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0
여기에 매우 가치 있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많은 이들의 정성과 땀 그리고 열정이 그 안에 녹아 든 애니메이션. 지난 10년 동안 느리게, 느리게, 그리고 꾸준히 10만장의 그림이 모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작품 ‘소중한 날의 꿈’.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작품을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꿈꾸게 만들어준 작품. 이제 그 작품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글 | 박재옥 애니메이션 감독(okyi98@naver.com)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소중한 날의 꿈’은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안재훈, 한혜진 감독의 공동 연출 작품인 이 작품은 사춘기 소녀 ‘이랑’의 꿈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구에게나 한번쯤 지나갔을 시절 사춘기, 우리는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꿈꾸고 경쟁하고 또 좌절하기도 했었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일 가지고 많은 고민과 방황을 했던 시절... 이 작품은 우리에게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기억하게 만든다.
시사회에서 만나 본 ‘소중한 날의 꿈’을 보면서 그 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한국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인물들의 생김새부터 우리의 얼굴, 우리의 표정을 담아내고 있었고 배경미술 또한 80년대 시골마을의 그것을 제대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작품에 참여한 감독과 스텝들이 얼마나 이 작품에 정성을 기울여왔는지 한 컷 한 컷이 너무나 소중한 장면들로 꽉 차 있었다.
또한 이 영화 곳곳에는 익숙한 인물들의 얼굴이 담겨 있다. 주연으로 나오는 철수와 수민이 각각 레슬링선수 최민호와 박혜진 아나운서를 모델로 한 것을 비롯, 왕년에 유명한 축구스타와 가수 분들의 모습이 종종 화면에 등장한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인물들을 찾아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될 듯싶다.
이렇게 정성을 기울여 제작된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은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에 모인 이들의 노력과 땀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많은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지브리의 작품 같은 멋진 2D 애니메이션을 만들길 꿈꾸지만 그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 작가들은 많지 않다. 기술은 있는데 기획력이 부재하거나 기획력은 좋지만 기술이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중한 날의 꿈’을 만든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는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스튜디오 중 하나이다.
직접 방문한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 곳곳에는 정성을 기울인 작은 소품들로 곳곳에 볼거리가 가득했다. 영화를 만들고 남은 몽당연필 하나 아무렇게나 버리지 않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마음가짐. 자세 등은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많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고 관객들을 만났다. 그들의 흥행 성적이 어떠했는가를 떠나서, 진심으로 작품을 만들고 영화란 무엇인가를 고민했던 작품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연필로 명상하기’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유치하던 시절, 한국 애니메이션계에는 완성조차 되지 못했던 수많은 실패작들 때문에 투자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만큼 제작자와 스튜디오 간의 신뢰는 이미 무너질 만큼 무너진 상황이었다. ‘연필로 명상하기’가 그 어려운 시절을 버텨온 것은 투자 받은 돈은 정직하게 쓰여야 한다는 마음가짐과 감독을 비롯한 스텝들의 헌신과 노력 덕분이었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품에만 매진하지 못하고 외주제작으로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근근이 이어온 ‘소중한 날의 꿈’.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연필로 명상하기’ 일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은 다행히도 다음 작품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연필로 명상하기’의 차기작 ‘메밀꽃 필 무렵’은 이미 투자가 진행된 상태. 그들이 보여준 끈기와 노력 그리고 그 정성에 투자자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희망을 그려가는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 그들의 값진 노력만큼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그들의 작품이 함께하는 시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