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리뷰

느리게 걷는 사막여행

2011-05-18


오늘도 낙타들은 느린 걸음으로 사막을 지나간다. 사막을 지나갈 때는 빠른 잰걸음보다 느린 걸음으로 가는 것이 좋다. 이 거칠고 메마른 땅에서는 서둘러 무엇인가 이루려고 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런 흐름에 자신을 맞기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다. 겉으로 드러난 사막의 모습은 그저 거칠고 황량한 땅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천천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생명이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역동적인 변화의 땅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글, 사진 | 사진가 고빈


누군가 번쩍이는 최첨단 사륜구동 자동차를 사막에 가져온다면 사막은 이내 그것을 광채 나는 고철덩어리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불볕더위와 모래바람에 자동차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사막 한 복판에는 수리점도 주유소도 없다. 만일 사막 한가운데서 차가 퍼져버린다면 그 비싼 자동차를 영원히 사막에 버려두고 와야 할 수도 있다. 설사 사륜구동 자동차로 어렵지 않게 사막을 가로질러 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서둘러 사막을 지나간다는 것은 사막에 대한 예의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먼지를 일으키며 모래벌판을 한번 휘익 휩쓸고 지나간 것에 불과하다. 그런 여행자가 기껏 사막에서 마주치는 것들은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쓴 채 초라한 모습으로 길거리에 피어있는 불쌍한 꽃 정도일 것이다.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굉음과 먼지와 매연 때문에 지나가는 곳마다 도마뱀과 토끼와 여우 그리고 수많은 이름 모를 새들과 곤충들은 숨을 죽이고 그 무서운 기계가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단지 건방진 까마귀 몇 마리만이 그의 광채 나는 자동차 앞에 날아와 혹시 얻어먹을 것이 없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았을까 싶다.



살아있는 사막을 느끼기 위해 라바리 부족(Rabari 剖族)을 따라 나서보기로 했다. 라바리족은 수 천 년 동안 인더스강 동쪽 사막에서 낙타를 키우며 유목생활을 해오던 사람들이다. 많은 라바리들이 현대 문명에 휩쓸려 사라져갔지만 아직도 사막 깊숙한 곳에는 진짜 라바리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변해가는 현대 문명과는 상관없이, 그들의 절친한 동반자인 낙타들과 함께 사막을 떠돌아다니며 느린 삶을 살아가고 있다.

라바리들은 땅과 하늘의 정령을 믿고 숭상한다. 그들은 화려한 터번을 두르고 독특한 장신구들로 몸을 치장한다. 그들이 이렇게 치장을 하는 것은 우주에 퍼져있는 에너지로부터 기운을 받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꾀하고자 하는 일종의 자연 숭배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붉은 색 터번은 생명을 상징한다. 그래서 붉은 천을 머리에 두르면 우주에 퍼져있는 생명의 파장이 그들을 감싸준다고 믿는다. 오렌지색은 신성(神性)을 뜻하는데 오렌지색 터번을 두르는 것은 신의 은총이 자신 안에서 넘쳐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푸른색과 녹색 계통의 터번은 지식과 지혜의 에너지가 자신을 감싸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보석 장신구들은 사막의 밤하늘에서 늘 마주치게 되는 별들과 관련되어 있다. 태양을 상징하는 루비는 물질적 풍요를 뜻한다. 달을 상징하는 진주는 정신적 안정을, 목성을 상징하는 노란 사파이어는 신의 은총을, 금성을 상징하는 다아이몬드는 결혼과 자손의 번창을, 화성을 상징하는 산호석은 창조의 에너지를, 수성을 상징하는 에머럴드는 지혜를, 토성을 상징하는 블루 에머럴드는 생활의 균형을 각각 상징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화려한 치장은 이 척박하고 메마른 사막에 피어나는 꽃처럼 생명력이 넘쳐나는 존재이고 싶은 그들의 소박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라바리들이 사막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낙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낙타들 또한 라바리들의 초지를 찾아내는 지혜와 지하수를 파서 물을 이용하는 지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서로는 수 천 년 동안 사막을 함께 걸어왔던 것이다. 라바리들은 낙타로부터 여러가지를 얻는다. 낙타를 키워서 시장에 내다 팔아 이익을 남기기도 하지만 낙타를 키우면서 부수적으로 낙타의 젖을 얻는다. 이것으로 차를 끓여 마시거나 발효를 시켜 요거트와 버터와 치즈를 만든다. 그런 낙타의 유제품들이 라바리들의 건강의 비결이기도 하다. 평소에 고기를 먹는 것도 아니고 불에 갓 구워낸 빵을 간단한 야채 커리에 찍어먹고 밀크티를 마시는 것이 고작임에도 불구하고 라바리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인물이 훤칠하다. 틀림없이 낙타의 젖 때문일 것이다. 그 젖 속에는 척박한 사막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명의 에너지가 듬뿍 들어 있을 것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낙타의 젖이 몸에 좋은 슈퍼푸드(Super Food)로 밝혀졌다고 한다. 낙타가 삶을 다하고 죽으면 그 가죽을 벗겨서 판다. 낙타 가죽은 신발을 만들거나 가방을 만드는데 쓰인다. 낙타의 털은 거칠지만 양탄자를 짜거나 가방을 만들기에 아주 좋은 울이다. 또 낙타의 똥은 얼마나 훌륭한 땔감인가?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 사막에서 낙타똥은 항상 돈 들이지 않고 구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고마운 연료이다. 수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건조한 사막에서 금방 마르며 화력 또한 좋다. 똥은 연료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짓는데도 사용된다. 낙타똥을 진흙과 쐐기풀에 섞어서 만든 집은 사막의 강렬한 태양빛 아래서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주며 그렇게 만들어진 집의 벽과 바닥은 통기(通氣)가 잘되기 때문에 그곳에서 자고 나면 몸이 가볍고 개운하다. 그래서 낙타가 이동 중에 똥을 싸면 뒤따라가던 라바리들은 이 착한 똥을 얼른 주어 담기 바쁘다.



물결처럼 결이 진 모래언덕을 천천히 걸어간다. 사람을 보고 화들짝 놀란 모래거미가 서둘러 모래 속으로 몸을 숨기고 눈만 빼곡히 내민 채 바라보고 있다. 바람은 어디선가 물 내음을 가득 싣고 불어오고 있다. 저 너머에 오아시스 마을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낙타와 염소를 키우기도 하고 오아시스 주변에서는 땅을 경작해 농사를 짓기도 한다. 사막에 해가 저물자 오아시스 마을의 사람들은 모닥불 앞에 둘러 앉아 즉석에서 지은 시를 읊는 시인이 된다. 어디선가 날아든 부엉이가 나뭇가지에 앉아 시인의 노래를 듣고 있다. 낙타들도 피곤한 하루를 뒤로 하고 시인의 노래에 귀를 쫑긋거린다. 모닥불이 꺼지고 모두가 잠든 밤이지만 사막 하늘의 펼쳐진 별들의 말없이 대화는 계속되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08년 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facebook twitter

월간사진
새롭게 떠오르고 있거나,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진가가 월간사진을 통해 매달 소개되고 있습니다. 월간사진은 사진애호가와 사진가 모두의 입장에서 한발 앞서 작가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심도 깊은 사진가 인터뷰와 꼼꼼한 작품 고새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대표 사진잡지입니다.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