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리뷰

영정사진과 사진가

2011-06-27


여섯 달 동안의 포토에세이 연재가 이번으로 끝이다. 한편으론 부담감에서 벗어난 시원한 기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든다. 일반 잡지가 아닌 사진 전문지여서 더 많이 긴장되고 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했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책을 출간했지만 여기에 연재한 에세이는 책을 출간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 사진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스스로 제시하는 기회가 되었으니 값진 경험이었다. 마지막 연재의 주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여러 주제를 올려놓고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영정사진으로 정했다.

글, 사진 | 사진가 신미식



처음 영정사진을 촬영하러 가던 때가 떠오른다. 영정사진이라면 마음의 죽음을 앞둔 어른들의 마지막 사진 같은 생각이 들어서인지 촬영하러 가는 내내 얼마나 마음의 부담이 있었던지.


그런데 이런 내 마음과는 다르게 촬영현장에서는 오히려 즐거운 잔치가 벌어졌다. 동네 어르신들이 오랜만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갖는 기회였던 것이다. 마치 개구쟁이 어린아이처럼 먼저 찍히는 사람에게 짓궂은 농담을 건네며 한껏 분위기를 띄워주기도 한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영정사진을 촬영하게 되었다. 한번의 경험을 거치면서 영정사진을 촬영할 기회가 많아졌다.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연락해오는 분들을 통해 기회가 될 때마다 촬영을 했다. 마치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촬영하듯.


어르신들의 사진을 촬영하다보면 유독 손과 발을 많이 보게 된다. 이들의 손에는 긴 세월을 인내하며 살아오신 연륜이 묻어난다. 거칠고 투박하게 변해버린 손이지만 자식들의 안위를 위해 삶의 도구로 사용되어진 손은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답다. 비록 매끈하게 잘 빠진 손은 아니지만 이분들의 손에서 느껴지는 삶의 진득함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얼굴을 찍은 뒤 마지막으로 손에 카메라 렌즈를 고정하면 “다 망가진 손은 뭐하러 찍어”라며 부끄러워하시며 손을 감추려하신다.


영정사진을 촬영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건강이 좋지 않아 고개를 세우기도 힘들어 하던 할아버지와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 짧은 머리가 부끄러워 머리에 수건을 쓰고 와서는 끝까지 벗으려하지 않던 할머니. 서로 옷을 바꿔 입으며 박장대소하던 문경의 친구 할머니. 모두가 소중한 기억들이다. 사진이 주는 의미는 다양하다. 그날의 시간을 추억하고 소개하면서 사진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본다.



할머니의 아름다운 주름

생전 처음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손에 얼굴을 맡기고 곱게 화장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이분들이 살아온 시간들을 짐작해본다.

아무리 화장을 해도 가려지지 않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치열하게 살아왔을 지난 시간의 흔적이 가득한 얼굴이지만

할머니의 주름에서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평온해 보이는 얼굴에서 세월이 주는 숭고함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내게 얼굴을 맡기신 할머니의 잔잔한 미소가 행복해 보여서일까?

시간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겨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컴퓨터로 주름을 조금씩 지워드리는 것이 전부다.

그렇다고 질곡과도 같았던 삶이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잠시나마 젊어진 사진을 보는 행복을 드리고 싶다.

내겐 아름답게 느껴졌던 주름진 얼굴이 당사자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당신이 살아온 부끄럽지 않았던 삶을 존경합니다.

짧게 자른 머리가 부끄러워 수건 쓰고 찍고 싶다며 수줍어하던 당신의 마음을 사랑합니다.

예쁘게, 예쁘게 찍어드릴게요.

그래서 할머니가 사진을 보면서 활짝 웃을 수 있게 말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귀한 당신의 얼굴을 아무런 의심 없이 내게 맡겨주셔서

그리곤 내 손을 꼭 잡아주셔서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 금산에서



고개를 세우다

사람을 찍는 것처럼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것도 없다.

그것도 낯선 어르신의 영정사진을 찍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평범하지 않은 힘든 삶을 살아온 분들 앞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쉽게 셔터가 눌러지지 않는 이유를 나는 모른다.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리면서

파인더에 고이는 눈물을 가슴으로 닦아내고서야 겨우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찍은 사진이 이분에게는 어떤 의미로 간직될지 알 수 없다.

