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07
공간디자인 & 브랜드 컨설팅 마영범 / 소갤러리 디자인팀 소갤러리 / 류창성•최지은 시공팀 에이프로 / 박병환 디스플레이 한혜선 위치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서광리 1235-3 용도 녹차박물관 면적 1,238.4㎡ 설계기간 2008.6 ~ 8 시공기간 2009.2 ~ 4 바닥 케네디언 메이플 러스틱, 에코 라이트 타일 벽 한지도배, 무늬목, 스기원목, 제주석 천장 도장, 나무 격자살
오설록 녹차박물관은 지난 2001년 국내 최초의 차(茶) 전문 박물관으로 문을 연 뒤, 제주도라는 관광 특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 자리 잡은 곳이다. 최근 이곳은 더욱 늘어가는 관광객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리노베이션을 단행했다. 이번 리노베이션은 단순히 새로운 시설, 새로운 디자인으로 옷을 갈아입는다는 개념에서 머무르지 않고 디자인을 통한 마케팅적 접근방식을 토대로 공간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한 단계 진일보한 개념을 선보인다. 완전한 상업공간이 아닌 박물관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성공하는 마케팅이란 디자이너에게 있어 적지 않은 고민을 안겨줄 문제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소갤러리의 마영범 소장은 최근 디자인과 마케팅의 관계에 심도 있는 논의를 해온 디자이너로 이미 다른 프로젝트들, 예를 들어 명동 오설록 리뉴얼이나 애프터 더 레인 등으로 성공한 사례를 보여준 바 있다.
공간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흥미를 유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박물관 입구의 정갈하게 놓여진 돌 벽과 돌을 감싼 나무 프레임 벽이 외부에서 공간 내부로까지 이어지면서 강한 흡입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끈다. 내부로 들어서면 빛은 살며시 수그러들고 묘한 어둠과 전통적 형태의 열주들이 박물관을 들어가는 길목을 아우른다. 그리고 열주들 사이로 보이는 어둠의 건너편, 제1전시실에서 스며들어오는 어스름한 빛이 몽환적인 느낌을 연출한다. 제1전시실에는 차에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전시품을 드러내기 위해 조명을 강하게 비춰주는 보통의 전시방법과는 달리 주변의 어스름한 빛에 묻혀 뿌옇게 보여진다. 이는 억지스레 관람객들에게 유물을 소개하는 것이 아닌 분위기에 취해 스스로 유물을 향해 다가오도록 하기 위함이다. 어둠과 빛, 그리고 유물. 마치 동양화의 느낌처럼 하나의 풍경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현대와 과거를 이어주는 아련한 시간에 대한 시퀀스의 중첩이다. 이런 시퀀스의 변화와 중첩은 공간을 대변하는 콘셉트로서 박물관 곳곳에서 보여지는 디자인 언어다.
제1전시실에서 벗어나 좁은 통로를 지나면 어느 순간 충만한 빛의 기운이 넘치는 제2전시실로 이어진다. 어둠에서 어스름한 빛, 그리고 밝은 빛. 이러한 빛의 변화 또한 공간의 콘셉트인 시퀀스의 변화와 중첩으로 관람객들에게 단조롭지 않은 분위기로 흥미를 더해준다. 두 번째 전시실은 제주도의 상징 중 하나인 돌을 이용한 벽에 입체 사인물을 걸고, 그 앞에는 도자작품을, 또 그 앞에는 텍스트와 그래픽이 새겨진 투명 글래스의 3차원적인 조합으로 전시가 이뤄진다. 전시방법에 있어서도 중첩이라는 요소를 사용하여 자칫 지루해질 수 있을 법한 전시를 즐거운 경험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음으로 마주하는 공간은 카페와 차 판매공간으로, 지금까지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공간적 경험을 해왔다면 이곳에서는 시각뿐 아니라 미각, 후각 등 오감으로 차의 분위기에 취할 수 있다. 특히 차를 직접 볶는 등 완성된 차가 아닌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관람객들에게 차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여 강요적 판매가 아닌 호기심에 의해 스스로 차를 찾도록 유도한다.
오설록 녹차박물관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마케팅의 관점을 중요시한 디자인이다. 시퀀스의 변화와 중첩이라는 콘셉트 아래, 빛과 재료의 다양한 변화를 통한 공간적 흥미로움이 차에 대한 자발적 관심을 일으키고, 또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판매가 이뤄지게 되는 전략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오설록 녹차박물관은 더 이상 디자인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신기하거나 파격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수익을 증대시켜주는 마케팅의 훌륭한 동반자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취재 길영화 기자 사진 최정복•소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