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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자연 그대로의 삶, 평화를 얻고 실천하다

2012-04-24


전기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비누를 쓰지 않는다, 용변 후에는 재로 덮는다, 돈을 주고 받지 않는다, 옷을 입거나 벗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레인보우 게더링(Rainbow Gathering)의 규칙 중 일부다. 레인보우 게더링이란 자연을 사랑하고 나눔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하는 모임이다. 도시 문명의 혜택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한달 동안 전기도 없이 함께 밥을 지어먹으며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조화로운 삶을 실천한다.

글│ 박지수 기자
기사제공│월간사진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매년 세계 각지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불편한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레인보우 게더링을 찾는다.

상업사진가로 활동하던 김명미(40,사진)는 2006년 태국에서 열린 레인보우 게더링에 처음 참여했고, 이듬해 호주의 레인보우 게더링에도 참여해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자연 속에서 서로 의지하는 생활을 체험하며 ‘느리게 사는 법’을 목격한 그녀는 레인보우 게더링의 여정과 사진을 묶어 책 ‘One Love, 천사의 걸음’(스테이지 팩토리 펴냄)을 지난달에 출간했다. 책에는 엘르와 보그 등 패션잡지의 화보와 이은미, 넬, 크라잉 너트 등 가수들의 음반재킷을 작업하며 10년 넘게 활동한 사진가답게 스타일리시한 스냅사진의 느낌이 전해진다. 또한 레인보우 게더링을 통해 바쁘게 살아온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의 모습을 고민하는 흔적도 엿볼 수 있다.

인디언풍의 하얀 옷을 입고 검은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그녀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레인보우 게더링으로 떠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리고 들뜬 목소리로 전하는 레인보우 게더링의 이야기는 밤을 새도 모자랄 것 같다. 그녀는 앞으로 세계를 여행하며 레인보우 게더링처럼 자연과 가까이에서 느리게 사는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그녀를 레인보우 게더링의 전도사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마음의 평화를 찾아 레인보우 게더링

10년 동안 상업사진가로 활동하다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까지 일 때문에 바쁘게 살았지만, 나만의 작업을 하고 싶다는 고민이 쌓여갔다. 2005년에 영화 ‘러브토크’의 포스터와 스틸사진 작업 때문에 4개월 정도 미국 현지에 머물렀다. 귀국했더니 사진을 그만뒀다느니 유학을 갔다느니 헛소문이 돌며 이상한 분위기였다. 몇 개월 동안 일이 들어오지 않자 사진을 그만둘지, 아니면 외국에서 사진을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차차 일이 들어왔지만 한번 심란해진 마음 때문인지 전처럼 일에 매진할 수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더 커다란 고민에 빠진 것이다. 복잡한 심경으로 마음이 힘들 때 우연히 히피문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특히 ‘재연’이라는 친구에게 레인보우 게더링의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떤 곳을 여행했나?
태국과 호주의 브리즈번, 바이런 베이, 님빈 등 주로 레인보우 게더링이 열리거나 히피 1세대들이 정착해 히피문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님빈에서는 폭우로 연기된 레인보우 게더링을 기다리며 2개월 넘게 농장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노동을 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우핑(Wwoof, Willing worker on organic farm)을 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배낭 하나와 카메라만 들고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레인보우 게더링을 소개해달라
초승달이 떠올라 그믐달이 지는 한달 동안 자연에서 공동체 생활을 한다. 무지개 색처럼 다양한 인종이 화합한다는 의미를 이름에 담았다. 이름처럼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많게는 2천여명까지 모여 함께 밥을 해먹고, 해변에서 명상과 요가 등을 하며 자유롭게 지낸다. 가장 자연에 가까운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전기 없이 지내며 비누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1972년에 미국에서 인디언들의 영혼을 달래는 모임으로 시작됐고 점차 물질주의와 소비주의에 반대하며 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실천하는 공동체의 성격으로 변했다. 예전에는 입소문만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모임이었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관광객도 찾아와 구경할 정도다.

처음 접한 레인보우 게더링의 분위기는 어땠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동화 속의 장면 같았다. 맑고 투명한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정글처럼 울창한 숲이 있었다. 벌거벗은 아이들은 해변을 신나게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한가롭게 산책을 하거나 명상을 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근심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면서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힘들지 않도록 흥을 돋구었다. 식사를 시작할 때는 모두가 손을 잡고 음식에 감사하고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내용의 노래를 한다. 식사가 끝나면 ‘마법의 모자’라고 부르는 모자를 돌려 자기가 내고 싶은 만큼 돈을 내며, 모인 돈으로 먹을거리를 사온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지만 작은 것도 함께 나누는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얼었던 마음 녹여준 ‘천사의 걸음’

불편한 점은 없었나?
친구 4명과 함께 갔는데 우리 중에 아무도 텐트를 가져가지 않았다. 대책도 없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웃음) 주변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구하고 커다란 나뭇잎을 모아서 말도 안되는 천막을 만들었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벌레들의 습격인데, 친구 중에 한명은 오른팔 전체가 벌겋게 부어오를 만큼 집중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또 간이 화장실이 오픈돼 있어서 무척 당황했고 공동 샤워장은 남녀 구분이 없어서 무척 민망했다.(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보름달이 뜨는 날에 열리는 ‘풀문 파티’는 레인보우 게더링의 하이라이트였다. 다들 얼굴이나 몸에 페인팅을 하고 아침부터 노래와 춤 등 다양한 장기자랑을 준비했고, 서커스에서나 볼 수 있는 저글링을 연습하는 사람도 있었다. ‘풀문파티’가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 쇼였다면 ‘천사의 걸음’은 잊지 못할 감동을 주었다. 어느날 밤에 해변에서 사람들이 양편으로 나누어 서있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이 생겨 가보니 ‘천사의 걸음’이라며 눈을 감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라고 했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사람들은 나를 쓰다듬어주면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아름다워요”, “당신은 뭐든지 잘 할 수 있어요” 등 따뜻하고 긍정적인 말을 해주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상적인 경험이었고, 얼어있던 내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사진은 어떻게 찍게 됐나? 자연스러운 스냅 사진이 인상적이다.
사람들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고, 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서 레인보우 게더링의 참뜻을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마다 양해를 구해야 하는 규칙 때문에 작업이 쉽지 않았다. 양해를 구하면 중요한 순간을 놓치거나 어색한 분위기가 돼서 망원렌즈를 사용해 멀리서 찍기도 했다. 주로 35mm 필름으로 찍었는데 100롤을 준비해 갔지만 40롤 정도만 촬영했다. 며칠이 지나자 사진촬영에 대한 불만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한명이라도 사진촬영을 불편해한다면 레인보우 게더링에 누가 된다고 생각해 더 이상 찍지 않았다. 사진작업을 더 하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오히려 사진에 집착하지 않고 레인보우 게더링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었다.

레인보우 게더링을 경험한 후 변화가 있다면?
레인보우 게더링에 도착해서 처음엔 누가 내 카메라를 가져갈까봐 조심하면서 촬영을 했다. 하지만 절대 남의 물건에 손대는 사람이 있거나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이기적인 내 자신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이다. 지금은 홍대 앞의 ‘생명평화 모임’과 한일 공동 평화모임인 ‘에오라’에 참여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연에서 하나가 되고 욕심 없이 서로 나누는 레인보우 게더링을 체험하면서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삶과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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