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8
얼마 전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26년’이 개봉해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미 손익분기점인 200만을 넘어선 ‘26년’의 흥행 돌풍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힘, 영화가 나오기까지의 과정 등 다양한 이슈와 화젯거리가 많은 관객의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글│박재옥 애니메이션 감독( okyi98@naver.com)
특히 역사적 사건을 비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8분 분량의 애니메이션 시퀀스는 이 영화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새로운 영화적 시도와 영화가 가지고 있는 비극적 정서에 관객들이 몰입하게 했던 이 애니메이션 시퀀스가 아니었다면, 영화는 역사의 기억에서 끄집어낸 생생한 이야기가 아닌 그저 허구적인 가상의 이야기로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26년’의 앞부분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은 이 영화의 총지휘를 맡은 조근현 감독이 오돌또기의 오성윤 감독에게 제안하면서 이루어졌다. 오성윤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200만을 돌파한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의 감독으로서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충격적인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선사했다. 이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맞는 형식을 찾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결과 로토스코핑(rotoscoping)이라는 기법을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로토스코핑이란 실제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인물이나 배경 등을 덧그려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 기법이다. 촬영된 영상을 기반으로 하므로 그 움직임이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에 비해서 훨씬 사실적인 느낌을 낼 수 있으며, 덧그리는 방식에 따라 매우 다른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다. ‘26년’ 역시 실제 배우들과 함께 촬영한 영상을 편집한 후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컴퓨터에서 덧그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오성윤 감독은 이 애니메이션 시퀀스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의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기를 원했고 로토스코핑은 그 의도에 걸맞은 선택이었음이 영화를 통해 증명되었다.
인물의 외곽라인이라든가 피부나 옷 등의 질감을 불규칙하고 러프한 브러시로 그려나간다. 탁하고 거친 질감의 이미지는 과거의 기억을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느끼게 해 준다. 인간의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조작되고 어긋나는 것처럼 어둡고 혼탁한 이미지는 그것이 현재의 사건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에서 가져온 것임을 증명해준다. 그리고 그 과거의 기억을 모든 관객들이 현실 속에서 받아들이도록 한다.
어쩌면 젊은 사람들 대다수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지만 이러한 표현을 통해 영화 속의 과거가 그들 자신의 과거 기억과 다름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을 영화의 포로로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오성윤 감독은 이 시퀀스의 연출 의도를 ‘악몽’이라는 단어로 집약시킨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아서 무서운 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야산에 쌓여있는 시체들을 둘러싼 나무들이 무언의 목격자로 느껴졌으면 한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 시퀀스의 비극성은 비극을 보고도 말하지 못했던 민중들의 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흡사 영화를 보고도 말하지 못하는 우리와 닮아있다. 영화관 바깥에서도 영화는 계속된다. 누군가는 피해자로 시달리고, 누군가는 무언의 목격자로 방관하고 있는 가운데 영화는 더 이상 허구의 것이 아닌 생생한 참여의 마당으로 진화하고 있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한바탕 마당놀이 끝에 영화는 영화의 바깥에서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