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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솟구친 머리 품어주는 북한산 옆 마당집

2012-05-07


“어디 계세요?” 손전화기를 든 그녀가 골목길 저쪽에 보였다. “난 벌써 당신을 보고 있는걸요.” 돌아선 그녀가 쑥스럽게 웃으며 다가왔다. 중국 텐안먼(天安門)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더라도 인파 속에서 그를 찾아내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번개를 맞은 듯 삐죽빼죽 하늘로 치솟은 그 머리카락은 ‘백만 불짜리’라 할 만하다. 처음 본 사람이라도 절대 그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머리 스타일이다. 궁금해진다. 밤에 잘 때도 그 머리인 채로 잠자리에 드는지, 매일 그 형태를 어떻게 가꾸는지, 숱이 빠지거나 두피가 손상되지는 않는지….

기사제공│월간사진

“젤을 발라 쓱쓱 만져주면 끝이죠. 미용실에 거의 안 가니 돈과 시간 절약되고. 머리카락이 더 건강해졌어요.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공부할 때 매일 밤 12시가 너머까지 작업하다보니 자꾸 흘러내리는 머리 걷어 올리는 게 거추장스럽더라고요. 그래서 묘책을 쓴 건데.”

단순히 간편하겠다는 실용의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의 적들을 제압하는 고슴도치의 몸피가 그러하듯, 그는 곤두선 머리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른 누구나 하는 아류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같다. 이런저런 목소리에 묻혀버리지 않으리라는 결연한 선언문 대용처럼도 보인다. 그가 해온 작업을 돌아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10세 이전에 이미 예술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 뒤 그는 ‘나는 왜 예술을 하지’라는 질문에서 한 치도 벗어난 적이 없다고 했다. 오로지 자기 속에서 끌어 오르는 답을 구하기 위해 전도양양한 회화를 때려치우고, 홀로 조각과 사진을 배우고, 도자기를 굽고, 옻칠과 나전칠기에 도전했다. 솟구치는 머리는 한마디로 ‘반발’의 표상이다. 어느 길로 걸어가더라도 ‘내가 그 중심이 되겠다’는 외고집이 거기서 피어나고 있다. 그만큼 뚜렷한 주관으로 일관한다. 생각한 데로 밀고 나간다. 개념으로 향하는 일련의 단계가 또렷하다. 장사 삼손의 힘이 뿜어져 나왔다는 머리카락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그래서 교포 1.5세대 작가 데비한(42)은 우선 머리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데비한의 이미지는 머리다’라는 명제가 가능할까.

철학적 기질이 비어져 나온 머리카락

북한산이 손에 잡힐 듯 건너다보이는 서울 수유리 인수봉로 201번지. 버스 정류장에서 2~3분쯤 걸어 들어갔을 뿐인데 도심의 소음은 간데없고 나지막한 담장들 따라 옹기종기 마당집들이 펼쳐진다. 치열한 전투를 치른 뒤 잠시 숨을 고르는 데비한의 휴식처다. 가끔 지인들과 바비큐 파티를 벌인다는 잔디 깔린 마당엔 결혼 선물로 받은 포도나무가 정취를 자아낸다. 텃밭에 푸성귀를 심어 비빔밥을 해먹고 차 한 잔을 끓여 들고 햇빛 바라기를 한다. 철제 계단을 따라 옥상에 오르니 푸른 하늘이 머리에 내려앉고 청록 산이 가슴으로 온다. 지붕과 벽을 맞대 가건물로 지은 작업실에서 매만진 ‘여신들’ 조상을 이곳에서 말린다. 3년 전, 인사동 건너편 안국동 옥탑방에 머물 때는 누릴 수 없었던 자유와 여유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누구인가’에 사로잡혀 있던 데비한에게 자연의 기운은 머리를 돌아가게 해주는 연료 같은 것이다.

원룸처럼 툭 터버린 마루방에서는 컴퓨터 작업이 한창이다. 지금 그의 머리를 사로잡고 있는 건 유방암으로 가슴을 들어낸 여성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아름다움도 있다’는 삶의 진실, ‘인생의 어떤 과정, 어느 스테이지에도 적절한 미감이 있다’는 걸 말하려 한다. 2004년에 시작한 ‘미의 조건’ 연작을 마무리하는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미의 조건이 너무 표면적인 담론에 머물러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미에 관한 개개인의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드러내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현대인이 힘들어하는 소통의 문제를 다른 사람이 시도 안한 예술 형태로 하고 싶은 거죠.”

