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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기억하는 공간-부뚜막 고양이

2008-05-27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다. 지난 2002년 문을 연 ‘부뚜막 고양이’는 대학로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한적하고 조용한 골목에 자리잡고 있다. 고양이처럼 야무지게 꾸며놓은 부뚜막 고양이에는 고양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취재 정윤희 | 사진 스튜디오 salt


누구에게나 특별히 정이 가는 공간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보다 공간을 기억하는 고양이처럼 부뚜막 고양이도 혜화동을 기억한다. 매일같이 오르내리는 골목, 매일 보는 나무와 발끝에 채이는 돌멩이. 때론 평범한 것이 특별해진다. 그래서 부뚜막 고양이는 혜화동을 떠날 생각이 없다. 손때 묻은 공간을 떠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지 않은가.

“처음에는 그냥 공간이었어요.” 필요한 것만 차곡차곡 알맞게 담긴 부뚜막 고양이에 대한 이 곳의 안주인인 작가 이세영의 말이다. 전기 배선부터 하나씩 조금씩 고치고 옮기면서 지금의 부뚜막 고양이가 됐다. 작업공간과 디스플레이 공간, 고양이를 위한 공간이 모두 알맞은 위치인 것을 보니 오랜 시간 공 들여 가꾼 흔적이 역력하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공간에서 그녀는 고양이를 그린다. 캣타워 위에서 나른한 오후를 즐기는 고양이, 디스플레이 선반 맨 윗칸에 몸을 숨긴 고양이, 작업 테이블 위로 성큼 올라와 좀처럼 내려가지 않으려는 고양이…. 고양이들이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공간에서 고양이들은 나름 권리를 누리며 때로는 주인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부뚜막 고양이에서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대부분 공간의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순식간에 일어나지만, 부뚜막 고양이는 매일 조금씩 모습을 바꾼다. 매일 오거나 아주 오랜만에 찾은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볼 수 없을 그런 작은 변화들은 부뚜막 고양이만의 익숙함이고 기억이다. 그런 부뚜막 고양이가 공개적으로 변신을 하는 날이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3개월에 한 번씩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공방은 작은 시장으로 바뀐다. 옥에 티 때문에 판매하지 못했던 상품을 대폭 할인된 가격에 팔기도 하고, 개인 소장품을 가지고 참가하는 사람들에게도 기꺼이 한 자리 내어준다.
차곡차곡 쌓인 일감 때문에 바쁘더라도, 넉넉한 공간은 아니더라도, 대문 없는 낮은 울타리처럼 푸근한 부뚜막 고양이. 그 공간도 사람도 좋기만 해서 무슨 핑계라도 만들어 찾아가고 싶어지는 넉넉함을 가진 곳이다.
부뚜막 고양이에서 만들어진 소품의 80%는 부뚜막 고양이까지 찾아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1300K 같은 디자인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나머지는 주문제작으로 반려동물의 초상화를 의뢰하거나 무지개 다리를 건너간 고양이를 위한 유골함 등을 제작한다.

단순한 작업실로 시작된 이곳이 6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어느 한 사람이나 고양이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자리잡은 것은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서 찾아오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 조금씩 변화하고 떠나가는 인연을 배웅하면서 열린 공간이 된 것이다.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고양이를 볼 수 있는 이곳에 이토록 많은 것이 담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의 02 3673 1175 www.booto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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