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1-06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는 어쩔 수 없이 혼자다.
부모형제, 친구, 애인, 남편 혹은 부인에게서도 절대적 일체감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그것은 현대인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이 불안감, 이것은 때로 삶을 무의미하게 느끼게 한다.
90년대 후반부터 유럽 만화계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는 이탈리아 작가 가브리엘라 지안델리. 그녀의 작품
<침묵의 담요>
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 틈입해 있는 이 미묘한 불안감을 매우 이상한, 혹은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아주 엽기적인 스토리로 풀어낸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에 대한 예민한 촉수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예를 들어
<아니타>
)에서도 이미 충분히 입증되어 주목을 끌었지만,
<침묵의 담요>
는 다분히 문학적인 그 제목에서부터 묘한 매력을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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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담요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는 분명 이 세계 속에 존재하고 있지만, 이 세계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침묵하고 무감각하다. 나 혹은 누군가가 죽어 없어져도 세계는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침묵의 담요’는 이 냉혹한 삶의 부재를 드러내는 메타포다.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서로 모르고 사는 뉴욕의 한 아파트에 ‘폴’이라는 한 남자가 살고 있다. 부인을 사별한 후의 그의 삶은 퇴근 후의 어둠처럼 공허한 침묵이다. 그런데 그의 옆집에서 ‘자넷’이라는 여자가 애인과 공모하여 남편을 살해하는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시체 매장을 도와달라는 그녀의 계획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래서 매우 불안하게 사건에 연루되는 것이 스토리의 골격이다.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고독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무표정이다. 그런데 모순되게도 그 얼굴색은 신윤복의 미인 못지않게 매우 부드러운 톤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런 모순이 보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끈다. 모순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강렬한 원색을 앞세운 독특한 표현주의적 스타일은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이 강렬함이 우중충하고 심지어 음산하기조차 한 분위기와 대비될 때의 느낌을 차가운 강렬함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이를테면 검은 색에 가까운 진청색의 벽을 배경으로 서서 저 순진한 폴을 끌어들일 계략을 짜고 있는 그녀, 그녀의 자줏빛 보라색 머리는 얼마나 자극적인가!
50여 쪽이 조금 넘지만 이 작품은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칸 하나하나가 보는 사람의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하는 강력한 시각적 힘이 있고, 칸칸마다 장면의 앵글이 다르고, 모든 컷이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풍의 빼어난 그림이고, 칸과 칸 사이에 긴 여운으로 남겨놓은 독자의 몫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