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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사진판이여! 텔미를 들려다오!

2012-06-28


이번 기사는 참 먼 곳에서 쓰고 있다. 중국 내지의 쓰촨(사천)성 성도에서도 한참을 들어간 민강 대협곡의 완추완이란 곳이다. 몇 해 전부터 진행하고 있는 중국 서남지역 프로젝트의 막바지라 며칠 후면 개인 사진전이 있는데도 이 오지를 돌아다니고 있다.칭하이(청해)성에서 발원하는 민강은 간쑤(감숙)성과 쓰촨성에 대협곡을 만들며 사천분지로 흘러들어 거대한 충적평야를 만든다. 이 평야의 풍요로움은 진나라 때 이빈이 만든 도강언이라는 수리시설 덕분이다. 홍수해가 없어 촉국을 부국으로 만들 수 있었다. 삼국지 시절 유비가 탐내던 풍요로운 바로 그 고장이다.

글,사진│ 이상엽(이미지프레스 대표)

민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필자가 찾은 것은 고대 중국의 서북변 강자였던 ‘강족’이다. 갑골문자에도 등장하는 강(羌)족은 양과 사람이 결합되어있는 글자가 상징하듯 양을 치던 유목민으로 청해성과 감숙성에 살았다. 이들이 오래전 민강을 따라 사천분지로 내려 온 것이다. 이때 감숙성 무도지역의 저족과 혼융하면서 강저족이라는 ‘역사공동체’가 만들어져 중국 서남 일대(사천, 운남, 귀주)의 많은 민족들의 조상이 되었다. 하지만 일찌감치 이 지역은 중원의 지배를 받아 대리국을 끝으로 독자적인 국가를 성립하지 못했다. 하지만 산악과 고원지대라는 지리적인 특성으로 강저족의 고유한 풍습이 남아있어 많은 학자들의 관심 대상이자 오지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민족으로 남아있다.

놀랄만한 중국의 출판문화

하지만 이들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는 국내 학자들은 매우 적고, 여행자들 역시 인문지리적인 탐구 보다는 낯선 것에 대한 신기함과 오지의 낭만만을 추구해 서남지역에 대한 기록이 그리 풍부하지 못하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꽤 많은 책과 연구자들의 논문, 인터넷 등에서 떠돌아다니는 정보를 그러모아 봤지만 만족할 만한 자료들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현장에서 부딪치며 정보를 모으기로 하고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원추안과 같은 촌동네에서 <아패문화사> 라는 책을 본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530쪽의 방대한 자료와 사진을 정리한 이 책은 ‘아패장족강족자치주’의 강족 역사와 문화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장구한 기록문화를 갖은 중국의 문화역량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하지만 한번 더 놀랄 일은 성도의 서점에서 일어났다. 중국 여행 붐을 타고 활발하게 출판되고 있는 인문지리서들이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게다가 책의 질은 양을 압도하고 있었다. 깔끔한 편집과 사진의 아름다움은 번자체나 떠듬떠듬 읽을 수 있는 필자를 매료시키고 말았다. ‘이런! 중국의 출판물 발전이 이 정도였나!’ 한 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질 낮은 책을 만들던 시기는 가고 바야흐로 ‘장안의 지가를 높일’ 책들이 다시금 등장한 것이다. 특히나 중국과학원과 중국지리학회가 공동으로 발행하는 월간 <중국국가지리> 는 필자를 압도했다. 책의 편집과 사진, 인쇄는 그야말로 <내셔널지오그래픽> 에 버금가는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 월간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콘텐츠들은 중국의 각 출판사들이 앞 다투어 단행본으로 만들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판매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사진 중에서도 인문지리에 방점을 두고 있는 필자로서는 중국의 출판 상황이 한없이 부러워지는 대목이었다. 요즘 한국 사진계의 현상이나 출판시장을 비추어 보면 필자의 부러움이 이해가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한권 한권 고르다 보니 스무 권이 넘는 책과 수십 장의 중국 지역별 상세지도를 사고 말았다. 돌아가면 꼭 이 책들을 보여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번에 만날 ‘책에 미친’ 사진가다. 봉투 가득 들어찬 책을 들고 성도의 번화가를 돌아다니다보니 거리 곳곳에서 ‘한국’과 만난다. 이곳의 인기 음식인 한국스시 ‘김밥’과 ‘대장금’을 빙자한 한국전통음식점, 수많은 한국기업의 간판 등등.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온다. 무의식 중에 한번 찌르고! “텔미 텔미 테테레테테 텔미!”

‘텔미’같은 사진책은 없을까

우리 사회가 ‘텔미’ 열풍에 빠졌다. 소녀그룹 ‘원더걸스’의 디스코풍 노래와 춤에 남녀소노를 막론하고 빠져들고 있다. 중독증세까지 나타나고 있단다. 불황의 늪에 빠져있던 음악계가 오랜만에 활기에 차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래저래 한곡의 노래가 죽어가던(!) 음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 사진출판에도 ‘텔미’같은 히트상품이 없었는가? 있다. 몇 해 전 나온 윤광준의 책 <잘 찍은 사진 한 장> 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대형서점의 한쪽 구석에서 몇 해씩 팔리지 않는 책들로 가득했던 사진책 코너를 지금처럼 북적거리게 만든 장본인 중 한사람이다. 출간 당해에만 5만권 이상이 판매되었다니 억대의 인세를 받았다는 저자의 말이 풍은 아님이 분명하다.

