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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 리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잔잔한 일렁임을 주는 공간, D271

2007-07-03

말이 거추장스럽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이 규정해 버리는 세상의 한계와, 적절하지 못한 단어의 선택이 야기하는 오해들이 부담으로 다가 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좀더 정확히 표현하려 들면 들수록, 늘어나는 수식어에 비례하여 대상은 본질에서 멀어져 가는 듯하여 허탈하기만 하다.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아는 지식의 발설이 아닌, 그 사람과의 진지한 교감일 터이다. 필요하다면 말을 아끼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대화에 도움이 될 듯도 하다. 관계를 위하여 말은 적을수록, 톤은 낮을수록 유효할 지도 모르겠다. ‘집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드는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건물의 역할은 많은 수식어를 통하여 본인을 들어내거나, 사람들의 행동 패턴의 제어를 통한 존재감의 과시가 아니라, 그곳을 거치는 사람들의 마음속의 어떤 일렁임(動)을 만들고 담아낼 수 있는 여유를 지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돌이켜보면 집을 짓는 우리는 무언가를 들어내고자 할 때, 그 수단으로 말과 글 이외의 다른 도구를 지녔다는 점에서 비교적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학동공원을 전면에 두고 들어선 이 집은 4명의 CF감독과 그들의 회사 가족들을 위한 작업공간이다. 많은 이미지들과 매일 같이 씨름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선이 절제된 덤덤한 집이어야 할 것 같다. 기능상의 엄격한 해결을 전제로 하여 부여된 자유로움만이 정당해 보인다. 넉넉한 주차를 위하여 지하1층은 자주식 주차장으로 두고, 지상1층부터 4층을 각각 다른 성격의 외부 공간과 맞닿아 있는 작업공간으로 계획한다. 층고가 4M인 작업공간은 무량판 구조방식을 채택하였고, 내부는 별도의 마감없이 그 속살이 들어난 채로 서있기에 중성적인 공간으로 남아있다. 콘크리트 블록, 구로철판, 부식동판과 같은 흔하고 익숙한 재료들을 통해 ‘새롭다’라는 일회적인 가치보다는 좀 더 지속적인 감정의 교류가 이어지기를 기대 한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그다지 논리적이지도 않은 집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진지하게 교감하고, 그곳을 거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렁임(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이 이 집이 행 할 수 있는 선(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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