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25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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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토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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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령공주>
와 같은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목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또한 낯설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 콤비가 젊은 시절 참여했던 작품
<엄마찾아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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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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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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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소년 코난>
등의 TV 애니메이션은 기억날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애니메이션을 통해 꿈과 희망을 주었던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타 이사오 콤비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를 기점으로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탄생시켰고 그 신화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글│박재옥 애니메이션 감독((
http://www.anihall.com)
에디터│정은주(
ejjung@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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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은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세계 최초의 전시이자, 지브리의 비밀 설계도인 레이아웃 1300여 점을 관람할 기회를 제공한다.
일반인들에겐 아마도 ‘레이아웃’이란 용어가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레이아웃’이란 용어는 미술 전반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같은 애니메이션이라 할지라도 기법에 따라서 그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제작 기법은 흔히 2D 애니메이션으로 통칭된다. 2D 애니메이션은 일반적으로 작화지에 손으로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려서 제작되는 방식을 말한다. 예전엔 셀이라고 하는 OHP필름처럼 생긴 투명용지에 그림을 복사해서 채색을 했기 때문에 셀 애니메이션이라고도 불렸지만, 35mm 카메라 촬영 대신에 스캔과 디지털 채색 방식이 도입되면서 셀 애니메이션이라는 용어는 자연히 사라지게 되었다. 지브리에서는
<원령공주>
를 기점으로 35mm카메라가 사라지고 디지털 채색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2D 애니메이션에서 정의하는 ‘레이아웃’이라는 용어는 각 장면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설계도면 안에는 인물과 배경이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어떠한 모습으로 보일지에 대한 디테일한 장면설정을 담고 있다. 인물이 움직일 경우 큰 동선 위주로 표시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레이아웃은 인물의 움직임을 그리는 애니메이터와 배경을 그리는 미술감독에게 각각 전달되어 하나의 완성된 장면을 만드는데 의사소통의 축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전문 용어가 레이아웃 용지에 표기된다.
원령공주>
PAN, Track Up/Back 등의 용어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담는 말이다. PAN은 좌우나 상하로 움직이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표기하는 용어이다. Follow는 카메라가 인물을 비추고 있을 때 배경이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기하는 인물을 카메라가 따라 달리면서 찍는 효과라고 할 수 있다. In/Out은 인물이 장면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표기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레이아웃’이라는 방식을 사용하게 된 것은 순전히 자연 발생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도에이 동화에서 애니메이션을 배우던 시절에는 ‘레이아웃’이라는 체계적인 방식이 확립되기 이전이어서 배경미술이 원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장면 연출과 인물의 움직임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인물의 움직임이 확실히 정해지지 않으면 장면 연출은 언제든지 바뀔 수가 있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속성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 인간의 특성인지라 구체적인 설계도를 가지고 진행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예술가적인 기질로 하나하나 애니메이팅하면서 구체적인 장면 연출을 진행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러한 제작방식에 문제를 느끼고 ‘레이아웃’이라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철저하게 감독중심의 영화를 만들기 위한 제작방식이었다. 감독을 중심으로 하나의 레이아웃이 완성되면 나머지 스텝들은 철저하게 이 설계도대로 움직이게 된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고정된 방식이나 절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고 널리 알려졌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시나리오 대신에 ‘그림 콘티’를 사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레이아웃이 장면의 설계도라면 그림 콘티는 영화의 설계도가 될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림을 통해 설계하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만의 방식은 지브리의 성공과 동시에 위기와 우려를 낳기도 했다. 자기만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쉽사리 따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레이아웃’은 철저한 감독 중심의 스튜디오 지브리를 낳을 수 있었던 핵심적인 제작공정이었기에 이를 통해 스탭에게 정확한 의사전달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스탭들은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공간이 적어질 수밖에 없기도 했다. 이 때문에 ‘레이아웃’전을 보면서 스튜디오 지브리가 이룩한 성공의 비밀과 그 어두운 그림자를 같이 느끼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보여주었던 놀라운 상상력의 씨앗은 여전히 후배 감독들을 일깨우고 새로운 열매를 맺게 하는데 자양분이 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는 그의 영화에서 꿈을 찾고 희망을 발견한 세대들이 새로운 영화를 위해 날갯짓을 할 때다. 지브리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창공을 날게 될 후배 감독들에게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은 그 비밀의 열쇠를 제공해 줄 것이다.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 홈페이지: http://superseries.kr/4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