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4
최근 홍대 중심지를 벗어난 합정, 상수동의 골목길에 소규모 공간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소규모 공간들은 주로 10평 이내의 크기에, 반 지하나 1층에 위치하고 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로 보일 수 있는 곳을 오히려 이러한 공간적 특성을 이용한 공간들이 눈에 띈다. 이 공간들은 획일화 되어 가는 대형 프렌차이즈 기업들과 달리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1990년대 아니 2000년대 초반까지 홍대 앞은 문화의 중심지로 불리면서, 홍대 앞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클럽이나 복합 문화 공간 등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홍대 앞에 대형 프렌차이즈 기업들이 들어서면서, 홍대 앞을 지키던 많은 사람들은 비싼 임대료와 경쟁을 벌여야만 했다.
홍대 앞에서 멀어진 상수, 합정, 연남동 등의 골목길 사이에 소규모 공간들이 들어선 것도 이때부터였다. 주로 10평 이내의 작은 크기에 반 지하인 이곳은 홍대 앞에서 다소 멀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곳을 만들었다. 홍대 앞의 상업화가 빚어낸 쓸쓸한 풍경이기도 하지만, 덕분에 독특한 개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카페 ‘시간의 공기’
‘시간의 공기’는 상수역과 합정역 사이에 있는 소규모 카페이다. 8월 3일이 되면 카페를 만든 지 1년이 된다는 이곳은 벽과 책꽂이, 테이블 등 거의 대부분이 나무로 되어 있다. 이는 카페의 컨셉을 영화 ‘안경’에 나오는 부드러운 나무의 컬러에 영감을 받고, 가급적 공간 안에 가구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곳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 사람이라면, 입구에 있는 나무 문 때문일 것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 나무문은 두껍고 묵직한 느낌을 준다. 공간에 있는 다른 나무들이 가볍게 표현된 것에 비해, 이 나무문은 공간을 개성을 보여주는 아이템이다.
작은 공간이기에 테이블의 수가 한정돼 있을 수 밖에 없다. 부엌과 화장실 사이에 빈 공간을 터서 테이블을 놓음으로써 카페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자전거 숍 ‘유니클(UNIQCLE)’
합정역에서 홍대 주차장 거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유니클(UNIQCLE)은 클래식 자전거를 판매하는 자전거 전문 숍이다. 자전거 전문 숍은 크고 넓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이 작은 반 지하 공간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자전거와 소품들이 가득하다. 이제 클래식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옷 가게와 카페들 사이에 있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형 평수의 반 지하 공간은 공간을 깊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전거와 소품의 배치도 이러한 공간의 영향을 받았다. 공간을 더 확장하지 않고, 자전거를 조립하거나 수리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두어, 자전거 소품들은 제품 디스플레이에 집중한 것을 알 수 있다.
카페’ 꿈꾸는 다락방’
홍대 정문에서 신촌으로 향하는 길 골목에 위치한 ‘꿈꾸는 다락방’은 헨드 메이드 제품을 판매하기도 하는 카페이다. 다양한 반지하 공간들 사이에서 이곳이 눈에 띄는 이유는 입구 때문이다. 이곳은 다락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따뜻함과 아기자기한 느낌을 화이트와 파스텔 톤의 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핸드 메이드 제품을 판매하고, 공간 곳곳을 차지하고 있는 인형과 털실 역시 다락방이라는 컨셉과 맞아 떨어진다.
‘꿈꾸는 다락방’은 반지하라는 공간이 가진 특성이 이곳의 분위기나 컨셉을 보여주는 가장 큰 장점이 된 경우 중의 하나이다.
가방 셀렉트 숍 ‘스피탈필드(Spitalfield)’
‘스피탈필드(Spitalfield)’는 누구라도 한 번쯤 가 보고 싶은 공간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김지현 씨는 디자인 회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이 공간을 만들었다. 5평밖에 되지 않는 공간 안에 가방이나 소품 등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데 어려움이 컸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디자인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생각대로, 이 공간 안에 어떤 것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그녀는 주어진 공간이 작았기 때문에, 제품의 배치에 가장 많이 신경을 썼다. 대신 컨셉을 살리는, 소품들과 조명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이 눈에 띈다. 이곳의 전체적인 컨셉은 ‘로맨틱 빈티지’이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빈티지가 아니라 조금 더 낭만적이고 개성 있는 빈티지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가게 뒷면을 채우고 있는 서랍과 가구들 그리고 가게의 간판 역시 이러한 공간을 특성을 드러내는 요소들이다.
대안 공간 ‘플레이스막(Place MAK)’
‘플레이스막(Place MAK)’은 연남동에 있는 대안 전시 공간이다. 홍대입구역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연남동은 홍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오래된 세탁소와 주택가들 사이에 있는 이곳은 전시 공간이 있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곳에 9평 남짓한 작은 갤러리를 만든 이유는 이 공간의 성격과도 맞아 떨어진다. ‘플레이스막’이 일반적인 상업 갤러리였다면, 홍대 주변에 있는 공간을 마련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미술을 교육적인 목적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즐기기 위한 대안 공간이다. 때문에 이 공간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했다.
인테리어라고는 전시장을 가득 채운 흰 페인트가 전부인 것 같지만, 3주마다 한 번씩 열리는 전시를 위해서 바닥을 정비하고, 합판을 깐 벽에 흰 페인트를 덧칠하거나 레일을 설치하는 등 전시의 내용에 따라 전혀 다른 색으로 변하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