인 제작 기획 진행 속에서 ‘돼지의 왕’은 불과 반 년 만에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물론 이 반년이란 기간은 엄밀히 따지면 메인 프로덕션이 진행된 기간이라고 보아야겠지만 어쨌든 그간의 장편 애니메이션들이 턱없이 늘어지는 제작기간을 가지고 있는 점을 감안했을 때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은 탄탄한 프리 프로덕션을 통해 얼마나 효율적인 작업이 진행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상업적’이라는 말은 적어도 들어간 자본보다 수익이 많을 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상업의 논리로 만들어진 상업적이지 못했던 장편 애니메이션 속에서 ‘돼지의 왕’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우선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비교적 제작지원의 성격이 강한 ‘상상마당’과 함께 제작한 것이 주요했다. 또한 독립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향후 수익모델을 생각해봤을 때 꽤나 상업적이라는 점이다. 우선 극장 상영 시 손익분기점이 매우 낮다는 점도 들 수 있지만 그보다 해외 판권이나 일본 DVD시장, IPTV 등 창작 영상물의 수익모델 자체가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물론 이 애니메이션이 저예산으로 가능했던 것은 연상호 감독 개인의 열정과 희생, 같이 참여한 스탭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린 이를 기억해야 하고 또한 그 결실이 맺어졌을 때 노력한 이들에게 정당하게 그 열매가 돌아가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작품이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스탭들은 하나 둘 떠나가고 있다. 그들이 다시 한곳에 모이게 될 그날을 떠올려보며, ‘돼지의 왕’ 극장 개봉을 기대해본다.

’돼지의 왕’ 예고편 링크




스튜디오 다다쇼

facebook twitter

이은정
잡지디자이너 과심은 여러분야에 관심은 많으나 노력은 부족함 디자인계에 정보를 알고싶어함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