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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 리뷰

빛과 물과 바람이 마당에 내려앉는 집

2008-05-27


디자인 건축가 연경흠 건축사사무소 연(02-383-1644 archiyeon@hanmail.net) 디자인팀 건축사사무소 연 / 김흥봉, 박지니 개발 및 시공 세진주택(조용희, 안영화 02-3452-3431 www.homeseekers.co.kr) 위치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249-23 용도 공동주택(14세대) 대지면적 1515.70m2 건축면적 894.77m2 규모 지하1층, 지상3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내부마감 온돌마루, 석고보드 위 벽지, 석고보드 위 페인트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 THK24복층유리, 목재루버 설계기간 2001.11~2002.5 시공기간 2003.4~2007.9

지가의 상승으로 인해 자꾸자꾸 높게만 올라만 가는 도심 속 고층주거, 조금의 시선침범도 용납하지 못한다는 병풍같이 감싸놓은 높다랗고 불투명한 벽들의 혼재, 이웃간의 정감있게 눈웃음 지며 마주하는 거리조차 한 뼘의 여유도 없이 빼곡히 메워버린 현실. 번잡스런 도심지에 자리한 우리네 주거 공간의 자화상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골목의 여유있는 집들은 하나둘 없어지고 그 자리에 숨쉴 여유도 없이 답답함으로 가득 찬 집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 속에서 이웃과의 정과 시선은 점차 멀어져 가고 있고 정작 편안해야할 주거공간은 삭막해져 가는 냉혹한 현실이다.


소담스런 마당에 담긴 삶의 미덕

집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의도에서 잘 드러나듯 메조트론은 버려진 자투리땅에 하늘과 달빛의 운치를 감상하고 길과 여유의 정서를 담아내고자 한 공동주택이다. 애초 대지는 도로를 연결하는 두개의 필지로 나뉘어져 있고 한쪽에서만 진입해야만 하는 꼬불꼬불 휘어진 그야말로 지적상에서나 존재할법한 땅이었다. 이에 건축가는 휘어진 대지의 형상을 따라 그대로 건물을 앉히고 땅의 흐름에 따라 길의 개념을 도입하고 그곳에 자연스럽게 늘어앉은 공간구성을 만들어 나간다. 대지의 생김새와 주변의 환경에 부합된 흐름의 디자인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 와중에 “자신들보다 높지 않아야 되며 자기 집 쪽으로 창을 내서도 안 된다는 주변 집들의 항변”이 이곳저곳에서 쏟아져 나온다. 자신들의 너저분한 생활의 뒷모습이 그대로 보이고 침해를 받는다는 억지였다. 결국 주변과의 소통을 추구하는 창을 대지 안쪽으로 도입하는 새로운 건축개념이 적용되기에 이른다. 각 집마다 작은 마당을 중심에 두고 자연의 흐름을 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계획된 건축이 너무나 새로운 개념이기에 인허가 문제가 발생되었고 건축가와 시공자의 끊임없는 이해와 토로를 하여 결국 허가를 얻어낸다.



이로 인해 탄생된 메조트론은 각 집마다 가운데 수직적인 마당을 두고 올려다보면 하늘이 있고 대나무 사이로 달빛이 떨어져 내리는 묘한 정서를 반영하는 주택으로 다가온다. 땅의 생김새도 그렇고 잘게 쪼갤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현실상황에서 각각의 실들은 다소 작은 감이 있긴 하지만 아파트 생활의 건조함에 물들어 있는 도심주거에서 계절의 정감을 선사하는 집이라는 점에서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 툇마루에 앉으면 마당에 담아 놓은 수변공간에 달빛과 별빛이 드리워지고 돌 마당을 거닐며 하늘의 달빛을 감상하는 여유를 느껴볼 수 있다.

흙을 밟고 싶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의 소리를 들으며 잠시 거닐어 봐도 좋을 듯 싶다. 대지를 촉촉이 감싸는 비가 오면 떨어지는 빗물 소리가 집 안 가득 퍼져나가게 되고, 겨울 무렵 하얀 눈이 올 때면 눈을 맞으며 잠시간의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해볼 수도 있다. 작지만 풍요로운 다채로운 마당을 통해 바라보고 거닐고 느끼고 삶의 미덕을 담아내고자 한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셈이다.


트리플렉스 하우스(Triplex House, 복복층형주택)

집의 흐름은 2층 거실에서부터 시작된다. 거실을 중심에 두고 맞은편에는 주방이, 위아래로 서재, 침실 등 다양한 실들이 자유롭게 펼쳐져 있다. 총 3개 층 6개실로 구성된 내부공간은 중정마당을 중심으로 서로 엇갈리게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즉 스킵플로어(Skip Floor) 방식을 통해 층간 개념을 완화하는 동시에 단절되어 가는 가족구성원 모두에게 동적인 활력소를 제공한다. 자연스레 마당을 중심으로 공간의 소통은 원활하게 되고 가족공동체적 기대치는 높아져 갈 수 있게 된다. 가히 국내 최초라고 할 수 있는 트리플렉스 하우스(Triplex House, 복복층형주택)가 만들어진 것이다.

복복층형 개념의 이 새로운 주택은 재택근무에 필요한 독립적 개인공간에서부터 3대가 함께 하는 동거형 주거방식까지 수용하는 공간의 가변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성있고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도시인들에게 제격인 주거 및 사무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또한 한 세대가 3개 층으로 구성된 복층형 주택으로 2층에 있는 거실과 주방을 공유하는 2~3세대 동거형 주거와 작은 개인작업실을 운용하는 재택근무도 가능한 주거형태로서 그 쓰임을 확대시켜볼 수 있다.


집 곳곳에는 전통건축의 정서를 현대적인 개념으로 풀어가고자 한 건축가의 고뇌가 보여진다. 하늘을 향한 마당에는 걸터앉아 달빛을 감상할 수 있는 툇마루의 개념이, 우물처럼 가둬진 중정을 내부공간과 소통시키고 1층 한쪽을 쪽문으로 열어두고 길을 내어 외부로 연결시킨 싸리문과 골목길의 정서, 하늘과 바람, 물과 흙, 돌과 나무의 자연언어를 끌어들인 소담스러운 마당, 내부에서 밖을 볼 수 있는 봉창격의 자그마한 창 등이 그것이다.

이제 집을 만들어간 시간과 최고의 집을 만들어가고자 한 세세한 손길에서 느껴지듯 가히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4세대로 구성된 공동주택이 지어지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지난 것이다. 1~2년이면 뚝딱 지어내는 요즘 추세에 도대체 무엇을 남기고자 했냐는 질문에 건축가와 시공자는 환한 미소로 답변한다. 집 자체가 사람보다 튀지 않아야 한다는 그들의 진솔한 믿음처럼 건축가는 전통언어가 담긴 정감어린 삶의 공간을 계획하고, 시공자는 꼼꼼히 살펴보아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뛰어난 노출콘크리트 시공은 물론 콘센트와 몰딩까지도 세심하게 다듬어간 흔적이 배어있다.

“작아도 한그루 나무가 있는 마당이 있고, 한 줄기 별빛이라도 내려 올 수 있는 하늘이 있고, 남보다 나 자신을 보고 우리가 우리를 볼 수 있는 삶의 공간이었으면 한다.”는 그들의 소박한 바램이 삭막한 도시의 울려 퍼지길 기대해본다. M

취재 김용삼 draegon3@maruid.co.kr 사진 최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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