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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일본 지진 이후 한일 기록 사진문화를 보다

2011-10-28


쓰나미 참사 현장을 정리 중인 자위대원들이 피해 가옥을 한 채씩 수색하며 가재도구나 귀중품을 찾는 중이다. 휩쓸려가지 않은 물건이 남았다면 다행이지만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거나 쓸만한 것들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빠뜨리지 않고 수습하는 것 중 하나가 가족앨범과 사진이다. 자위대원 옆에는 마을주민들도 보인다. 절망감에 무릎이 꺾여 제대로 서있기도 힘겹지만 복구에 손을 놓을 순 없다. 누구의 손길인지 폐허더미 속에서 한 장 한 장 찾아낸 사진을 성한 담벼락에 줄을 매달아 빨래집게로 말리는 중이다. 사진 아래에는 ‘00씨, 사진 찾아가세요’ 메모지가 붙었다. 사진 안에선 이번 대재앙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갈린다.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서는 평화로웠던 한 때와 악몽 같은 현재가 공존한다. 과거의 기억은 살아남은 이의 삶이 계속되도록 이끈다. 갑자기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누구랄 것도 없이 뛰어와 사진부터 걷어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기사제공 | <월간사진> 2011년 5월호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쳐 3만명이 넘는 인명 피해를 남긴 일본 대지진에서 유독 눈길을 끈 것은 일본인의 가족앨범, 사진첩이었다. 쓰나미가 덮쳤을 때 2층으로 피신했다가 다른 건 몰라도 가족앨범은 가져와야 한다며 내려갔다가 변을 당한 79세의 하마다 가스타로씨의 사연은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가 챙기려고 했던 것은 손자들과의 추억이었다. 나중에 1층에서 발견된 시신은 가족앨범을 가슴에 품고 있어 주변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또 폐허더미 속에 나뒹구는 가족사진은 일본 언론에 자주 소개된 이번 대재앙의 상징적인 이미지였다. 복구 현장에서도 사진은 여느 귀중품과 마찬가지로 소중히 다뤄졌다. 일본인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일까? 디지털 이후 우리에겐 점차 사라지는 아날로그 가족 사진첩이 여전히 흔하면서 귀하게 대접받는 일본의 사진문화는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삶의 보고서와 같은 가족사진첩의 특별함

분명한 건 사진을 통한 일본 가정의 기록과 기억문화가 우리와 다른 무게감을 가지면서 아날로그적인 형태를 띤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사진대학을 나온 사진가 임지원은 “성장앨범과 기족앨범이 없는 집을 찾기 어렵다”며 “우리가 백일과 돌 때 정례적으로 아이들의 기념사진을 찍으면 일본은 매해 그것도 사진관을 찾아 정식으로 찍어서 성장앨범을 만든다. 또 입학식 때는 정문에서 학교이름이 나오게 기념사진을 찍는 게 관례이고, 커서는 성년식 때나 중매 사진을 위해 부모와 함께 사진관에 가서 찍는 게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설명했다. 또 “앞선 출판문화의 영향인 듯 일본인들은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우리처럼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는 것보다 사진첩을 만들어 보관하는 방식을 더 친숙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록을 중시하는 일본의 국민성도 한몫한다. 타마미술대학교에서 유학 중인 윤여헌은 “형식을 중요시하며 매뉴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일본인에게 사진은 보고서 같은 존재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앨범을 선물하고 만드는 것 역시 보편화된 일본의 사진문화다. 한 미술계열 유학생은 일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한 뒤 기숙사로 거처를 옮기면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평소에 깍듯하면서 거리를 두던 일본 가족이 마지막날 앨범 한권을 이별 선물로 준 것. 언제 인화했는지 가족들 개개인의 사진과 함께 찍은 사진이 앙증맞은 크기의 사진첩에 꽂혀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 친구나 가족에게 여행 보고를 할 때도 앨범을 통한다. 핸드폰이나 카메라에 저장한 사진 대신 인화한 사진으로 만든 앨범이 일본인에겐 더 익숙한 여행 보고의 방식이다. 그래서 어디든 즉석 인화기가 흔하다. 동네 사진관은 물론 웬만한 편의점과 가전제품 매장에서 다수의 즉석 인화기를 볼 수 있고, 누구나 부담없는 가격에 사진을 뽑는다.


