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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상 | 리뷰

핀셋으로 살아 움직이는 컷 아웃 애니메이션의 세계

2011-11-11


20세기 초에 애니메이션이란 기법이 알려지면서 아마도 회화 작가들 중 일부는 자신의 그림을 움직여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암이 풍부하고 묘사가 잘 된 그림일수록 그 그림을 한 장 한 장 그려내는 애니메이션 작업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그림스타일을 만화처럼 단순화시키는 것은 아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컷 아웃(cut-out) 애니메이션의 탄생에는 이런 예술가들의 자존심이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리스 시대부터 있어왔던 인형극, 그 중에서도 그림자 인형극에 그 기법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컷 아웃 애니메이션이란 그림의 조각들, 즉 종이나 천들을 오려서 만든 머리, 몸체, 팔, 다리 등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종이 인형을 조금씩 움직여가면서 촬영한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의 한 장르이다.

글 | 박재옥 애니메이션 감독(www.oktoons.com)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컷 아웃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러시아의 거장 유리 놀슈테인(Yuri Norstein)을 들 수 있다. 1974년작 ‘외가리와 학(Heron and Crane)’을 그 시작으로 컷 아웃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그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Tale of Tales)를 통해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게 된다. 거리감과 카메라가 가진 초점 기능을 활용해 공간감을 내는 멀티 프레임(여러 개의 유리판을 활용해 초점을 바꾸며 촬영하는 방식)을 도입해서 그 어떤 작품보다 시적으로 아름다운 영상미를 구현해 내었다.

얼마 전 SBS 창작 애니메이션 대상에서 학생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채현 감독의 ‘아침식탁’ 또한 컷 아웃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컷 아웃 애니메이션은 크게 관절이 연결된 방식과 연결되지 않은 방식으로 나뉜다. 관절이 연결된 방식은 실이나 리벳 등으로 몸체와 팔, 다리 등을 연결해 비교적 관절의 길이가 정확히 유지되면서 애니메이팅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반면에 관절이 없는 방식은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한 움직임을 선호할 때 사용된다.

작가가 원하는 움직임에 따라 여러 가지 팔과 다리의 모양, 혹은 다양한 얼굴표정의 표현을 위해서 수십 장의 그림조각이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아침식탁의 한 장면 중 아이가 숨을 쉬는 연기를 하기 위해 몸이 살짝 커졌다 작아졌다하는 애니메이팅이 나오는데 이 또한 여러 장의 OHP필름을 바꿔 가며 촬영한 결과물이다.

‘아침식탁’은 배경을 아래 레이어 유리판에 놓고 그 위 유리판에 놓인 캐릭터를 핀셋으로 조금씩 움직여가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김채현 감독은 컷 아웃 애니메이팅의 감을 익히기 위해 여러 번의 액팅 연습을 거쳤는데 상당수의 컷들이 롱 테이크였기 때문에 충분한 사전 준비와 연습 그리고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또한 ‘아침식탁’의 특징은 평면적이면서 컷 아웃으로만 가능한 연출방식에 있다. 배경에 있던 현관문 이 넘어지는 장면이나 어느새 바닥에서 숨어있던 엄마가 나타나는 장면은 컷 아웃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재미있는 연출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컷 아웃 애니메이션 기법은 기법의 특성상 한 장 한 장 그려나가는 애니메이션보다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의외로 영화제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기법중의 하나이다. 평면적인 연출방식과 이야기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수 십 수백 개의 그림조각을 가지고 핀셋으로 하나하나 움직임을 만들어 나가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애프터 이펙트나 기타 영상프로그램을 통해서 디지털 컷 아웃이란 방식도 활용되고 있다. 각각의 그림조각을 스캔해서 컴퓨터 프로그램 내에 관절을 심어 훨씬 편리하게 작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한 프레임 한 프레임 핀셋으로 옮겨가며 움직이는 아날로그 방식의 컷 아웃 애니메이션은 움직임 자체에서 왠지 모를 따뜻함이 묻어 나온다.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작가의 영혼이 캐릭터에게 투영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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