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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그 남자의 천국과 지옥, 빛과 어둠의 스토리텔링

2005-07-12

영화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한 남자가 있다.
어느 날 한 순간의 실수로 인생의 천국에서 지옥까지 맛보게 된다.
그는 그 순간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면 끝까지 가봐야겠다고 생각한다.
한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둘러싼 남자들의 욕망과 배신…
김지운 감독의 색깔이 그렇듯 시나리오에서 명확한 주제나 이야기를 잡기가 쉽지 않고. 초기 작업에서는 시나리오와 스틸 만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이해하고 표현해내야만 한다.
자. 어떻게 하면 이 사이트에 접속하고 마지막에 창을 닫는 순간,
그들이 영화관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들 수 있을까?

느와르라는 장르는 50년대 프랑스에서 처음 생겨났다. 당시 프랑스 비평가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 소개된 헐리우드 B급 영화들의 어두운 분위기의 범죄, 스릴러물에 대해서 ‘검다’라는 뜻의 ‘느와르’라는 말을 붙이면서 느와르라는 장르가 생겨났으며, 장르가 생겨나면서 몇 가지 공식도 따르게 된다.

검은 수트를 입은 사내들, 권총, 마약, 보스와 2인자, 어둠의 세계 그리고 팜므파탈 등이 느와르의 세계를 대표하는 상징들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게임의 법칙> <테러리스트> <초록물고기> 등의 영화를 그 범주에 넣을 수는 있지만 느와르라는 장르의 전형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 같고, 최근 본 영화 중에서는 코엔 형제의 ‘밀러스 크로싱’이 이쪽 전형에 가까운 것 같았다.)

보통의 관객들이 느와르라는 장르를 어둡고 무겁게 생각하기 때문에 웹사이트에서는 낡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닌 새로운 문법으로 이야기 할 필요가 있었으며 영화 ‘달콤한 인생’은 장 피에르 멜빌 영화에서의 멜랑콜리 함 도 함께 지닌 감성적인 느와르였기 때문에 액션과 감성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느와르 장르에서 조명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의 표정과 미간의 작은 움직임마저도 조명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고 미묘한 심리상태와 긴장감을 표현할 수 있다. 김지운 감독 역시 ‘달콤한 인생’은 조명을 굉장히 신경 쓰는 영화라고 하였고, 필름에서 느껴지는 아우라 역시 남달랐다. (극단적인 명암대비,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검은 빛) 그리고 광택과 무광택, 반사와 무반사, 원색감과 모노톤, 우아함과 불온의 기운이 감도는 충돌하는 이중적 공존의 공간인 호텔의 느낌을 홈페이지에도 그대로 반영하고 싶었다.

강한 콘트라스트, 흑백의 조화, 조명의 변화에 따른 빛과 어둠, 그리고 한남자의 추락

전체적인 visual concept은 느와르의 문법대로 빛의 강한 콘트라스트로 정하였지만 강렬한 색은 살리고 싶었다. 흑백을 너무 강조하면 너무 어둡고 무거워 보이므로 영화가 가지고 있는 색은 극한으로 살리되 적절하게 흑백영상과 섞어서 강렬한 대비를 갖기를 원했다.

재미있는 점은 느와르 영화만의 디자인과 색이 일정하게 존재하는 것이었다. 주로 검은색, 붉은색, 노란색 등의 원색이 선호되고, 타이포 디자인과 font도 분위기의 일관성이 있었다. (약간은 촌스럽게 누운 글씨를 쓰거나 가늘고 긴 붉은 타이포, 크게 과장된 크기의 타이포 등) 그리고 홈페이지에도 이러한 점을 반영할 수 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사이트의 목적과 미덕은 모든 다른 영화사이트가 그랬듯이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었다. 사이트의 화려한 색감과 미장센만으로 사람들을 현혹할 수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처음 클릭부터 (감정선의 흐름을 따라) 사이트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보게 되는 흡인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영화의 (내용의)노출 부분과도 맞물려있으며 영화의 노출수위는 보통 클라이언트 쪽에서 가이드 라인을 정해주고 디자이너는 그 범위 안에서 영화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주고 호기심을 유도해야 한다.

<사이트의 빛과 어둠의 구조 – 스토리텔링 중에 캐릭터의 설명이 녹아 들어 있으며 이 것은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동시에, 영화를 풍성하게 해준다.>

사이트의 구조의 컨셉은 천국의 문턱에서 지옥을 맛 본 한 남자(선우)의 이야기이다.
한 순간에 천국과 지옥을 맛보는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기 위해서는 user가 극단적인 두 가지 상황을 직접 맛보게 하는 것이 중요했으며, 영화 중 밀매 조직 쇼파에 앉아 생각에 잠긴 선우의 모습이 양극단의 분기점으로 적합하다고 생각 메인 페이지로 사용하게 되었다.

한 순간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선우의 돌이킬 수 없는 여정을 따라가면서 user는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클라이언트는 이 영화가 여러 캐릭터가 풍성하게 나온다는 점을 강조해주길 바랬는데 스토리 텔링이 진행되면서 각각의 캐릭터 소개도 자연스럽게 함께 등장하게 함으로써 이러한 점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유저가 지루하지 않게 선우의 여정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스토리를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때문에 인터랙티브한 요소나 게임과 같은 장치가 적절히 필요하였으며 그 부분에서는 다음 단락에서 언급하도록 하겠다.
영화와 사이트의 호흡과 문법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각 장의 연결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을 정리하고 분위기를 전환하는 장치가 필요했고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영화사 봄에서의 회의 중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잠언들을 홈페이지 내에 삽입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이 들었고 이 방법으로 한 씬이 끝날 때마다 숨을 고를 수도 있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는 효과적인 연출이 가능해졌다.

