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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상 | 리뷰

컷아웃 애니메이션의 미학정신

2002-05-22


비오는 날 빗방울에 사이로 피어오르는 뽀얀 수증기와 겨울날 하얀 눈이 소복소북 내려앉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자연의 미적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위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컷 아웃(Cut Out) 애니메이션이란 독특한 기법을 통하여 표현한 작가가 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작가인 유리 놀슈테인(Yuri Norstein). 그는 어떻게 컷 아웃이라는 한정된 기법을 이용하여 이러한 자연의 느낌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우선 유리 놀슈테인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러시아의 영상미학의 근원과 발전을 이해하면, 왜 이러한 미학적 작품이 완성도 있게 나오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영상 미학은 영화의 역사 초기부터 매우 발전해 왔는데, 그 이유는 유럽의 전위 예술인 아방가르드와 레닌에 의해서 시작된 러시아의 혁명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서유럽은 기존의 아카데믹한 전통을 거부하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아방가르드가 발전하고 있었다면, 동유럽은 봉건주의적 전통에 의한 러시아의 사회정치적 상황을 타파 하고자 레닌이란 혁명아에 의해 볼세비키혁명이 불붙고 있었다. 이러한 혁명의 기치는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레닌의 논리와 아방가르드의 전통질서을 무시하는 전위성과 맞물려 서유럽이 많은 예술가, 지식인들이 동유럽의 혁명에 참가하고 그러한 예술가들의 작품활동 중 영상(주1)은 매우 놀라운 역할을 하였다.

러시아혁명이후 통제와 억압에 대한 반동으로 미적완성도 추구하는 경향 짙어져
이러한 결과는 당시 러시아의 민중 미학이 구조주의 미학으로 안착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후 볼세비키혁명은 성공하여 정권을 잡고 미학의 발전더더욱 발전하게 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때 스탈린의 독재에 의해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다시 억압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스탈린의 독재는 많은 예술가들의 창작작업에도 관여하게 되는데, 당시 모든 예술가들은 당에 귀속되어 “예술인 동맹”에 가입되지 않으면 창작을 할 수 없게 제도화 시키고 통제 하였다. 또한 모든 창작자에게 당에서 제시하는 청시 선전물을 제작하는데 강요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모든 창작자들을 구분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문제점은 자본주의에서 똑같이 나타는 점으로 자본주의에서 자가들이 자본에 의해 창작의 결과물을 내오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사회주의에서는 당의 허가(모든 예술가들은 예술인 동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작품제작을 할 수 없는 제도)없이는 창작이 불가능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 당시 작가들은 당의 억압과 당의 정치 선전물을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미학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고, 그 미적 완성도에 빠져들게 된다.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자본주의에서 자본에 의해 작품이 만들어진다면, 사회주의권에서는 자본에서는 벗어났지만, 제도에 억눌려 있는 것을 미학적 완성도란 것에 매달리게 되고 그러한 성과로 영화영상의 고차원적 미학을 완성하게 된다.

리얼리즘 미학의 장인, 유리 놀슈테인
이러한 맥락으로 볼 때 유리 놀슈테인의 작품은 리얼리즘 미학의 완성도가 최고로 실현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작품을 대학졸업을 막 앞두고 사회진출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즘 작품을 본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친구의 작업실에서 비오는 듯한 화질로 이 작품을 보면서 한 장의 완성도 있는 그림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친구는 이 작품을 일러스트 영화라고 소개하였고, 난 그것이 일러스트 영상으로만 알게 되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당시는 애니메이션이란 용어 보다는 “만화 영화”라는 용어가 애니메이션을 대표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처녀작 ‘케르제너츠의 전투', 암시적 몽타쥬 기법과 프레스코화의 아름다움 재현
유리 놀슈테인의 작품은 그속에 러시아 민중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작품의 모티브를 러시아의 전통민담이나 설화에서 끌어와 보다 친숙하고 정감어린 현대적 우화로 탄생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1941년 러시아의 앤드리브스키에서 태어나 4년 동안 러시아 최고의 애니메이터 이바노프바노(I. Ivano-Vano)에게 교육을 받았고 그러면서 그의 애니메이션 세계는 분명하게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그는 러시아 애니메이션의 산실격인 소유즈멀트 필름 스튜디오(SMF, Soyuz mult film Studio)(주2)에 소속되어 작가로 활동해오고 있다.
그의 처녀작으로 1972년도에 그의 스승인 이바노프 바노와 공동연출한 작품으로 “케르제너츠의 전투(The Battle at Kerzhenets)”는 러시아 정교와 외부 이슬람과의 종교 전쟁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작품의 경우 구 소련의 체제하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미학과 정치적 프로파겐다적 목적으로 70mm 대형 스케일로 만들어 졌다. 작품의 내용은 전쟁의 참혹함과 긴장감을 보여주는 전반부와 평화를 되찾은 활기찬 민중들의 노동과 건설을 후반부로 나눠 표현하고 있다. 작품 전반적인 웅장한 스케일과 경쾌한 전쟁 장면은 이바노프 바노의 독특한 연출이 돋보이고 있고, 작품 중간 중간의 섬세한 이미지의 연출 암시적 몽타쥬, 실사와의 결합은 유리 놀슈테인 만의 독특한 특징을 들어내고 있다. 또한 기법적인 면에서 컷아웃의 특징을 잘 살려 교회 벽면에 그려진 전통 성화의 주 특징인 프레스코화의 미적인 면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등장인물을 표현하고 있다.



