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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에 우주를 담다

2011-11-30


우리는 건축을 시작한 이래 이십여 년 이상 과연 한국건축의 본질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일본이나 중국의 건축과 다른 한국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건축은 이를테면 정지된 화면이 아니라 동영상처럼 공간과 공간 사이로 끊임없는 흐름이 있다. 그리고 내외부의 방들은 그 흐름들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빛과 바람 같은 자연의 요소들이 지나가는 흔적을 담는다.

설계총괄 임형남, 노은주 + studio_GAON
설계담당 Studio GAON/ 최민정, 이상우, 이성필, 손성원, 김윤하
시공 금강건설(주)
감리 studio_GAON
위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136-23 외 1필지
주요용도 주택
대지면적 867㎡
건축면적 75.6㎡
연면적 75.6㎡
규모 지상 1층
건폐율 8.7%
용적률 8.7%
구조 목구조
외부마감 목재
사진 박영채

우리 건축의 주된 관심은 그러한 땅과 사람, 땅과 건물, 그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소통 방식에 있다. 어떤 경우에는 어른과 아이처럼 엄격하고 규범적이고, 어떤 경우에는 위아래는 있지만 서로 귀 기울여주고 각자의 의사를 존중해준다. 가령 서원건축에 있어서 병산서원이 전자의 방식이라면 도산서원은 바로 후자의 방식이다. 공간들은 각자 엄격한 자기의 역할이 있고 입장이 있지만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되 격리된 채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귀를 기울여주고 지긋이 바라봐 준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건축을 교과서로 생각하며, 특히 이황의 도산서당을 정신의 가치와 검소하고 경건한 건축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금산주택은 충청남도 금산 외곽, 진악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마주보이는 언덕에 있다. 남쪽으로 얕은 구릉에 집들이 가까이에 박혀있고, 솟아있는 산 사이로 멀리 큰 저수지가 있다. 바람이 그 골짜기에서 빠져나와 이 땅을 거쳐 동네 언덕 사이로 빠져나간다. 거주면적 43㎡, 마루 26㎡의 소박한 집은 마루에 앉으면 산이 걸어 들어오고, 발아래 경쾌하게 흘러가는 도로를 내려다보는 시원한 조망을 가졌다. 마당은 널찍하게 비워놓았고, 옥외 샤워장과 데크는 야외 활동을 위해 준비된 공간이다. 이 집은 교육자인 집 주인과, 책들과, 학생들과 동료 선생님들을 위한 집이다. 그리고 서양식 목구조를 적용하되 한국 건축의 공간을 담은 집이다.

우리는 집의 주인에게 진악산을 바라보는 동서로 긴 집을 권했다. 집의 여러 가지 조건이 이황의 집 <도산서당> 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도산서당> 은 일자형의 단순하고 작은 집이지만, 아주 큰 생각을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한다는 '경(敬)'의 사상을 바닥에 깔고 단순함과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했다. 즉 그 집은 이황 자신이라는 현실과, 자신을 만들어주고 지탱하게 해주는 책이라는 과거와, 그에게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이라는 미래를 담는 집이다. 그리고 참 아름다운 집이다. 작고 소박한 집에 우주가 담긴다는... 그 말만 들어도 마음이 두근거린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달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신전과 같은 거대한 집이 아니다. 생각이 담긴 집이다. 게다가 그 생각이 높고도 향기롭다면 더 할 나위가 없겠다. <도산서당> 은 우리가 건축가로서 늘 꿈꾸던 그런 집이었다.