일본인의 사진 애착, 일상의 기록으로 연결

사진 자체의 높은 인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대중문화에서 사진가는 인기 있는 직종이고, 사진 자체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남다른 편이다. 따라서 인기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인공의 직업이 사진가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국내에 소개된 영화 중에서는 ‘연애사진’,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의 남녀 두 주인공이 모두 사진을 찍는다. 경기 악화로 예전만 못해도 출판대국인 일본에서 사진집의 인기는 여전하며, 사진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다. 70년대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집이 성공한 이후 대형 출판사들이 사진집 출판에 뛰어들어 시노야마 키신의 사진집 ‘Santa fe’는 150만부가 팔렸다. 윤여헌은 “일본인들은 사진을 자신들의 고유문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사진에 애착이 강하며, 이를 지키고 전파하려는 노력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일본사진의 짙은 기록성은 전형적인 가족사진이나 일상을 기록한 사적인 사진으로 등단하는 사진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아라키 노부요시다. 그는 신혼여행에서 아내를 찍으면서 사진과 인연을 맺고 이후 신혼여행을 기록한 사진집 ‘센티멘탈 여행’으로 등단했다. 아라키 이후에도 가족과 일상은 여전히 일본 사진가들의 주요한 테마다. 자신의 가족과 주변의 해프닝을 대상으로 ‘우메메’, ‘할배님’ 등의 사진집을 낸 우메카요는 이미 30만부가 넘는 사진집 판매고를 올렸고, 자신의 가족과 함께 코믹한 연출사진을 찍는 아사다 마사시는 2009년 일본 최고 권위의 신인상인 ‘기무라이헤이 사진상’을 받았다. 싸이월드에서나 볼 수 있는 사진이 인기를 끄는 이유에 관해서는 다소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가족사진에서 오는 일본인들의 갈증을 자연스럽고 쉬운 사진으로 해소했기 때문이라는 평이다.


기록을 하찮게 대하는 우리 사진문화와 대비

이처럼 사진을 통한 일본인의 일상에 관한 기억과 기록문화가 전통에 기반해 여전히 현재형이고,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중이라면 우리는 조금 다르다.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로 인해 사진은 일상의 공기처럼 비중이 커졌지만 의미 없이 사라지는 이미지로 인해 가벼워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는 일상의 기록사진이 갖는 가치나 담론이 자리매김되지 못한 원인이 크다는 지적이다. 사적인 사진을 재조명하고, 역사적이고 미학적인 가치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적었다는 것이다. 올해 초에 열린 서울사진축제의 전시 중 하나인 <삶을 기억하라>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전을 기획한 사진기획자 송수정은 “전시장에서 고상하게 보는 예술사진과 일상에서 생산되는 사진을 구분하려는 우리 안의 이중적인 태도로 인해 사진의 담론에서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을 수 있다”며 “일상의 사진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역으로 미학이 무엇인지 되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골 정미소를 복원한 전북 진안의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는 옛 기록사진을 통해 공동체를 모색하고 체험학습의 장을 제공한다. 이곳의 김지연 관장은 시골에서 옛날 사진을 수집하러 다니면서 ‘기록에 대한 하찮음’이 생각보다 우리 사고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고 전한다. 여기엔 개인뿐만 아니라 학교 등 공공기관도 포함된다. 김관장은 “일제강점기와 동족상잔의 역사를 거치며 뭔가 흔적을 남기는 일을 두려워하는 등 우리에겐 기록의 말살이 생존의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고 말한 뒤 “옛날 사진을 내놓는 분들도 자신의 사진이 남들과 공통의 기억으로 공유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어떤 분은 후손들이 귀찮은 대상으로 여길까봐 죽기 전에 없애야 한다고까지 생각한다”고 전했다. 기록사진의 주체가 과거 소수에서 이제는 모두가 된 만큼 그것의 가치를 공유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일본 지진 이후 취재하고온 포토저널리스트 김재송

쇼보당을 아시나요?
대재앙 이후 변화상 밀착해 기록



3월11일 오후 2시경, 일본 동북부 지방에서 발생한 지진은 평소와 달랐다. 전에 없던 강진이 3분간이나 지속돼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켰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지진 때마다 오던 휴대폰 문자 경고음도 그날은 없었다. 곧이어 두 번째 강진이 발생했고 10여분 뒤에 거대한 쓰나미가 조용히 덮쳐왔다.

