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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 리뷰

fair-tale furniture

2008-12-30


‘이야기가 있는 가구’, 흔히들 쓰는 뻔한 수식어다. 하지만 양진석의 가구에는 진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는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쳐 흥미로운 동화를 지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구체화시켜 특별한 가구를 탄생시킨다. 디자인 히스토리가 곧 한 편의 동화책인 것이다.

에디터 | 이상현(shlee@jungle.co.kr)

부끄럼쟁이 외투 걸이 Shy Animal Coat Hanger

뉴욕 센트럴파크에 살고 있는 세 동물 친구들은, 공원을 산책하는 뉴요커들의 화려하고 멋진 옷차림을 매일 침을 흘리며 쳐다본다. 패션을 사랑하는 세 친구는 그들이 가진 값비싼 것들, 이를테면 오래된 동전이나 플라스틱 숟가락, 가짜 진주 귀걸이를 들고 옷 가게에 찾아가지만 당연히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 결국 센트럴파크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값비싼 옷과 가방, 액세서리를 훔치기로 모의한다. 작은 가슴을 토닥거리다 이윽고 실행에 옮기게 된 그들, 하지만 허무하게도 금새 경찰에 붙잡히고 만다. 참을 수 없는 욕망 때문에 도둑질을 시작했다는 변에 언짢아하던 판사는 패션에 향한 그들의 애정과 노력에 측은지심을 느껴 사회봉사활동을 선고한다. 그러나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던가. 수양 가족의 집에 보내진 이들은 아이들의 옷 정리를 도와주는 일을 맡게 되는데, 옷과 가방, 보석을 마음껏 입어볼 수 있었고, 가끔 오래된 모자나 문양이 아름다운 옷을 선물 받기도 했던 것! 동물 친구들에겐 더없이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도기 스툴즈 Doggie stools

먼지 구덩이 차고에 방치된 네 개의 의자는, 밖에서 뛰어 노는 강아지가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검게 변한 칠과 볼품 없이 짧은 다리의 이들은 언제나 변신을 꿈꾼다. 그래서 낡은 차고 문이 열릴 때마다 변화의 기대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건만, 주인은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잔디 깎는 기계를 꺼내갈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낡은 차고 문. 주인의 애완견이 성큼 안으로 들어선다. 강아지는 주변을 돌아 다니다 의자에게 다가와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는 잠시 멈칫 하더니 다리를 들어 올려 오줌을 누는 게 아닌가. 의자들은 혼비백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신비스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노란 소변 줄기가 의자에 부딪쳐 튕겨 나가는 순간 의자의 벗겨지고 거무스레하게 변한 칠이 윤기가 흐르는 붉은 색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토록 부러워하던 강아지처럼 다리를 구부릴 수도, 움직일 수도 있게 되었다. 네 개의 의자는 드디어 차고를 벗어나 뒤뜰로 나가 햇살 아래 선다. 개가 짖는 소리에 뛰쳐나온 집 주인은 새로운 의자의 모습에 몹시 놀란다. 의자를 보고 한 눈에 반한 주인은 단번에 거실로 들이고, 그들을 ‘강아지 의자’라고 불렀다.

동화로 풀어내는 양진석의 디자인 세계

양진석은 작업의 첫 걸음을 이야기로 내딛고, 이야기 속의 사물을 현실화하는 것을 작업의 마지막 과정에 배치함으로써, 그가 디자인한 사물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가구를 디자인하기에 앞서 일러스트를 곁들인 현대적인 동화를 창작하고, 동화의 클라이막스로 스토리에서 끄집어 낸 듯한 가구 또는 조각을 선보이는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양진석의 가구는 특정한 성격과 사연을 지닌 하나의 캐릭터로 탄생하게 된다. 가구나 사물에 앞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은 단순히 가구에 대한 정보제공 차원에서 멈추지 않고 관람자들을 작가의 상상 속으로 초대하게 되는 것이다. 양진석의 동화는 'modern day fairy-tales'로 설명될 수 있으며, 우리는 그의 동화 속에서 현대인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강아지가 되고 싶은 의자는 자신이 아닌 남을 그리는 현대인의 욕망을, 패션을 향한 욕심을 참지 못해 도둑질을 하는 동물들은 현대인의 끝없는 소유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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