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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벅스, DRM Free 음원 월정액 다운로드 시작

2007-03-27


에디터 이정민

벅스, 양날의 검을 휘두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표현이 ‘세계 최초’, ‘아시아 최초’ 같은 타이틀이다. 스티브 잡스가 컬럼을 올리기 6일 전인 2월 2일, 한국의 디지털 음악 컨텐츠 판매 포털 ‘벅스’(w_http://www.bugs.co.kr/)는 국내 최초로, 자사 홈페이지에서 공급하는 모든 음원의 DRM을 해제한다고 밝히고 즉각 서비스에 돌입했다. 음원에서 모든 DRM을 해제했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먼저 벅스가 휘두른 ‘DRM Free’라는 검의 한쪽 날을 살펴보자. ‘JukeOn’ 같은 경우,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음원에 DRM을 적용했다. 이렇듯 음원 판매 사이트 대부분은 특정한 방식의 DRM을 적용한 음원을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DRM을 적용한 파일들은 ‘iriver’, ‘COWON’, ‘YEPP’, ‘IOPS’ 등 국산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 대부분과 휴대 전화에서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iPod 등 특정 DRM을 제외한 다른 DRM을 지원하지 않는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 사용자들의 비애(悲哀)가 시작된다.


‘FairPlay’ DRM만을 허용하고 있는 애플의 정책 덕분에(?) 그동안 국내에서 유통하고 있는 대부분의 음원은 iPod이나 iTunes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iTunes Store에서 정식으로 음원을 구입할 수도 없는 상황인 한국의 iPod 사용자들이 음원을 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CD 구매와 불법 음악파일 공유 등에 의존해야만 했다.
하지만 벅스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iPod 사용자들은 한 곡을 듣기 위해 통째로 음반을 구매하거나, 음원을 구하지 못해 불법 음악파일 공유를 자행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Melon’처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음원을 재생하지 못하는 DRM을 적용했거나, 지금은 JukeOn으로 통합된 ‘Funcake’ 에서 판매했던 음원은 특정한 상표, 특정한 사용자 한 명에게만 사용을 한정했다.
이처럼 무엇인가 제약이 있는 음원들은 요금을 지불하고 내려받기가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벅스는 이번에 DRM Free를 선언하면서, 이러한 사용자들의 불법 음악파일 공유를 정당한 금액을 치르고 음원을 구입하는 방향으로 선회시켜 많은 수익을 창출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른 한쪽 날, 모두를 다치게 할 수도...
하지만, 벅스의 DRM Free 선언이 가진 나머지 한쪽 날은, 소비자와 음악 사업 종사자, 양쪽 모두를 벨 수도 있을 만큼 날카롭다. iTunes Store에서 판매하는 음원에 DRM ‘FairPlay’를 적용하는 것을 살짝 눈감아 준다면, ‘불법복제에 속수무책인 CD를 iTunes Store 음원 판매량의 열 배가 넘게 팔아치우는’ 음반사들의 횡포를 지적하며 DRM Free에 손을 들어준 스티브 잡스의 발언은 매우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iTunes Store를 비롯한 온라인 음원 시장이 자리를 잡은 것은 물론, 아무리 수요가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쏠쏠한 수익을 내주는 음반 시장이 존재하는 미국 같은 나라의 이야기다.
요즘 같이 레코딩 스튜디오의 임대료가 낮아지고 홈 레코딩을 이용한 작업이 병행되면서 음반 제작비가 내려갔겠지만, 메이저 음반사에서 제작된 한국 음반의 손익분기점은 보통 10만 장 내외라고 한다. 2006년 발매된 한국 음반 중, 손익분기점인 10만 장을 넘긴 앨범은 다섯 장에 불과하다. 싱글 시장이 존재하지 않아, 전적으로 음반 판매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시장에서 고작 몇 명의 뮤지션만이 음악만으로 온전한 수익을 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음악산업이 아사(餓死)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불법 음원 유통에 대한 인식전환 절실
