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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하늘에서 떨어지는 산타클로스의 뒷모습은 어떻게 찍어야 하나?

2004-04-06


항상 계절을 앞서 가야 하는 것이 광고의 숙명입니다.
겨울엔 봄을, 여름엔 가을을, 가을엔 겨울을 준비하지요.
시간이 갈수록 이런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고, 사람들을 더 급하게 몰아 갑니다.
한여름에 가을을, 혹은 눈 덮인 풍경을 배경으로 삼기 위해 뉴질랜드로 북유럽으로….
굳이 해외로 로케이션을 떠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아니, 벌써!”하고 놀랄 때가 많습니다. 덕분에 스튜디오 안에 있지만 누구보다도 먼저 계절의 바뀜을 느낄 수 있지요. 꼭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거침 없는 세월의 흐름에 마음이 조급해 지기도 하니까요.

에버랜드 광고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계절마다 계절의 변화가 물씬 풍기는 다양한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고, 광고는 이보다 훨씬 먼저 미리 기획·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 광고의 경우 정확히 10월 13일에 촬영되었으니까 성탄절 두 달하고도 십이 일 전이었고, 이 광고의 기획안은 촬영보다 앞선 10월 초에 이루어졌을 테니 거의 석 달 전에 준비된 광고라 할 수 있겠지요.
에버랜드 광고는 이미지 합성을 많이 사용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사진보다는 일러스트(그림)를 사용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질문해 보기도 했는데, 많은 사진들을 합성하여 사용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사진의 사실성 때문이지요.
다른 경쟁 업체의 광고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인데, 일러스트를 사용한 경우 그 광고를 보고 그곳에 실제로 가보면 고객들이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군요.
그림에 묘사된 그런 구체적인 시설이 없거나 실물이 과장된 그림보다 못 하다는 겁니다.
사실 요즘 사진의 정교한 합성이 보편화 되다 보니 “못 믿을 게 사진이다”하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록 많은 이미지들로 합성된 사진이라 할 지라도 실제로 있는 시설이나 구체적인 사실을 사진으로 보여 주는 것이 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광고주의 설명에 공감을 했습니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지만, 전 촬영시안이 나오면 촬영 전 반드시 테스트 촬영을 해봅니다.
그래야만 실제 촬영에서의 문제점을 미리 발견하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광고주나 고객이 방문했을 때, 잘 준비된 촬영 세트와 어느 정도 다듬어진 테스트 이미지를 보인다면 그 분들께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2002년의 우체통 광고에서는 제작사 측에서 우체통이 오기 전, 제가 가지고 있던 메일 박스로 미리 테스트 촬영을 했었습니다.
고객이 우체통을 가지고 도착했을 때엔 이미 카메라와 조명 세팅이 끝난 상태였고 우체통과 손 모델만 교체하면 되도록 해두었지요.
2003년 편에서도 산타클로스를 위해 예행연습을 했습니다. 공개하기가 좀 멋적습니다만(제가 모델입니다^^)….


늘 혼자서 작업하다보니 이런 경우 대역 모델이 없어서 무척 힘이 듭니다.
사다리 맨 꼭대기에서 어렵사리 앵글을 확인한 다음, 셀프 타이머를 누르고, 재빨리 아래로 내려와서 송풍기(바람을 만들기 위해) 스위치를 넣고, 준비된 상자 위에 배를 깔고 납짝 엎드려 양쪽 손발을 모두 벌리기가 무섭게, “번쩍-, 찰칵!”.
이 동작들을 모두 해내기에는 셀프 타이머의 10초가 너무 짧더군요.
더군다나 맘에 드는 사진을 얻을 때까지 조명을 수정해가며 스무 번 가까이 반복해야 했습니다.
여러분들 보기에는 어떠십니까, 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곱지만은 않지요?
하지만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저는 혼자 있는 자유를 포기할 수 없나 봅니다.
비록 멋진 메인 이미지가 전면에 심플하게 드러난 모습으로 매체를 타지 못하고 수정되고 합성된 아쉬운 모습으로 광고가 제작되었지만 그 가운데에는 여전히 제 수고의 과정들이 아름답게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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