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일주일여가 지난 뒤,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김재송(38, 사진)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북쪽으로 28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해안마을인 오후나토를 찾았다. 어떤 매체의 의뢰(어사인먼트)를 받아서 간 게 아니라 순전히 자비를 들여 참사 이후의 변화상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방사능 우려로 각국 보도진과 구호대원들마저 철수할 때라 주변에선 ‘사진 한번 찍고 말거냐’는 만류가 심했다. 그러나 이전에 그가 취재했던 지역과 여건을 생각하면 더한 상황은 아니었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북인도의 토굴에서 5개월을 살면서 현지인을 취재했고, 2008년에는 미얀마 사이클론 참사 현장을, 2009년에는 6년 전의 쓰나미로 여전히 복구되지 않고 있는 인도양 해변지역을 걸어서 돌면서 취재하고 왔던 그다. 이번에도 매끼 컵라면으로 때우고 추위에 떨어야 했지만 지붕 있는 집에서 잘 수 있어 호강한 축이라고 한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프리랜서에게 해외 취재는 무모하게도 보인다. 그러나 그는 “내가 왜 이곳에 있고 무엇을 담을지가 명확하면 뭐든지 다 해결되는 것 같다”며 웃는다. 아직 잘 팔리진 않지만 자신의 사진이 ‘잘 쓰이길’ 바란다는 김재송을 만나 일본 지진 취재 이야기를 들었다.


매체의 어사인먼트도 없는 상황에서 들어갔다. 어떻게 들어갈 생각을 했는가?

뉴스 속보를 보자마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진과 쓰나미 취재가 처음이 아니었고, 빨리 반응하는 이유는 불교단체인 정토회의 국제구호단체인 JTS에서 수년째 자원봉사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JTS가 미뤄질 것 같아 먼저 움직였고, 공교롭게도 나중에 JTS가 내가 취재하던 지역으로 들어왔다.


쓰나미가 오고 일주일 뒤에 들어갔다. 취재 방향은 어떻게 세웠는가?

속보성 취재는 아니었다. 한 도시에 정착해서 지진 이후 도시와 사람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기록하려 했다. 패닉상태에서 점차 현실을 인식하는 시점에서 사람들의 삶과 재건 과정이 테마였다. 3월18일에 니가타로 들어가서 공항에서 다행히 교민 철수 버스를 얻어 탈 수 있어 역으로 센다이로 들어갔다. 센다이는 일본 동북의 주요도시로 우리나라로 치면 광주광역시 정도의 인구와 크기다. 모든 상가가 문을 닫았고 쇼핑몰 앞만 긴 줄이 서있었다. 실감이 안 났지만 외곽은 쓰나미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어 도심과 달랐다. 이곳에서 2~3일을 보내고 간 도시가 해변도시 오후나토였다. 걸어서 모든 곳을 다닐 수 있고 혼자 커버가 가능한 작은 도시였다. 사망자가 천명 단위가 넘는 카마이시와 니쿠젠타카타라는 두 큰 도시와도 붙어 있다. 이곳은 정확히 51년 전에 쓰나미가 왔던 곳이다. 지난해 50주년 기념식이 열렸고, 세계 최장 길이의 쓰나미 방호벽과 쓰나미가 왔을 때 대피방향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있었지만 모두 박살났고 무용지물이 되었다.


4월 3일 귀국 전까지 머물렀다. 어떻게 살았는가?

컵라면을 가져갔지만 뜨거운 물을 구할 수 없었다. 타쿠야끼 8개로 하루를 버티었다. 오후나토에선 숙박할 곳부터 찾아야 했다. 해변가는 모두 휩쓸려가 고지대로 방향을 잡고 한참을 걸었는데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처음 만난 사람이 운좋게 영어가 되는 일본 NGO 관계자였다. 그가 호텔로 전화를 해줘 빈 방을 알아봐줬는데 가격이 너무 비쌌다. 오늘 하룻밤만 호텔서 자고 내일 다시 알아보려던 차에 두 번째 사람을 만났는데 NGO 관계자가 일본어로 한참을 얘기한 후 표정이 밝아졌다. 이 분이 마을 이장이신데 내 사정을 설명하니 자기 집에서 홈스테이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12일을 머문 이장 댁은 고지대에 있어 쓰나미를 피했고 집 아래 30미터까지 쓰나미에 휩쓸렸다. 이장 가족의 도움이 없었으면 장기 취재나 한 지역을 거점 삼아 모든 것을 훑어보겠다는 내 계획은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도시를 거점삼아 장기 취재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취재가 가능했는가?

