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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s Come True

2008-03-18


아이디어 생활소품은 이를테면 한 접시 광어회다. 이 무슨 멸치 회 뜨는 소린가 하면,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상품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막 건져올린 싱싱한 물고기를 먹음직하게 떠서 맛있게 밥상에 올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 디자이너는 심상한 일상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기발한 아이디어의 입질을 기다린다. 예상치 못한 순간 떡밥을 무는 아이디어, 요놈을 어떻게 요리한담? 개성 넘치는 아이디어 생활소품으로 명성이 자자한 디자이너 양재원의 노련한 요리 과정을 살짝 살펴봤다.

취재 | 이상현 기자 (shlee@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자료제공 | 양재원 디자이너


사연인즉슨…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퉁퉁 부은 눈을 비비적거리며 늦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마땅한 찬이 없다. 냉장고를 뒤져보지만 역시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말라버린 식빵뿐이다. 언제 이 지긋지긋한 싱글 생활을 면하려나…. 애처롭게 식빵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요놈이 수세미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배가 고프니 헛것이 보이나. 그럼 ‘퐁퐁’(주방세제)이 딸기잼이라도 된단 말이야 뭐야.’ 썰렁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친 김에 식빵으로 그릇을 훔쳐본다. 재미있게도, 식빵의 오목하게 들어간 가장자리가 손으로 쥐는 ‘그립 감’을 높여주고, 사용에 안정감을 자아낸다. 이거, 물건 되겠는 걸!


이러이러해서…

식빵이 수세미가 된 사연은 이렇게 단순하다. 디자이너의 화려한 ‘사시미질’을 거치자 이 썰렁한 아이디어는 위트 넘치는 생활소품으로 변모했다. 만약 식빵 모양의 수세미 제작에서 생각이 끝났다면 썰렁한 아이디어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발상이 식빵에서 샌드위치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면서 제품의 재미, 사용자의 즐거운 상상력은 증폭됐다. 양상추, 토마토, 양파를 실사 출력해서 패키지를 만들고(물에 젖지 않도록 특수 코팅을 했다), 겉봉에는 파운틴스튜디오가 아니라 파운틴 ‘베이커리’로 라벨링을 했다. 뒷면에는 ‘Don’t eat’, ‘유효기간 없음’과 같은 주의사항을 기입해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얼핏 보면 영락없는 샌드위치다. 파운틴스튜디오 양재원 디자이너의 이 샌드위치 스폰지는, 아이디어가 상품력을 갖기 위해서는 제품을 어떻게 ‘프레젠테이션’하는가에 대한 고민까지 이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사연인즉슨…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파운틴스튜디오 사무실이 있다. 생각이 복잡할 때면 커피 한잔을 들고 강가를 바라본다. 유유자적 한강을 따라 산책로를 거니는 사람들을 관망하는 것만으로 삶의 쉼표가 된다. 특히 해 저무는 시간, 반짝이는 물살을 배경으로 검은 실루엣만 남은 사람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이 사연 역시 ‘썰렁한 발상’으로 시작한다. 혀를 죽 내밀고 헐레벌떡 뛰어가는 작은 강아지와 그 뒤를 쫓는 주인의 검은 실루엣이, 엉뚱하게도 마치 대걸레를 미는 사람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그와 동시에 친구의 웃지 못할 이야기가 만화 속 생각 풍선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유난히 털이 북실북실한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는 갑자기 물을 엎지르면 걸레 대용(?)으로 쓱싹쓱싹 강아지를 문지른다는 것이었다. 그땐 뭐 이런 몹쓸 인간이 있나 싶었는데, 이 아이디어의 일등 공신으로 당신을 임명하노라.


이러이러해서…

이름하여 Cute Puppy-Mop, 쉬운 말로 강아지 대걸레는 이렇게 출발했다. 제작의 관건은 용모와 쓸모의 겸비. 일단 외관상 강아지와 닮아야 했고, 동시에 실생활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바닥과 만나는 마대 밑면은 그때그때 교체가 가능하도록 몸통과 분리시켜 편리성을 높였다. 강아지 몸통은 실제 대걸레에 쓰는 천을 이용했다. 인형을 제작하는 친구와 상의, 접착제로 붙이고 일일이 손바느질을 해 형태를 만들었다. 2005년 디자인메이드 전시에 참가하면서 제작한 이 CutePuppy-Mop은 관람객이 자유롭게 직접 사용해볼 수 있도록 했는데 특히 어린 친구들의 반응이 좋아 당시 실내 전시장에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왕왕 목격됐다는 소문이다. 양재원 디자이너의 아이디어 생활소품의 출발점이 된 이 제품은 2007 밀라노 프리 살롱에 참가, 외국 기업과 계약을 맺어 현재 양산형 모델 제작을 진행하는 중이다.