한복과 정장을 곱게 차려 입고 오신 다른 분들과 다르게

깔끔하지 않은 평상복 차림으로 오신 할아버지의 부자연스러운 행동과

무거운 얼굴 표정은 나를 더욱 힘겹게 했다.

의자에 앉아있는 것조차도, 고개를 바로 세우기도 힘겨워 보이던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입의 떨림은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했다.

다른 영정사진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이 한 장의 사진이 나에겐 어떤 의미인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는 할아버지 앞에 무기력하게 서있는 사진가일 뿐이었다.

- 예산에서



아버지의 손

우리를 위해 애쓰신 부모님을 생각한다.

나는 아무것도 드린 게 없는데 자꾸만 내 걱정을 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해본다.

나에게 아버지는 큰 바위였고, 높은 산이었으며, 말없는 고목이었다.

그 고목 밑에서 자란 나는 이제 아버지가 나를 가진 그때의 나이가 됐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아버지가 되지도 못했으며

그럼에도 나는 아직 아버지의 철없는 아들일 뿐이다.

오늘 나는 다른 아버지에게서 내 아버지를 떠올린다.

다른 아버지의 손을 보면서 내 아버지의 손을 그려본다.

더 거친 손을 가지신 내 아버지의 손을 찍을 자신이 없다.

그것은 아픔이었기에

자식들의 안위를 위해 도구로 사용되었던 이 땅 아버지들의 거친 손을 사랑한다.

- 경산에서



행복하세요

영정사진을 찍으면서 만난 분들의 삶은 다양했다.

할머니는 앞을 못 보시는 분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여쭤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모습으로 살아오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한 번도 자신의 얼굴이 담겨진 사진을 본 적이 없을 수도 있겠지.

얼굴에 화장은 해보셨을까?

단 한 번도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본 적이 없을지도 모를

할머니의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발라드렸다.

그리곤 정성스럽게 화장을 해드렸다.

곱게 머리도 빗겨드리고 옷매무새를 고쳐드렸다.

그렇게 정성을 다한 할머니를 내 앞에 앉혀드렸다.

나를 보지 못하는 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할머니 저를 보세요.”

기울어지는 고개를 세워드렸다.

“할머니 웃어보세요.”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옅게 띠우신다.

“할머니 너무 예쁘세요.”

“웃으시면 더 예쁘실 거예요.”

그렇게라도 잠시나마 웃음을 찾아드리고 싶었다.

할머니는 예쁘다는 말에 소녀처럼 함박웃음을 터뜨리셨다.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답답함을 안고 살아오신 그 세월에

잠시나마 웃음 짓게 해드린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른다.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할머니의 웃음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웃음소리였다.

당신은 볼 수 없는 사진을 찍으러 오신 할머니의 그 마음을 생각해본다.

눈으로 카메라를 보지는 못하지만 나를 바라보던 그 마음을 기억한다.

건강하시길, 눈물 흘리시는 일 없이 오래 행복하시길….

- 금산에서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면 후보정을 해야 한다. 그 어떤 사진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영정사진은 본인에게도 중요하지만 가족에게도 더 없이 중요한 사진이 된다. 돌아가신 부모의 사진을 보며 애틋한 마음이 들기에 더욱 그렇다. 영정사진은 다큐멘터리 작업이 아니다. 나에게 만족스런 사진이 아닌 모델 당사자와 가족들의 마음에 드는 사진이 돼야 한다. 그래서 다른 사진보다 더 많은 후보정이 필요하다. 비록 내가 보기엔 아름다운 주름일지라도 본인은 싫어하신다. 가능하면 깨끗한 얼굴을 원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비록 사진에서나마 조금씩 그분들의 세월을 지워나간다. 어쩌면 그것이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인 셈이다. 평소보다 10년 이상은 젊고 아름다워진 사진을 받아든 어르신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처럼 보람된 일이 또 있을까? 사진가로 살아가면서 누리는 행복이다.


*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09년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신미식의 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를 누르지 마라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들과 필자 신미식에게 감사드립니다.>




facebook twitter

월간사진
새롭게 떠오르고 있거나,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진가가 월간사진을 통해 매달 소개되고 있습니다. 월간사진은 사진애호가와 사진가 모두의 입장에서 한발 앞서 작가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심도 깊은 사진가 인터뷰와 꼼꼼한 작품 고새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대표 사진잡지입니다.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