우리는 대부분 집에 집착하고, 집의 크기에 집착한다. 현대의 집들은 점점 커졌다.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 또한 비대해져서 집은 점점 좁아지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집 늘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보통의 인간'은 아주 작게 태어나서 아주 작은 집(땅)으로 돌아간다. 그런데도 그 삶의 중간에서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키우고, 결국 그 무게에 눌려서 버둥거린다. 왜 우리는 우리의 몸에 맞지 않는 집을 원하는 것일까? 우리는 왕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우주인도 아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집도 사람을 기형으로 만든다. 우리에게 맞는 적합한 크기는 얼마 만큼일까? 사람들은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집도 커져야 하고, 그래야만 사회적 성공을 이룬 것이라고들 믿는다. 그러나 화려한 집에 담기는 건 빈곤한 삶이다. 어느 날 물밀듯이 밀려오는 존재에 대한 회의처럼, 집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올해 국토해양부에서는 '최저 주거 기준'을 7년 만에 큰 폭으로 상향시켜서, 가구당 최소면적을 1인당 12㎡(3.6평)에서 14㎡(4.2평)으로 올리기로 했다. 이번에 정해지는 최저주거기준은 공교롭게도 소로우가 월든 호수(Walden) 변에 지었던 오두막의 넓이이기도 하다. 1845년 7월 4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월든 호수 근처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라는 27살 청년이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기 시작한다. 청년이 단돈 28달러를 들여 직접 나무로 만든 그 집의 넓이는 14㎡, 약 4평 크기의 오두막이었다. 28달러라면 그가 하버드 대학을 다닐 때 일 년 집세로 지불한 돈과 얼추 비슷한 금액이었으니 그다지 많은 돈이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벽난로와 침대와 책을 읽을 수 있는 간단한 의자가 전부인 그 집은, 말이 집이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그냥 '원룸'으로 보면 되겠다. 그는 그곳에서 2년 2개월 2일을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며, 주변의 자연과 동물을 관찰하고, 자신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숲속의 생활(life in the woods)> 이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그 책이 바로 우리가 <월든(walden)> 이라고 부르는 책이다.

소로우는 초절주의 혹은 초월주의라고 불리는, 현실의 허구를 부정하는 약간은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철학을 개척했다. 그가 2년의 수련 후 월든 호수에서 나온 후의 삶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보여준 단순하고 경건한 삶은 마치 작년에 돌아가신 법정스님이 연상되는 무소유의 삶이다. 소박한 생활 속에서 한없이 넓어진 그의 생각은 세상으로 퍼져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결국 한 사람에게 필요한 절대면적은 4평 정도이다. 거기에다 일반적인 취사도구와 위생기구를 가져다놓고 음식을 만들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공간을 덧붙인다고 생각하면, 한 평 반 정도가 더해진다. 즉 18㎡(5.5평) 정도면 한 사람이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 이외의 면적은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공간, 즉 가족 구성원간의 관계를 위한 여백이다. 소로우 뿐이 아니라 옛 부터 우리가 기억하는 많은 훌륭한 분들은 평생을 갈무리하는 시점에 작은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살며 자신의 완성을 축하했다. 마치 자신의 목표가 작은 집을 짓는데 있는 것처럼 세 칸이나 커야 네 칸 정도의 집을 짓고 살았다. 남명 조식은 60세에 덕산으로 가서 산천재를 지었고 퇴계 이황도 60세에 도산서당을 지어놓고 그 안에서 살았으며 우암 송시열도 남간정사를 지었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도산서당은 이황이 공부하는 공간과 제자를 가르치는 공간, 그리고 그 사이에 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서가공간과 부엌공간으로 이루어진 4.5칸이라는 애매모호한 크기의 집이며, 옥골선풍의 아주 단정하고 고귀한 풍모의 집이다. 침실과 손님방과 최소한의 부엌과 화장실, 그리고 서재가 되는 다락방을 담은 금산주택은 <도산서당> 의 구성을 그대로 닮았다. 금산주택의 건축주는 노후를 아내와 함께 지낼 작고 소박한 집을 원했다. 공교롭게도 이황과 같이 교육자이자 학자이고, 그가 도산서당을 짓기 시작한 나이와 같았다. 이 집 또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기는, 그리고 자연과 조화롭게 마주보며 학생들과 공존하는 그런 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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