여담으로 영화와 상관없이 홈페이지에서 단독으로 내용과 이미지를 만들 때가 있는데 홈페이지에 쓰인 잠언의 경우는 사실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대사들이었다.

<잠언집에서 발췌하여 고른 잠언들>
희수 - 사랑은 우정보다 오히려 증오에 가깝다.
문석 - 시기심은 증오보다 달래기 힘든 것.
백사장 - 우리의 미덕은 대개의 경우 위장된 악덕에 불과하다.
오무성 - 때로는 적이 우리보다 진실에 더 가깝다.
총기밀매상 - 불행이 한계를 넘어서면 불행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태구 – 신은 죽은 자를 구원해주지는 않는다.

달콤한 인생에는 총 3개의 게임과 다수의 인터랙션이 스토리텔링과 함께 이루어진다.
그 중 하나를 선택, 제작과정을 상세하게 적어보도록 하겠다.

a sky lounge – Gun shooting game

달콤한 인생을 말할 때 climax 부분을 이루는 스카이 라운지에서의 총격씬을 빼놓을 수 없다. 이 Scene이 남성 관객에게 어필 할 수 있는 측면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Gun shooting game을 제작하기로 하였다.
시점은 선우(이병헌 분)이 아닌 태구(에릭 분)로 결정하였다. 극 중 킬러가 주는 이미지와 느낌을 고려해 보았을 때 감정 이입 및 게임의 캐릭터로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이다. (물론 에릭의 10대 팬덤을 고려한 측면도 있었으나 영화가 18세 판정을 받게 되면서 그 부분은 어필하기 어렵게 되었다.)

극중 스카이라운지로 향하는 긴 복도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실제 복도를 촬영하여 그 소스로 시퀀스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위의 복도가 실제 호텔의 복도가 아닌 해당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지어진 일자형의 세트였다는데 있었다. (게다가 길이도 짧았다.)
간단히 말해 코너부분이 없는 단방향 세트였기 때문에 실제 촬영이 아닌 대안을 생각해야했다.

때문에 3d를 사용하여 스카이라운지를 재현하였다.
이제 무대는 준비 되었으니 배우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사에 부탁해서 전문배우로 찍는 것은 제작여건 상 무리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대안은? 우리가 직접 찍는 것이었다. 일단 가스나 레플리카를 몇 개 사서 낡아 보이거나 실제와 비슷해 보이게 페인팅 하였다. 그리고 각자 총을 쏘는 포즈뿐만 아니라 등장 및 맞는 연기까지 다양한 포즈를 블루스크린 앞에서 찍었다. (d.o.E.S의 3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블루 스크린 촬영은 조명과의 싸움이다.
적절한 조명이 세팅 되지 않으면 배경와 오브젝트를 분리하는 keying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몇시간의 촬영으로 가능한 일이 며칠의 lotoscoping 작업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VAIO 노트북을 가지고 스튜디오에서 직접 DV입력을 받아 실시간 keying test를 하면서 촬영을 진행 하였다. 덕분에 촬영된 소스는 원활하게 작업에 사용될 수 있었다.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테스트 영상을 만들었다.
AE에서 블루 스크린 촬영된 인물 영상을 배경에 얹고 톤을 조절 한 뒤 그림자 등을 생성해서 3d배경과의 이질감을 줄였다.

마지막 부분은 영화와의 연계를 위해서 영화 내의 장면을 영상으로 활용하였다.
이 부분은 2K로 스캐닝 된 cineon소스를 이용하여 mov로 다운컨버팅 한 뒤 플래시로 임포트하였다.
이 부분에서 문제는 씨네온 시퀀스는 단순히 영상정보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음향믹싱은 따로 해줘야 하였는데 우리는 ADR(후시녹음)에서 추가된 효과음과 사운드 소스cd를 사용하였다. 믹싱 시에는 CMlabs사의 motormix라는 디지털 믹서를 사용해서 직관적이고 효과적으로 믹싱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준비된 소스를 가지고 action scripting을 통해서 스카이 라운지에서의 건슈팅 게임을 완성하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한정된 시간에 작업을 하느라 짧은 시간에 촬영 및 제작을 해야만 했고
DV cam의 한계상 720x480의 size (실제는 640x480)내에서 동선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과감한 연출이 어려웠다는 것인데, 다음 기회에 HD cam을 사용한다면 그 부분은 상당 부분 해결될 것 같다.

새벽 7시에 칸 광고제 사무국에서 전화가 왔다. 마침 친절한 금자씨 사이트 오픈 을 위해 사무실에서 작업 중 이었는데 밤샘으로 몽롱해진 정신으로도 수화기 너머로 “Gold lion! Congratulations!” 라는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첫 출품에 Cyber category 1897개의 작품 중 이 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I don’t understand the Korean language and no prior understanding of the Korean culture but the official website content had arouse the desire to view the movie”

“한국어도 모르고, 한국 문화도 잘 모르는데 인터넷 사이트를 지켜본 것만으로도 영화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 이라고 말하는 심사위원의 평가는 우리에게는 최대의 찬사였다.
영화 홍보 사이트에서는 심미적 아름다움, 기획의 신선함, 적절한 인터랙티브 등 각각의 요소들도 중요하긴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한가지 이다.
‘이 사이트에 한 번 들어온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언어와 문화를 넘어서 이 영화의 매력을 충분히 전달하였다면 우리의 목적은 어느 정도 이뤘다는 생각에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우연히 영화 사이트에 와서 관심 없던 영화에 관심이 생기고,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고 글을 남긴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리 힘든 밤샘으로 인한 짜증도, 작업 중에 쌓였던 스트레스도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는 기분 좋은 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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