지난해에서 올해에 걸쳐 그는 홍콩, 미국, 독일, 한국에서 숨 가쁘게 개인전을 열었다. 특히 올 2월 15일부터 3월 19일까지 미국 산타모니카 대학에서 연 ‘인식의 눈(The Eye of Perception)’전은 일종의 ‘홈 커밍’ 축제였다고 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며 응원하고 있는 가족, 그의 성장을 지켜본 UCLA의 은사들, 함께 고민하고 토론했던 뉴욕의 친구들이 데비한의 귀향이 가져온 변화와 그 결실을 확인하고 축하한 자리였다. ‘제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알리는 일종의 보고회이기도 했다.

“한국에 눌러앉겠다고 했을 때 다들 ‘너 미쳤니’라고 말렸어요. 강단에 서면서 틈틈이 작품 발표를 하는 순탄한 성공가도를 버리겠다는 뜻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미 전 안락한 삶을 던져버리고 나를 타오르게 하는 것, 나를 울리는 것, 완전히 다른 나를 지향하는 쪽에 나를 온전히 바치고 싶었거든요. 매번 번지 점프를 하는 심정이랄까요.”

사진가도 조각가도 아닌 비주얼 아티스트

2003년 가을 ‘영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귀국한 그에게 아시아 땅의 현실은 머리끝을 쭈뼛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내가 할 말이 있구나’ 머리를 치는 게 있었다. 11살 때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간 뒤 유목민처럼 떠돌며 바깥을 보던 그가 자신의 탯줄을 묻은 곳으로 돌아와 안쪽을 끌어안으려 했으나 그걸 찾을 수가 없었다. 미국적 가치에 경도돼있는 한국인들 얼굴은 그가 LA와 뉴욕에서 보던 얼굴과 똑같았다. 학생들은 운전면허시험 같은 미술입시를 통과하려 비너스와 아그리파를 외워 베끼고 있었다. 길거리 여성들은 서구형 미인의 면모로 일신하려 얼굴에 칼을 대고 쭉쭉 빵빵에 목을 매고 있었다. 한국인, 특히 여성들은 왜 타고난 아름다운 얼굴을 고치려 할까. 이들을 관찰하면서 데비한은 단순히 예쁘고 싶은 마음보다 성공을 향한 안간힘을 발견했다. 그렇게 제시된 미의 기준이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의 복합물이란 것도 깨달았다.

“전 페미니스트(여성주의자)는 아니에요. 다만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정의롭지 못함, 부정부패로 피해보는 마이너들의 심정을 예술이란 형태로 대변하고 싶은 겁니다.”

데비한은 ‘당신은 사진가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한다. 조각가도 아니고, 화가도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개념미술가들 태도에도 부정적이다. 손보다 아이디어에 의존했던 데 반발심을 보인다. 이천 도자기 공장에서 냉대를 받으며 몇 달씩 물레를 돌리고, 옻독에 올라 고생하면서도 옻칠에 도전했던 건 그가 몸이 뒤따르지 않는 머리는 공허하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 불러주길 원하느냐 물었더니, 잠시 머리를 곧추세운 뒤 이렇게 말했다. “뭔가 하나로 정의하는 건 의미가 없지만 꼭 듣고 싶다면 비주얼 아티스트(visual artist).”

데비한은 6월에 다시 떠난다. 자극이 필요해서라고 했다. 한군데 머물러 있는 게 힘들어서라고 했다. 때가 되면 흐르는 물처럼 그는 자신의 머리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것이다. 때가 되서 한국에 돌아온 것처럼 그는 집중할 수 있는 장소에 가서 다시 새 힘을 쏟아 붓고 견딜 셈이다.

“과연 진정한 예술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왜 창작을 고집하는가? 나는 아직도 이 질문에 대하여 머리가 만족할 만한 이성적인 해답을 찾지 못했어요. 그러니 머리가 가리키는 데로 흐를 뿐이죠.”

- 사진가 변순철은 우리에게 ‘짝-패’ 사진작업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 현대사진가의 아카이브 프로젝트로 자의식이 드러난 작가의 모습을 세밀한 작업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 정재숙은 대학시절 학보사에서 암실의 매혹에 빠졌던 전직 사진기자다. 지금은 중앙일보 문화스포츠 부문 에디터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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