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사인 | 2015-06-30
현재 가장 핫한 트렌드는 음식이다. TV를 틀면 올 블랙의 ‘차줌마’가 근육질 팔로 김치를 담그고, 아리따운 두 명의 여자연예인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맛집을 찾아다니며, 8인의 정상급 쉐프가 게스트의 냉장고까지 털어 최고급 요리를 만들어낸다. 만약 당신이 소위 말하는 ‘먹방’을 보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내일은 반드시 맛집을 가겠노라 다짐한다면, 이태원의 세계음식거리를 추천한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은 물론, 음식만큼이나 이국적인 거리와 간판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기사제공 | 팝사인
60여 개의 세계 음식점이 밀집한 핫 플레이스
서울시 용산구는 미군 기지를 비롯해 외국 공관과 문화원, 이태원 관광특구 등이 있어 타 지역에 비해 외국인 거주자가 많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 덕에 이곳은 자연스럽게 이국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그중에 이태원은 세계의 맛과 멋, 문화가 공존해있는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세계음식거리는 이태원 해밀턴호텔 뒷길의 약 500m 구간을 말한다. 60여 개의 음식점과 술집이 밀집한 이곳은 세계 각국의 요리사가 자기 나라 고유의 맛을 현지 입맛에 맞게 요리해 총 30여 개 나라의 음식을 선보인다. 매일 수많은 방문객이 이 음식들을 먹기 위해 세계음식거리를 방문하고, 그 맛과 문화에 매혹되어 돌아간다.
국가의 컬러를 활용한 이국적인 간판
이태원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단연 상점과 그 간판에 있다. ‘세계음식거리’인 만큼 각 나라의 문화를 외관으로 표현하려 노력한 곳이 많았고, 굳이 문화를 표현하지 않는다 해도 세련되고 자유로운 이태원만의 스타일로 멋스럽게 꾸민 상점이 많았다.
일단 세계 각국의 문화를 표현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수단은 국기와 언어다. 국기는 모양과 컬러로 나라를 상징하는데, 매장은 이를 활용하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국기의 높은 인지도를 통해 매장을 쉽게 인식시킬 수 있다.
영국식 펍 <로즈 앤 크라운>과 이탈리안 음식점 <올드 스탠드>, 브라질리안 스테이크 <코파가바나 그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세 곳 모두 국기에서 가장 돋보이는 컬러를 간판과 매장 전면에 활용했다. 특히 <로즈 앤 크라운>은 영국 국기를 매장 입구에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간판의 금색 폰트 양옆으로 영국 귀족의 모습을 배치해 중세 잉글랜드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선보였다. 덧붙여 외관을 장식한 레드 포인트는 지루함을 덜고 장미의 생생한 느낌을 전달했다.
외국어 간판을 통한 낯설게 하기
문자는 세계 문화를 표현하는데 효과적인 또 다른 방법이다. 이태원은 국내 방문객 못지않게 외국인이 많다 보니 소통의 수단으로 외국어 간판이 필수적이고, 간판의 언어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외국어 간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나라의 문자를 직접적으로 써서 사람들에게 낯설음을 주거나, 해당 문화권의 유명한 표현을 영어로 써서 사람들에게 그 나라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세계음식문화거리 경우는 후자가 많았다.
인도&파키스탄 레스토랑 <모글>(the Moghul)과 멕시칸 푸드 <아미고스>(AMIGOS)이 그 사례이다. <모글>은 이슬람 성전 모양을 간판으로 활용해 the Moghul의 뜻인 모글 왕국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한 가지 컬러를 지정해 아이콘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컬러를 매치해 다채롭게 꾸몄고, 이슬람을 상징하는 다양한 사인으로 음식점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또한 이슬람 문화권에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 입구에 다수의 메뉴 사진을 배치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계 이미지를 빌리지 않아도 유니크한 음식점
세계음식거리라 해서 반드시 세계음식점만 있는 것도, 세계음식점이라 해서 반드시 그 문화를 표현하는 가게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거리에 음식점만이 줄지어 있다는 게 확실한데, 경우에 따라선 그 음식점이 낼 수 있는 최고의 간판과 디자인을 표현하며 다채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거리 한편에 나란히 있는 <메이플 트리>와 <프로스트>는 특정 국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굳이 세계문화권과 연결 짓자면 유럽의 고딕 양식을 떠올리게 하는데, 두 매장 모두 커다란 공간에 벽돌로 쌓은 단단한 외관의 이미지가 웅장함마저 느끼게 했다. 또한 이 두 곳은 간판을 최소화해 외관이 가지고 있는 심플함만으로 매장의 분위기를 형성했다. 간판은 무늬 없는 갈색 바탕에 영문으로 상호명만 단출하게 나타나 있다.
이태원의 세계음식거리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식도락가에게나 참신한 간판을 찾아다니는 간판업자에게나 그들이 원하는 바를 충실히 만족시킬 맛과 멋이 가득한 곳이다. 블로그를 통해 거리 곳곳을 살펴보는 것도 즐거움이고, 특별한 계획 없이 어느 음식점에 들어가도 다른 곳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특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햇살 좋은 봄날, 입맛도 돋우고 새로운 영감도 받을 겸 세계음식거리로 나들이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