1) 당시 혁명의 대상자들은 노동자와 농민이 대다수였다. 이들은 문맹자로 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혁명가들의 연설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강조되었는데, 당시 영상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선동의 효과가 있었다. 당시 혁명을 알리는 열자에 그림을 그린다던가 포스터, 삐라등이 제작되어 유포 되었는데, 이는 아방가르드의 작가들이 결합하여 새로운방식의 선전매체를 개발한 것이다.
2) SMF는 1936년 설립되어 어린이을 위한 장편 애니메이션을 독자적으로 제작해 왔는데 초기에는 디즈니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후 그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현재는 러시아의 많은 설화나 구전되어오는 민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유리 놀슈테인의 스승인 이바노프 바노뿐만아니라 동시대 훌륭한 감독들이 여기에 소속되어 활동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았다.


‘여우와 토끼’, ‘백로와 학, 1974’ 자그레브 등 각종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주목
유리 놀슈테인은 이 작품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후 그 만의 독창적인 애니메이션 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그가 단독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1973년 제작된 “여우와 토끼”는 유고의 자그레브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듬해 만들어진 “백로와 학, 1974”은 각종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백로와 학의 이야기는 백로와 학의 서로 간의 연애감정을 소통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텃새와 철새의 미묘한 상황을 설정하여 서로 간에 오해를 풀고 서로 사랑을 확인 한다는 매우 로맨스적인 작품이다. 그의 이러한 애니메이션들은 정치적 선전을 위한 수단이기 보다는 의인화된 동물을 통하여 우화적 이야기를 인간 내면의 정서와 꿈과 같은 현실에서 겪는 삶의 신비함과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3차원공간속 안개 표현, 실험성 돋보이는 ‘안개에 쌓인 고슴도치’
1975년 제작된 “안개에 쌓인 고슴도치”의 경우 그의 실험성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2차원적 한계를 벋어나 3차원적 공간의 표현과 안개라 특수한 설정을 컷 아웃 애니메이션에 담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그가 고안한 6단의 멀티플렌(주3) 애니메이션 촬영장치를 활용하면서 공간을 표현하였고 안개등을 표현하기위해 흰색 천을 이용하여 안개의 공간효과를 적절히 나타내었는데 천에 오브제를 가까이 붙이면 선명해지고 멀어질수록 그 오브제의 실루엣만 나타나는 점을 잘 활용하였다. 또한 이 작품에서 고슴도치가 강물위에 떠있는 장면은 그 동안 그가 추구하던 실사의 장면을 오려낸 종이와 절묘하게 합성을 하였는데, 이것은 1974년 만들어진 백로와 학 후반부의 폭죽이 터지는 실사장면과 그의 처녀작인 커르제네츠의 전투에서 외부의 침공 장면을 연기의 실사장면에서 꾸준히 실험되고 사용되던 실사의 장면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실사 장면과 오려낸 종이와의 합성은 다층 유리판 맨 밑에 거울을 경사지게 두고 그 거울에 동영상을 투영하여 반사된 동영상이 종이란 오브제와 합성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 하였다. 이 작가의 작업은 단지 3명이 중심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카메라 촬영기사와 연출과 동화을 맡은 자신 그리고 캐릭터 제작을 맡은 그 부인이 전부이다. 유리놀 슈테인의 작업은 기존의 애니메이션 작업방식처럼 많은 사람이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유리 놀슈테인 혼자서 작업을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작품 내용은 한 어린 고슴도치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숲 속에 사는 곰을 찾아가게 된 하지만 숲속은 어린고슴도치 첨으로 본 안개속에 쌓여있고 이러한 안개 속에서 여러 가지의 동물을 만나면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 그 전의 작품과 같이 동물이 의인화되어 작품을 이뤄가고 있다.