사연인즉슨…

어려서부터 종이접기가 취미였다. 종이비행기, 종이배, 종이학 등 종이접기만의 독보적인 심플한 조형미를 언젠가 제품 디자인에 응용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우연히 모 워크숍에 참여했다가 단단한 철판도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장 종이비행기 모양으로 무작정 철판을 가공해봤다. 철판 가공을 해놓고 보니, 종이비행기를 과일 접시로 사용하면 좋겠다 싶었다. 여기에 과일을 얹어놓으면 접힌 부분으로 물기가 자연스럽게 빠지는 점을 주목했다. 그런데 제 아무리 구부렸다 폈다가 가능하다고 해도, 원하는 크기와 형태로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일단 과일 접시 종이비행기는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이러해서…

그래서 크기를 축소, 장식품 용도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지냈다. 어딘가에서 날아와 책상 위에 떨어진 종이비행기처럼, 이 철제 종이비행기는 퍽 예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책상에 자리를 차지했으니 제 역할은 해야 하는 법. 자연스럽게 중요한 내용을 적은 메모지나 수납 일이 가까워온 지로용지, 먼 친구에게서 온 우편물 등을 꽂아뒀다. 꽤 무게감이 있어 꼿꼿이 내용물을 받들고, 존재감이 있어 분실의 우려도 없었다. 어딘가에서 날아와 책상 위에 떨어진 종이비행기의 우연처럼, 제품의 용도가 갑자기 생겨난 것이다. 내용물을 제대로 받힐 수 있게 폭과 너비를 조정하고, 뾰족한 부분을 레이저 커팅하는 등 과정을 통해 이 제품은 양산형 모델을 제작, 현재 시판 중이다.




사연인즉슨…

어렸을 적, 주말 아침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때문이었는데 특히 쫓고 쫓기는 벅스버니는 유난히 좋아했던 캐릭터. 너저분한 전선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이 토끼 전선 클립의 아이디어가 캐릭터 벅스버니로부터 출발한 것은 아니다. 외국의 어느 디자이너가 생선가시 모양으로 제작한 전선클립을 우연히 보고, 괜찮은 아이템이다 싶어서 머리를 굴려본 것.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있으면 편리하며 일상에 유머를 선사하는 점이 마음에 꼭 들었다.


이러이러해서…

전선을 둘둘 말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 전선 클립의 용도다. 돌돌 말아 묶어놓다? 무엇을 묶어놓을 것인가가 핵심이었다. 그러다 ‘포로’를 돌돌 말아 묶어놓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까지 뻗어나갔다. 이젠 누구를 포로로 할 것인가가 과제. 그때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이 바로 벅스버니였다. 사냥꾼의 손에 붙들려 밧줄에 묶여 있던, 귀여운 모습을 기억 속에서 건져냈다. 대안이 따로 없을 정도였는데, 그 이유는 토끼 귀 사이와 다리 사이에 전선을 끼어두면 고정이 쉬울 뿐더러 깨끗하게 마감이 되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었던 것이다.


사연인즉슨…

딱딱한 콘크리트를 뚫고 피어나는 꽃다지, 부서진 보도블록 틈으로 힘겹게 얼굴을 내미는 애기똥풀, 돌 틈 사이에서 오롯이 한 점 꽃을 피우는 노루귀….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4월이 되면, 어김없이 이 삭막한 도시를 다시 찾아오는 봄의 전령사들을 찾아다닌다. 생활소품으로 가장 많이 찾는 아이템 중 하나인 화병을 제작해보자 마음 먹었을 때, 이러한 싱싱한 생명력을 실내에 불어넣을 방법을 골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이러해서…

꽃다지와 애기똥풀과 노루귀가 그러하듯, 시야를 장악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눈길을 잡아끄는 화병, 실내 어디에 둬도 공간과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화병을 만들고 싶었다. 조약돌 사이에서 꽃이 피어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원더-베이스는 모서리, 자투리 공간에 세팅했을 때 오히려 매력을 발산한다. 양산형 모델로 제작하면서 운반이 용이하고 파손 위험이 적은 플라스틱 레진을 적용했는데, 돌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특수 도장 공법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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