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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 리뷰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하다. 디자이너 전시형

2005-12-13


그는 이미 거대한 산이었기에 그를 만나는 것은 매우 기대가 되면서도 사뭇 부담스러웠다. 유엔 빌리지 꼭대기에 자리잡은 그의 사무실은 그 정체성을 드러내는 어떠한 사인보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이라고 규정짓는 네임 태그도 어줍지 않은 장식도 싫은 그의 공간은 비어있는 가운데 꽉 차 있었다.

취재 | 호수진 객원에디터 (lake-jin@hanmail.net)


청담동의 놀이문화의 선두에 있던 전시형의 공간들. 그에게 놀이문화를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었다.‘놀이문화요? 놀 줄도 모르는데 뭘.’이라며 손사레를 친다. 노는 것에 대해 특별한 장기도, 생각도 없단다. 오히려 주거공간 인테리어나, 아파트, 주상 복합 등 시설 기획에 관심이 많다는 답에 잠시 주춤했다. 왜 그를 만나자 마자 떠오른 것은 그의 수많은 주거 공간이 아닌 상업 공간이었는지…… 그만큼 신선하고 그만큼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되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머리 속에 있는 공간을 표현했을 뿐인데, 사람들의 기대와 기호에 맞아떨어져 계속해서 붐을 일으켰던 것 같다며 겸손한 반응을 보인다.

그의 꿈은 교육의 첫 출발 공간인 초등학교를 만드는 것. 이제 막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등하교 시간이 정해져 있는 박스 형태의 건물은 그들의 사고를 정지시키는 불행의 시작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잘하는 일이니 만큼, 공간의 개념으로 답답한 교육의 문제를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미끄럼을 타고 등교하고, 잔디밭을 뒹굴며 하교하는 우리 아이들의 얼굴은 얼마나 밝을까? 그런 자율적인 공간에서 아이들의 창의력을 빼앗아가는 획일적인 교육이 행해질 리 없고, 그들의 웃음을 앗아가는 산더미 같은 숙제가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를 리 만무하다. 아이들의 교육을 말하는 그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디자이너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진다. 대체 어떠한 특별한 환경이 이토록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그를 키워낸 걸까?

낮잠 자다 일어나면 얼굴이 스케치 북이 되어있었다.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다 지쳐 잠들고, 다시 일어나 그림을 그리던 그의 어린 시절. 어쩔 수 없는 감각도 감각이지만, 어릴 적부터 감각을 발달시킬 수 있는 환경에 열려 있었다고. 지나가는 말로 감도가 깊은 처녀자리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라며 살짝 웃는다. 게다가 비원을 놀이터 삼아 뛰놀던 그에겐 남들과 다른 무언가 있으리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을 뒤로한 채 비원 담 밑으로 난 구멍을 통해 밀회를 즐길 수 있는 비원이란 그에겐 원더랜드였다. 꼬마시절 한없이 달리다 보면 만나게 되는 한국 전통의 기둥들은 시뻘겋다 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벌건 기둥이 어린 그의 눈에는 일종이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들을 보면 실내 장식용 기둥이 묘한 분위기를 이룬다.

어린 시절 그는 매사가 다른 이들과 달랐다. 특히, 시각적으로 뛰어났다. 방향을 찾는 감각은 남들보다 무뎠지만, 순간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사물들의 모양과 색채에 대한 반응은 남들보다 빨랐다. 크레용과 함께한 그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기인한 믿음인지. 그는 미술과 건축을 별개의 것으로 나누려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달갑지 않다. 그래서인지. 건축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시간에 그는 ‘건축’보다는 미술을 가르친다.

