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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게 꼭 필요한 디자인 - 권민주의 Plant’s Earth

2009-03-17

아름다운 것은 꼭 손에 넣고야 마는 인간의 욕심은 간혹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이것은 식물 애호가들이 감상을 목적으로 식물을 자생지에서 억지로 옮겨올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오직 인간의 입장에서 식물에게 더 나은 환경을 다짐하는 이 ‘오지랖’을 말 못하는 식물이 좋아할지는 미지수다. 이런 현실 속에서 권민주가 내놓은 ‘식물의 지구(Plant’s Earth)’는 식물에게 ‘지속 가능한 환경’을 제공한다.

에디터 정윤희 | 사진 스튜디오 salt

대개 화분에 식물이 심어진 화분들은 밀도가 높은 플라스틱이나 유리로 만들어져 있고, 이것들은 숨구멍이 없기 때문에 호흡이 자유롭지 않다. 식물은 잎으로 광합성을 하고 호흡하니 그깟 뿌리 부분을 감싸는 화분쯤이야 아무려면 어떠랴 싶지만, 그건 사람에게 코로 숨쉴 수 있으니 입은 막아버리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감기에라도 걸려 코로 숨쉴 수 없게 됐을 때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가혹한 고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흙으로 만든 옹기 화분이 자연에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 주지만, 사람의 입장에서 옹기 화분은 비쌀 뿐만 아니라 무거워서 환영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 식물이 자라면 좀더 큰 화분으로 옮겨주어야 하는데 이때 식물은 ‘몸살’을 앓는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으로, 사람들이 겪는 ‘물갈이’와 비슷한 것이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식물의 입장에서는 큰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예민한 식물은 말라 죽는 경우도 생긴다.

권민주의 Plant’s Earth는 흙으로 만든 화분이다. 식물이 처음 싹을 틔웠던 환경처럼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자연과 가장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 준다. Plant’s Earth의 성분은 배양토, 펄라이트, 그리고 밀가루 풀이다. 밀가루 풀만 제외하면 식물이 자라는 환경과 똑같은 셈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화분이 갈라지고 부서져 ‘흙으로 돌아갈 때쯤’ 그대로 좀더 큰 Plant’s Earth에 넣어주기만 하면 되니 식물이 몸살을 앓을 이유도 없어진다. 권민주는 시중에 나와 있는 목공용 풀이나 접착제는 무해하다고 자신할 수 없어 만들 때마다 ‘경건하게’ 밀가루 풀을 쑤어 만든다고 한다. Plant’s Earth는 ‘권민주다운 디자인’을 찾기 위해 좋아하는 것들을 써 내려간 메모에서 출발했다. 화원을 운영하는 부모님 덕에 어려서부터 식물과 친해질 수 있었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메모의 첫 단어를 식물로 채웠던 것. 이 화분, 저 화분에 옮겨지는 식물과 버려지는 화분이 못마땅해 Plant’s Earth를 디자인하게 되었다는 권민주는 “나무가 자라는 걸 멀리서 보면 지구가 화분처럼 보이잖아요. 나무는 지구라는 화분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이 ‘화분’을 벗어나지 않고요. 식물이 처음 심겨진 후 죽을 때까지 화분과 한 몸처럼 지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Plant’s Earth라는 이름을 붙였어요.”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테츠손(TETSUSON) 전시에서 Plant’s Earth를 처음 선보인 후 부족한 부분을 다듬어 2008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참가했던 것을 계기로 지금은 상상마당에서 판매하고 있다. 테츠손은 일본의 디자인, 예술, 건축학과 대학생 졸업전시회로 건국대학교가 한국 학생들의 참가를 주도해 참여할 수 있었다. 과정을 즐기는 그녀는 상상마당에 입고된 화분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만든다. 밀가루 풀을 쑤어 흙을 반죽하고 성형 틀에 넣어 굳힌 후에는 손톱으로 눌러 주물 흔적을 지운다. 간혹 친구들이 도와주며 ‘무슨 삽질을 그렇게 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권민주는 자신이 만든 디자인에는 가급적 기계의 손이 닿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래서 후속작으로 구상 중인 ‘무지개가 나오는 스프레이’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으려다 보니 언제 완성될 지 기약이 없다. 하지만 ‘사람과 생명에게 꼭 필요한 디자인’을 위해서는 한번쯤 거쳐야 할 과정이기에, 과정을 즐기는 권민주는 조바심 내지 않는다. “앞으로 디자인하는 작품들이 모두 제품화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학생 신분으로 거칠 수 있는 오류를 겪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생명에게 꼭 필요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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