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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제 3의 눈

2011-05-27


그 해 겨울, 나는 인도의 갠지즈 강가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가의 아침은 강에서 피어오른 짙은 안개로 하얗게 가리워지곤 했는데, 인도를 방랑하는 내 삶 또한 온통 안개 속에 가리어져 앞을 내다볼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 땐 사진을 찍는 것이 의미 없는 짓거리처럼 느껴졌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유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카메라를 강물에 집어 던지고 싶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사진을 찍는가?’ 나아가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어느 곳에서도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내 삶은 점점 미궁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글, 사진 | 사진가 고빈


그런 나날이 계속될수록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져만 갔고, 나는 그 근원적 고민 때문에 달아오른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강이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보리수나무 그늘을 찾아가 넋을 놓고 흐르는 강을 바라보곤 했다. 그 넉넉한 나무 그늘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은 어느새 잔잔히 흐르는 강물처럼 평온한 상태가 되곤 하였다.

그날도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머리를 식히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나무 그늘에 어떤 낯선 사내가 떡하니 가부좌를 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옷도 걸치지 않은 나체로, 몸에는 온통 횟가루를 바른 채, 커다란 삼지창 지팡이를 꽂아놓고 어디서 주워왔는지 사람의 해골과 호랑이 가죽까지 깔아놓고 있었다. 보아 하니 거렁뱅이 떠돌이 성자인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그 이상한 사람의 정체를 물어보았더니 부두바바라고 하는 흑마술을 부리는 밀교 수행자이니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귓뜸을 해준다. 동네 사람들도 그가 동네에 있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도 인도의 밀교 수행법들이 보통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소위 어둠의 길을 통해 깨달음으로 다가가는 수행법이란 이야기를 익히 들어와서 알고 있었던 터였다.

나는 그 보리수나무와 함께 하는 나의 평화의 시간을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혹시 그와 가까이 지내면 그가 이상한 방법을 써서 내 정신을 더 혼란케 할 것 같은 두려움 또한 있었다. 그래서 그와 자리다툼을 하는 것보다는 그가 그 자리에서 떠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은 또 한 달이 되었다. 부두바바는 여전히 보리수나무 아래를 지키고 있었고 내 평화로운 마음의 안식처를 되찾는다는 생각은 이제 거의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 저곳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뒷골목을 헤매고 다니다가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 보리수나무 앞에 멈추었다. 부두바바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부두바바는 손을 들어 나를 불렀다. 나는 왠지 그와 말을 트고 지내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흑마술을 써서 내 정신을 혼란케 만들 것이란 걱정 때문이 아니라 괜히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과 말을 트고 지냈다가는 손해만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 보리수나무 뿌리 틈의 굴에서 강아지 세 마리가 아장아장 기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강아지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한없이 자비로워 보였다. 그 장면을 보고 그에 대한 내 마음속의 긴장이 약간 누그러졌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마주한 나는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왜 오랫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느냐, 깨달음의 길을 찾는 자가 이런 속세의 장소에 집착해서야 되겠느냐며 그에 대한 불편한 심사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자 그는 자비로운 눈빛으로 강아지들을 가리키며 강아지들의 어미 개가 강아지를 낳고는 그만 세상을 하직했다면서 그 강아지들이 혼자 힘으로 자랄 수 있을 때까지 이곳에 머무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의 마음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진심은 그에 대한 나의 편견과 오해를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게 했다.

그 후로 우리는 강아지들이 자라서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매일 나무 밑에서 만나 생명을 돌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마시고 명상을 했다. 우리는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했기 때문에 말로 통하는 그 이상으로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는 늘 ‘삽꼬망떼해’라는 말을 중얼거리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만물은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뜻의 말이었다. 하도 그 소리를 입에 달고 살길래 나는 그의 그런 행동이 그저 상투적이고 습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하루는 그가 땅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며 ‘태양이 식물에게 빛을 주고, 식물은 새에게 열매를 주며, 새는 씨앗이 멀리 퍼져나가도록 돕고, 씨앗은 땅속에 자신을 묻으며, 땅은 또다시 씨앗에게 생명을 준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로가 서로를 돕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 마치고는 나의 미간에 붉은 점을 찍어 주었다. 인도인들이 이마 한가운데 찍는 그 붉은 점은 ‘제3의 눈’이라 하여 영혼의 눈이자 마음의 눈이며 무한한 상상력의 창(窓)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 이전에도 인도를 여행하며 무심히 미간에 점을 찍어본 적이 있지만 그때처럼 강렬한 의미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아닌 새롭게 세상을 보는 방식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제3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물리적인 두 눈으로 보는 세상처럼 만물이 전체로부터 분리되고 각각의 다른 존재로서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들이 보이지 않는 그물로 서로 연결되어 서로가 서로를 떠받들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제3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너와 내가 남이 아닌 전체로서 하나의 가족이 된다. 그러므로 서로간의 존중을 통해 조화와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09년 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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