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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씽크빅 WOONGJIN THINKBIG

2007-04-17


글 │ 김인철


과연 건축이 가리고 가두는 기능만을 위한 것인가 의심한다. 비바람을 막고 추위와 더위를 피하는 안전한 둥지로서의 역할에 치중한 나머지 혹시 소홀히 된 것은 없는지 살피고 싶다. 외부의 조건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무게와 두께를 확보하는 고민에 치우쳐 그 때문에 잃어버린 것이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닫아서 가둔 공간이 안전하다는 상식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정작 편안함일 까는 수긍하기 어렵다. 막아서 얻은 안전함으로 잃은 것은 소통이다. 막는 것은 단절을 의미한다. 막기에 익숙해지며 잊게 되는 것은 외부의 기억이다. 밀실은 스스로 가두어버린 부정의 공간이다. 빛과 바람의 웅성거리는 조화는 막은 벽을 애써 뚫어야 구경할 수 있다.


막기 위해 세운 견고한 벽들의 높이와 그것들의 사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을 공간성이라 찬미하지 않았는가. 틈새를 만들어 빛이 쏟아지게 하고 벽을 열어 풍경이 담아지면 공간의 풍요라 즐기지 않았는가. 기능을 조직하고 걸 맞는 상세를 갖추면 건축의 완성이라 자만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습관처럼 건축을 생각하고 만들지 않았는가 따지려고 한다.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공간은 외부와 경계 지어진 내부를 지칭한다고 여긴다. 우주를 말하거나 간격을 가리키는 틈도 공간이라 하면서 건축은 속성이 그러한지 공간을 내부로 한정 짓는다. 쌓아 올리거나 틀을 짜서 세우며 막아 가면 둘러쳐진 공간이 만들어진다. 말 그대로 비어 있는 곳, 공간인 것이다.


사람의 용도에 사용되는 공간을 갖고 있어서 다른 조형물과 구분되는 건축이지만 ‘그것은 내부이다’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건축은 점점 더 자폐적인 모습이 된다. 안과 밖을 나누는 장치로 건축이 삼아지면 공간은 점점 안으로 숨어버린다. 공간이 박제된 듯 고정되는 것이다. 정지된 공간은 더 이상 흐름을 만들 수 없어 곧 변질될 상태가 된다. 공간은 가두어지지 않는다. 설혹 가두더라도 열고 닫음이 자유로워야 한다. 원래의 모습, 공간의 원형이 그렇기 때문이다. 외부의 조건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해야하는 의무와 외부를 향해 내부를 열어야하는 요구는 상충하는 조건이다. 모순인 것이다. 해결은 상충하는 조건을 절충하거나 타협하면 될 듯하지만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모순의 해결은 그 조건을 없애야 비로소 가능하다. 모순의 관계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것이다. 외부와 내부를 이분법적인 구분을 하거나 대립적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황으로 통합하거나 상보적인 관계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외부와 내부는 공간의 연속성을 이루는 각각의 상태이므로 동질의 것으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웅진씽크빅의 형태는 파주 출판도시의 지침에 의해 바위 유형으로 정해진 것이다. 도시를 만드는 원칙에 동의한 이상 규정을 지키는 것은 규제를 받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오히려 건축의 시작을 형태로 접근해야하는 일반론적인 프로세스로부터 놓여날 수 있다. 바위이지만 무겁게 박혀있는 것이 아니라 갈대밭위에 떠있는 가벼운 바위를 상상했다. 무게를 덜기위해 건축은 투명한 질감으로 표정을 만들어야 했다. 출판사는 책을 만드는 곳이다. 책은 책 만드는 사람들이 만든다. 따라서 출판사는 책 만드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다. 웅진씽크빅의 공간은 책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좋은 책을 만드는 공간이 어떤 모양을 해야 하는지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공간의 속성처럼 열려있으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가능한 한 열어두고 닫을 곳은 최소가 되도록 했다. 구속되지 않는 공간의 흐름이 이루어지도록 칸막이를 치우거나 낮추고 투명하게 했다.


모양과 내용이 정해지면 그것을 어떤 의미로 채울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의미는 곧 공간의 내용이 된다. 웅진씽크빅에는 커다란 마당이 있다. 내부로 둘러싸인 외부이다. 지붕이 없는 외부이지만 집안에 있으므로 한편으로는 내부이기도 하다. 내부와 내부를 이어주는 외부는 그 역시 내부의 자세를 하고 있어야 한다. 공간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에워싼 공간들은 건너가고 건너오기도하며 건너 보기도하고 내다보기도 하게 된다. 건축의 공간은 바닥과 벽과 지붕으로 만들어진다. 대개 육면체를 이루지만 드러나 보이는 것은 전후좌우의 벽면만이다. 바닥은 땅에 접하므로 볼 수가 없고 지붕은 하늘을 향하므로 보이지 않는다. 웅진씽크빅에는 정작 지붕이 없다. 지붕은 인공의 대지로 바뀌어 있다. 지붕에 올라 서성거리거나 기대앉아서 수로의 갈대와 멀리 한강을 바라보며 서해의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지붕을 여유의 공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웅진씽크빅의 공간을 절제되고 정제된 내용으로 꾸미려 했다. 공간의 주인인 사람과 책 만드는 일이 돋보이려면 건축은 배경으로만 존재해야하기 때문이다. 책의 메타포인 목재 루버의 갈피들이 연출해 보여줄 우연의 조합과 공간의 마디마다 놓인 웅진씽크빅의 컬렉션들이 자칫 건조할지도 모를 단조로움을 무마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채우기보다 비우기로 공간을 다듬는 것이 공간을 공간답게 만드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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