게다가 일반 대중들의 의식 또한 전혀 자라나지 않았다. 국내 유명 검색 사이트 ‘N****’에서 ‘한국음원제작자협회’의 줄임말인 ‘음제협’을 검색하면 기상천외한 질문들을 볼 수 있다. 음제협이 불법 공유의 온상인 P2P 프로그램 ‘P****’를 고소한 사건을 두고 네티즌들은, ‘내려받을 자유를 침해하는 개**’라고 욕을 한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그 혜택을 누려야 하는 음악을 버젓이 불법으로 내려받아 놓고, 그것을 자유라며 항의하는 세태가 바로 지금의 한국 음악시장의 현주소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디지털 음원의 DRM을 풀어버리는 것이 그동안 디지털 음원을 여러 가지 이유로 접하지 못하던 사용자들을 제도권 시장으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자칫 잘못하면 DRM을 완전히 해제하는 것이 CD에서 추출하거나 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거칠 필요가 없는 엄청난 양의 음원을 ‘어둠의 경로’에 풀어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이번에 벅스에서 DRM Free와 함께 실시한 ‘월정액 4000원 무제한 다운로드’ 서비스는 ‘어둠의 경로’ 확산에 휘발유를 끼얹은 격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당연히 음원 공급사의 반응도 그다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몇몇 음반사는 ‘디지털 음악판을 아예 엎겠다는 것이냐?’며 강경한 자세로 대응하고 있다. 서울음반 측은 이미 벅스에 신곡의 디지털 음원에 대한 공급을 중단한 상태이다.
하지만, 벅스에서 밝힌 DRM Free와 월정액 무제한 내려받기 결정에 관한 입장은 제법 수긍이 간다. 벅스는 <맥마당> 과의 전화, 이메일 교환을 통해 ‘정상적인 유료 음원 판매 절차와 방법조차 제각각인 현 시점에서, 디지털 음원 시장이 스스로 자리 잡기를 바라며 눌러앉아 있어서만은 안되겠다’는 그들의 결심을 밝혔다.
벅스는 ‘온라인 음원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자 총대를 메겠다’고 자처했다. 여기에 덧붙여 ‘현재 온라인 음원 유통방식과 우리(벅스)의 방법에 큰 차이가 있어 음악 산업 종사자들이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벅스의 이번 시도가 성공한다면, 대부분의 음원 공급사가 우리의 정책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그들의 결정에 대한 자신감을 표명했다. 또한 벅스는 현재 음원 공급사와 저작권 협회를 비롯한 단체들과 몇 가지 더 논의할 사항이 남아있지만, 적극적인 협의를 통해 다각적 해결책을 모색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벅스의 선전포고, 과연 목표달성 가능할까?
DRM Free 음원 서비스를 개시한 지 한 달이 채 안된 상황에서 수익 증가에 대해 이렇다 하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벅스의 결정은 정당한 대가를 치른 음원을 자신이 소유한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나 휴대 전화, 컴퓨터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용자의 환영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무제한으로 음원을 판매해서, 과연 뮤지션들이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입을 창출해낼 수 있나?’라는 의문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기자가 2006년 12월호 <맥마당> 의 ‘Blah Blah Blah’에서 ‘무제한 다운로드’ 컨텐츠를 통해 뮤지션이 얻는 이익을 비교적 후하게(?) 산출해 봐도, 한 곡당 100원을 넘지 않았다. 음원에 대한 수익 분배의 문제에 대해서 벅스와 음원 공급사, 또는 뮤지션들과 자세히 협의한 사항은 아직 없다고 한다. 벅스는 무제한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행하는 취지에 대해 ‘다른 어떤 것보다 디지털 음원 시장의 규모를 늘리는 것이 일단은 더 중요했기 때문에, 보다 호응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방법을 적용해야 했다’는 판단에서 나온 방법이며, 앞으로 보다 안정적으로 시장 규모를 확대한 후, 소비자 편의와 뮤지션들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는 등 여러 가지 시도로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벅스가 DRM Free 음원을 공급하는 취지 역시 ‘음지의 사용자를 양지로 끌어내기 위한’ 한 가지 방편일 뿐, 공급사와의 협의와 경쟁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공통된 컨텐츠 식별 체계(COI, Content Object Identifer)나, 모든 사용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효과적으로 복제를 방지할 수 있는 DRM 등, 소비자의 권리를 지키면서 업계의 수익도 함께 보호하는 방법만 마련된다면 언제든지 거기에 협력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자는 벅스가 민감한 사안의 이벤트를 너무 급작스럽게 벌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음원 공급사에도, DRM Free 음원을 판매하겠다는 사실을 행사 전날 통보했다고 한다. 아직 만 한 달도 안된 시점이라 행사의 성공 여부도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마치 게릴라 같은 이들의 선전포고가 그들의 염원처럼 ‘음지의 사용자를 모두 양지로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내길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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