3) 멀티플렌: 디즈니애니메이션제작사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장치로, 3장의 유리판을 공간적으로 겹쳐 2차원의 x, y축만 표현되던 것을 z축까지 표현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것은 카메라의 심도를 깊게 만들고 초점을 조절하여 영화에서 사용되는 입체적 원근표현을 가능하게하여 셀애니메이션에 신도조절를 할 수 있는 특수 촬영장치이다.

상직적 은유적인 영상언어의 미학, ‘이야기속의 이야기’
유리놀 슈테인이란 애니메이션 작가를 전세계에 그의 작품과 이름을 알리게 한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 1979년에 제작한 “이야기속의 이야기”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동안 그의 작품에서 미적 완성도만을 추구했던 것을 벗어나 매우 상징적이고도 은유적인 영상언어를 통하여 러시아체제에 직간접적으로 비판을 시도하고 있다.
“이야기속의 이야기”는 앞의 작품들에 비해 보다 리얼리즘 경향을 강하게 띄고 있는데 역사적 사건을 주관적으로 다루면서 전후 러시아체제와 사회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비판을 시도하고 있으며 우화속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러시아 민중의 일상과 삶의 가치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 작품으로 작가 개인 삶의 회상이자 러시아 역사의 회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의 모티브는 러시아 전통민요인 자장가를 기본 골격으로 하여 자장가 속에 등장하는 회색늑대와 자신의 과거기억 속에 있는 자기 자신 또는 러시아 민중을 어린아이로 표현하여 늑대와 어린아이가 병치되면서 작품이 구성되고 있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이동하면서 몇 가지의 이야기를 병치시켜 놓았는데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향수와 전쟁에 의한 상실, 과거 전쟁과 파괴의 러시아역사와 현재의 러시아, 과거 어머니의 사랑처럼 순수했던 러시아의 전통과 단절된 현대 등이 미래의 러시아를 작가 현실의 순수한 시각을 통하여 회복하려는 소망이 담긴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유리 놀슈테인은 2차대전 후 소련의 급속한 물질문명화에 따른 푸쉬킨을 대표하는 러시아적 낭만과 문화의 실종에 대하여 아타까워하며 회색늑대를 통해 이러한 가치와 꿈을 담지한 아기를 훔쳐 늑대가 혼자 길러낸다는 희망과 소망의 간절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1980년 프랑스의 릴레(Lille), 유고의 자그레브(Zagreb), 캐나다의 오타와(Ottawa)등 국제적인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수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1984년 미국 로스엔젤러스 올림픽아트 페스티벌에서 비평가들로부터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선정되는 영애를 갖게 된다. 하지만 소련정부는 이 작품에 나타나는 비판적 내용을 문제삼아 추방명령을 내리는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된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내며 작가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지키며 창작혼을 불테우는 노작가의 진실된 정신은 오늘날 젊은 예술가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주4)
유리 놀슈테인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 이후 정부의 압박(정부가 지원 또는 인정하지 않으면 작품을 창작할 수 없는 사회주의 제도)에 의해 긴 공백을 후진양성에 쏟아 붓고 있다. 모스크바 소재의 국립 모스크바 영화학교(VGIK)와 샤르(SHAR)에서 강의 중이다. 그의 차기작으로 준비중인 작품은 골고(Gogol)의 원작을 각색한 장편 애니메이션 외투(Overcoat)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 작품의 파일럿 필름은 우리가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하여 감상할 수 있었다.
지난회에 소개한 라울 세르비유(링크) 작가와 이번에 소개하는 유리 놀슈테인의 작가는 단지 그 작가들이 속해 있는 체제만 다를 뿐 노 작가들의 작가 정신은 어느 체체속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이 두 작가의 작품의 메시지와 생애의 삶을 통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창작자들에게 어떠한 자세로 작품에 임해야 하지는, 작가 정신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으면 하고, 내 자신도 이 두 노작가에게 머리가 숙여진다.



4) 나기용 “유리 놀슈테인의 애니메이션 <이야기 속에 이야기> 의 시적 이미지 구성방식에 대한 연구 1999,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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