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29
비만 오면 떼로 출몰해 사람 놀래키던 지렁이가 보이지 않게 된지도 오래. 있을 때는 징그럽고 싫더니 막상 보이지 않게 되자 아쉽던 차에 헤이리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수했다. 지난 1월 명동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는 이 ‘지렁이’가 헤이리에도 둥지를 튼 것인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과 건강한 생각이 담긴 착한 상품으로 지구를 일구겠다는 포부를 펼쳐 보인 것이다.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자료제공 | ㈜쌈지농부(www.farmingisart.com)
㈜쌈지농부의 착한 가게 ‘지렁이다’가 지난 4월 10일 명동에 이어 헤이리에도 문을 열었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진행해 온 농부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된 공간이다. 건강한 땅을 만드는 지렁이를 통해 우리 땅의 소중함과 자연사랑을 전달하려는 의도다. 그래서 가게 이름도 ‘지렁이다’인 것.
작은 것들이 지닌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지렁이다’는 버려지거나 낡아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이용해 공간을 꾸몄다. 파주 고물상의 드럼통, 낡고 오래된 살림살이, 바닷가에서 건져온 부표와 그물까지 버려진 것들에 가치를 부여해 인테리어 요소로 사용한 것. 이진경 작가의 아트디렉팅 아래 적당히 녹슬어 더욱 운치 있는 테이블, 공간을 나누는 파티션, 나무집, 이색적인 조명 등으로 탈바꿈했다. 지역에서 나는 먹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로컬푸드 운동처럼 지역에서 나온 버려진 것들로 지역 안에 독창적인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자연스레 ‘지렁이다’에 들어서면 물성이 지닌 환기, 재생, 또는 순환의 의미가 느껴진다.
또한 분해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 쇼핑백 대신 버려진 신문지를 재활용해 제작한 쇼핑백 또한 ‘지렁이다’가 가진 생각이 무엇인지 분명히 전달한다. 고령자, 취약계층 등 소외된 이웃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접어 만든 쇼핑백은 구입한 물건을 담기 전에 이미 환경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순박하고 귀한 가치를 담고 있다.
또 ‘지렁이다’에는 대장간, 구두공방, 리폼작업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주문한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며 하나의 물건 안에 깃든 정성과 노력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이 외에도 그림, 도예, 목공, 금속공예 등 소박한 감성과 섬세한 장인정신이 가득 담긴 가게들을 통해 손맛의 즐거움을 전한다. 내발에 꼭 맞게 재단한 가죽을 정성껏 꿰어 구두를 만드는 ‘구두공방 어린농부’, 수제생활용품 및 규방공예품을 만드는 ‘광’, 지역에서 자란 친환경 농산물과 먹거리를 판매하는 ‘농부로부터’ 등 17개 가게가 마련돼 있다.
‘농사가 예술이다’를 모토로 하여 창조적인 작가들과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소외된 지역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전념해 온 ㈜쌈지농부가 키우는 꼬물꼬물 ‘지렁이’. 자연에 대한 존경심과 장인의 손길, 그리고 작은 것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처음 마음 그대로 쑥쑥 자라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