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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로 그려진 낭만주의적 우주 판타지

2004-03-19


<문섀도우> 는 2년에 걸쳐 열두 권으로 출간된 작품을 한 권으로 모은 다음, 여기에 작품 말미에 <안녕, 문섀도우> 를 후기로 덧붙인 작품이다.
작품의 깊이나 스케일, 풍부함, 만화사적인 의의 등등, 200자 원고지 7쪽에다 이 작품의 제대로 된 면모를 그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추상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신비와 미지, 그리고 불가해한 세계, 죽음과 무(無)에 대한 멜랑콜리와 멜로드라마, 장미빛 낙관주의와 정신의 자유가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464쪽! 한 권의 만화책 분량이다. 엄청나다.
하지만 이 책을 두고 이 정도에서 놀라면 너무 성급하다. 464쪽 모두가 믿기 않을 정도의 풍부함과 부드러움, 때로는 강렬함으로 가득 채워진 수채화다. 매 쪽마다 평균 서너 개의 칸이 있으니 수채화 작품 수만 따진다면 족히 2천 점은 되지 않을까?
한 권의 만화를 위해서!!


그러나 이에 못지않은 놀라움은 또 있다. 당신이 만화를 혹 경박하다고 잘못 알고 만화를 가까이 해본 적이 없다면, 이 작품을 꼭 권한다. 틀림없이 당신은 후회할 것이다. 이런 작품을 놓치고 혹은 무시하고 살아온 당신의 인생에 대해서.
쉽게는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 , 톨킨의 <반지의 제왕> ,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을 이 작품에서 보게 될 것이다. 그것들이 이 작품의 얼개를 절묘하게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뿐인가! 윌리엄 블레이크, 키이츠, 셸리, 바이런과 같은 19세기 낭만주의 시인들로부터 도스토예프스키를 거쳐 헨리 밀러, 그리고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에서 우리의 가슴이 느껴보았던 삶에 대한 감정이 여기저기에서 물씬물씬 베어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아름다움 혹은 정신이) 거의 부서질 듯한 어머니의 애정, 불가해한 변덕과 우주적인 무관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기도시스족 아버지, 문섀도우가 대부로 여긴 괴짜 동물 아이라의 인색한 우정, 그리고 ( <반지의 제왕> 의 프로도를 연상시키는) 고양이 프로도의 완고한 충성은 이야기 구성을 튼튼하게 바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종 만화적인 즐거움을 놓지 않는다.

이야기는 주인공 문섀도우의 엄마 ‘해바라기’(그녀는 60년대 히피문화의 중심에 있었다)가 기도시스라는 변덕스럽고 불가해한 족속한테 은하계의 한 동물원으로 납치되어 그 기묘한 족속 사이에서 문섀도우가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문섀도우는 열네 살에 수수께끼 같은 아버지 기도시스에 의해 그곳에서 쫓겨나 우주를 여행하면서 죽음과 탐욕, 전쟁의 공포, 사랑과 모험, 그리고 절망을 겪는다. 다시 말해서 그는 사랑에 빠지는 즐거움, 자살하고픈 마음이 들 정도의 처절한 좌절감, 아웃사이더의 기분, 그리고 삶 그 자체의 경이로움에 이르기까지 인간적 경험의 그 모든 깊이를 모든 이해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죽음, 섹스, 정신세계, 광기, 전쟁, 우주의 본성과 더불어 이 작품의 주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볍게만 보면 그 눈높이에서 재밌게 볼 수도 있지만, 그림을 뜯어보듯이 스토리 전개의 층층을 음미해보면 시적 정취와 문학적 풍부함은 물론이고 철학적 깊이와 우주적 스케일을 즐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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