사용자가 있다는 것이 매력적인 반면 표현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비디오 아트에 관심이 많이 간다. 요즘에 가장 관심이 있는 소재는 ‘skin’. 대상에 따라, 그 움직임에 따라 다른 재질을 보이는 살갗은 참으로 재미있는 소재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제가 되는 대상보다 그 대상을 둘러 싼 공기. 공기의 흐름이 중요하다. 대학 입시 때 정물화가 주어졌지만, 그는 정작 정물의 대상이 되는 파, 사과 등을 표현하기 보다 그들을 둘러싼 공기를 표현했다. 정말 특이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공간의 공기에 관심을 두는 그의 고집때문인지 아무것 없이도 그의 공간은 꽉 차있다.
사실, 그가 자신의 공간에는 장식이 없다는 말을 하기 이전엔 수도 없는 그의 작품을 봐 왔음에도 불구하고 비어있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의 공간엔 어떠한 장식적 도구도, 색채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가 굳이 자신은 청담동 놀이문화를 선도하지 않았다 말한대도, 그의 공간이 놀이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90년대 후반 디자인된 청담동의 궁은 그 커다란 기둥을 공간에 삽입함으로 새로운 음식문화의 장을 열었고,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청담동의 지직스 바는 검정색 일색의 공간의 벽에 조그만 PDP 모니터를 삽입함으로 새로운 바 문화의 장을 열었다. 얼마 전 디자이너 마영범과 함께 디자인한 도산공원 맞은 편의 느리게 걷기는 바쁜 현대인들의 걸음을 늦추기에 충분했으며, 압구정의 레드 몰토 역시 강남 최초의 트랜스 바로 전시형 그가 청담동의 놀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음은 너무나도 극명한 사실이다. 사실 전시형의 신화(?)가 이루어 진 것은 단지 십년 전 이야기가 아니다.

놀랍게도 그의 첫 작품은 그가 중학교 2학년이던 시절 아르바이트로 디자인 한 신촌의 ‘풀잎’. 청바지 맞춤 집이었다. 그 후, 1978년 이대 앞 ‘넘버 나인스 드림’이라는 바로 본격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 하나의 공간이 두 개의 작업을 선물하였고 두 개의 작업이 또 다른 네 개의 공간을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1984년 디자인한 명동의 ‘도시선언’은 억울하게도 일본 디자이너가 디자인 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앞서가는 디자인이었으며, 강남역의 ‘월드 팝스’역시 강남역 디스코 테크의 시초가 되었다. 어떠한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디자이너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각적 발달이다. 무엇보다 많이 보는 것 외에 더 좋은 시각 훈련은 없다. 따라서 지속적인 실제 경험이 감각에 감각을 더하게된다.

한창때는 일년에 백번이상 출장을 다녔다. 그의 코스는 늘 똑같았다. 도시에 도착한 첫 날은 무조건 그 지역에서 가장 좋은 호텔로 가서 묵는 일이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지친 몸을 뒤로하고, 호텔의 곳곳을 살피는 것이 그의 할 일. 가장 좋은 방에서 잘 수 없다면, 구경이라도 해보고, 로비에서부터 계단실, 식당 등의 공간을 살피고 묵을 방에 돌아와 곳곳의 디테일 심지어 욕조의 수전까지 살핀다.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나면 밖으로 나가 호텔의 주변을 살피고는 체크 아웃 시간에 맞추어 그 곳에서 가장 후진 호텔로 가 나머지 일정을 마치는 것이다. 패션 브랜드가 그의 손에 주어지면, 해외의 뛰어난 패션샵들을 두루 돌며 철저한 분석에 나선다. 거울 하나가 놓여있는 각도 위치까지 체크하여 그것이 고객들의 소비 욕구와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주식회사 한섬의 타임과 마인. ‘타고난 재능’이 반 이상이라 생각했던 본인의 생각이 창피해지는 순간이었다.
주거 공간이 주어지면, 다른 모든 것을 제치고 자신이 고객이 되어본다. 어린 시절 위인전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 그다지 충실하게 따르지는 않았지만, 이제서야 어른들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고. 주거공간을 하나 완성하고 나면, 위인전을 하나 읽은 듯 많은 공부가 된다.

인테리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의 충족감. 그의 독특한 공간 해석능력이 고객들에게 만족감을 안겨주었고 그의 감각이 뛰어나 보이는 겹겹이 싸인 풍요로운 공간이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그를 찾게 만들었다.
의뢰인이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행복이자 불행이다. 제시하고 싶은 공간을 창조할 수 있음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한없이 고맙지만, 표현하고 싶은 순수함을 제제당한다는데 있어 0.3%의 불행이 밀려온다.
이쯤되니 그를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수식하기엔 부족함이 너무 많다. 디자이너, 건축가, 작가 더 나아가 마케터나 컨설턴트의 사이를 오가고 있는 전시형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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