두 가지다. 보름 정도 지나면서 피난소의 피난민들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기본적인 먹을거리가 해결되면서 현실을 대면하게 된 거다. 이들과 매일 만나며 오늘 기분은 어떤지, 밥은 잘 먹었는지 등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피난소 촬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주민자치 소방대인 쇼보당 분들과 같이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취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시신을 수습하고 잔해를 정리하는 피해 현장에선 자위대, 경찰, 소방대원, 쇼보당 네 부류를 만난다. 전통의상을 입고 온갖 잡일을 하는 쇼보당은 직접적으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지역민들로 현장에서 극도로 흥분하고 촬영 제지가 가장 심하다. 이들에게 많은 외국 기자들이 끌려나갔다. 오래 있으면서 이들과 함께 움직일 수 있었다. 3월 30일까지 시신이 나왔고, 초기에 하루 수십 구씩 나올 때마다 뒤로 갈수록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직접 눈으로 목격한 피해 정도와 복구 작업은 어땠는가?

개인적으로 2008년 미얀마 사이클론 취재 때와 비교됐다. 이때는 사망자만 20만명에 달했고 실종자는 집계조차 안된다. 피해 규모는 비교가 안되지만 일본이 더 힘들었던 이유는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 눈에 익숙한 농촌과 도시가 폐허로 변하고 우리와 닮은 사람들이 시신으로 나올 때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내가 있을 때는 복구보다는 정리 단계였고, 상당히 체계적이고 세밀하게 진행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잔해로 뒤덮인 길이 하나하나 뚫리고, 구획별로 차근차근 정리되는 모습이 체계적이었다. 1차로 자위대 포크레인이 한 구역씩 맡아 장해물을 제거하면 자위대원 10~20명이 들어가 귀중품과 집주인에게 필요하거나 중요할 것 같은 물건을 모두 챙겨 집터 앞에 가지런히 쌓는다. 안 딴 맥주캔 하나까지 챙기고, 빠지지 않는 게 사진이나 앨범이다. 그리고 집마다 개인금고가 있는데 여기에 손대는 사람이 없다. 자위대가 들고 나오면 경찰이 임시경찰서로 가져가 보관한다.


피해나 정리 현장은 그렇고, 엄청난 대재앙 앞에서 사람들은 어땠는가?

가기 전부터 ‘메이와쿠’라는 말을 들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인의 최우선 덕목이다. 최악의 현장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어떡하든 남에게 폐를 안 끼치려 하니 사진 찍기가 난감할 때가 간혹 있었다. 가령 찍어야겠다는 현장을 발견하고 앞으로 사람만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오던 사람이 나를 발견하고 저만치서 길이 아닌 담벼락을 타고 뒤로 지나간다. 또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자위대원에게 다가서면 어느새 내 뒤로 옮겨와 계속 얘기를 이어간다. 촬영에 방해가 될까봐 피하는 게 몸에 베인 것이다. 피난소에서도 어디서 구했는지 작은 박스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앞으로 지나는 사람 역시 고개를 숙여 예의를 갖춘다.


차분한 일본 언론의 보도방식이 국내에서 화제였다. 현장에서 만난 일본 사진기자들은 어땠는가?

일본은 언론사마다 지진이나 쓰나미 보도와 관련된 매뉴얼을 갖고 있다. 우연히 이 매뉴얼을 보았는데 인상적인 문구가 주인이 없고 아무리 심하게 파괴된 집이라도 함부로 들어가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한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장소와 손길이 닿은 물건을 함부로 밟거나 헤치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뉴타운 작업을 해봐서 그런지 더 크게 와닿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35mm 화각을 선호해 근접해서 촬영하는 편인데, 유심히 본 일본 기자들은 항상 떨어져서 찍고, 찍기 전에는 반드시 집주인이나 집주인이 없으면 주변에 있을 관련자를 찾아 안부를 묻고 촬영 허락을 받고서야 찍었다. 피난소도 기자들이 맘대로 드나들 수 없고, 기자들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공동취재단을 구성해 정해진 시간에만 들어가고, 포즈 요구나 몰려서 찍는 모습은 볼 수 없고 차분하게 취재한다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포토저널리스트로서 전망과 관련된 질문일 수 있다. 자신이 사진이 어떻게 쓰이기를 바라는가?

정토회 JTS에서 하는 말 중 ‘잘 쓰인다’라는 게 있다. 얼마전 명동 길거리에서 유명인들까지 참여한 제3세계 어린이를 돕기 위한 모금행사가 있었다. 모금통과 무대, 현수막에 내가 만나고 장난치며 놀던 아이들 사진이 붙었다. 행복하다고 할까, 내 사진이 정말 잘 쓰이고 있구나 느꼈다. 매체 일이 줄면서 전업작가로 산다는 게 솔직히 어렵다. 그러나 아직은 내 사진이 잘 쓰이는 것으로 만족한다. 개인작업으로 일본을 취재하면서 모두들 가기 꺼려하는 현장에 내가 있고 사진을 찍고 교류한다는 게 행복했다. 언젠가는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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