사진계에서는 “윤광준이 사진가인가?” 되묻는 사람들도 있다. 사진계에 얼굴도 비치지 않을뿐더러 오디오 마니아의 필독서인 <소리의 황홀> 이나 <생활명품산책> 등으로 명성이 높다보니 그가 사진가인 것이 낯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웅진출판 사진부장을 지낸 엄연한 프로 사진가이자 다큐멘터리작가이다. 사실 그와는 연배 차이도 있을뿐더러 유관조직에 있어본 일이 없던 터라 만나 볼 인연이 없었다. 그러던 몇 해 전, 필자가 준비하던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의 초고를 갖고 만난 경험이 있다. 이때 윤광준은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이 참으로 쓰린 이야기들이었다. “이왕 대중출판을 목표로 한다면 좁은 사진판을 떠나라”는 것이 요지였다. 실천하기는 힘들어도 꼭 필요했던 조언을 해주었던 그는 이후 필자의 ‘멘토’가 되었다. 사진판을 떠나지는 못했지만 필자의 첫 번째 기획 책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는 예술분야에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 하여간 내공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는 꽤 큰 울림을 갖는다.

그래서 이번 ‘사진, 책에 미치다’의 주인공으로 윤광준을 만났다. 그는 사진책 뿐 아니라 사진관련 에세이, 오디오 에세이, 자질구레한 생활명품까지 책으로 만든 사람이니 이 연재가 만났거나 만날 사람 중 가장 다방면에 걸쳐 책을 만든 사람일 것이다. 오랜만에 전화를 해서 간단하게 안부를 묻고는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일산에 살고 있다. 그리고 작업실이 따로 있다고 했다. 차가 없는 필자는 지하철 3호선을 타고 한없이 일산으로 달렸다. 그리고 또 택시로 갈아타고 간 그의 작업실. 지하 30평쯤 되는 작업실은 약간 어둡다. 들어서는 손님을 처음으로 맞는 것은 그의 오디오들이다. 오디오에 ‘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한 것은 정말 오디오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진공관 앰프는 10대쯤 되어 보인다. 클래식을 주로 듣는데 주요 악기가 뭐냐에 따라 앰프를 바꾼다고 한다. 미세하지만 모두 그 악기를 표현하는 음색이 다르단다. 오디오를 마주보는 벽에는 흰색의 음향반사판이 묘한 느낌으로 붙어있다. 그 앞 푹신한 소파에 앉자 갓 볶은 커피콩을 분쇄해 커피를 내렸다. 참 우아한 분위기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나의 관심은 마이크로 한 세계

사진가들이 책을 못내는 이유는 자비 또는 반자비라는 출판계의 관행에 있다. 우리도 소득 2만불 시대가 오면 ‘티테이블 북’으로 사진집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몇몇 출판사의 에디터들은 사진집이 블루오션이라고 예측하고 있기도 하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책이 국내에서만 5천권 이상 나간 예가 있다.
사진집은 된다. 하지만 사진가들의 의식변화가 있지 않고는 상품으로서의 사진집은 불가능하다. 우리 사진집은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 특히 다큐멘터리는 사회이슈를 다루는 방식이 너무 무겁다. 소비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예를 들어 나이든 작가나 젊은 작가나 서로 다루는 것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무겁고 너무 아프다. 화석처럼 사진을 신봉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외국 사진가들에 비해 우리 사진가의 현실인식은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그들의 수요자는 바로 일반대중들 아닌가? 일반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떨어진다.

요즘은 다큐나 아트 모두 사진집의 판매나 원고의 판매가 안 되는 것을 인정하고 전시장으로 몰려가는 추세다.
글쎄. 팔겠다는 의도겠지. 배병우, 김아타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디 그것이 쉽나? 액자나 프린트의 후처리는 훌륭하다. 시장이 커지고 있으니 말이다. 상품으로서의 완성도는 높아졌는지 몰라도 그 내용는…. 아직도 너무 딱딱하다. 그리고 층이 얇다. 몇몇 작가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지 않나?

줄줄이 인쇄매체에서 떠나는 작가들에 비해 당신은 오히려 출판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사실 출판이 판매부수 면에서 과거보다 줄진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책이 나오면서 과거와 같은 베스트셀러는 줄어드는 추세다. 그래도 출판사들은 위신 때문인지 아니면 가능성 때문인지 인문예술 분야의 책들에 투자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어떤 책들을 만들었나?
첫 책은 <봄꽃, 여름 나무, 가을 숲, 겨울 산> 이라는 사진집이다. 1999년에 출간했다. 그리고 2001년 <소리의 황홀> 을 펴냈다. 오디오 마니아에게 꽤 사랑을 받은 책이다. 올해 출판사의 요청으로 개정판을 냈다. 쇄가 아니라 개정판을 낸다는 것은 작가로서 참 고마운 일이다.

윤광준은 ‘생활명품 컬럼니스트’라는 희한한 직종을 만든 독특한 책 <생활명품산책> 을 펴낸 후 사진에세이 분야 최고 히트 상품인 <잘 찍은 사진 한 장> 을 만든다. 아마도 그의 책 중에서 가장 많이 팔렸고 대중들에게 그의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된 책일 것이다. 그리고 후속편 격인 <아름다운 디카 세상> , <찰칵 짜릿한 순간> 과 중년 남자들의 행복론을 담은 에세이 <내 인생의 친구> 등을 펴냈다.

당신의 책들을 보면 세상을 참 미시적으로 본다는 생각이 든다.
맞다. 나에게는 사물에 대한 미시적인 관심이 있다. 마당과 웅진출판부 시절 일본을 드나들며 일본인의 마이크로 한 세계에 충격을 받았다. 하다못해 볼펜 하나만을 갖고 단행본 한권을 만든다. 기술적인 것 뿐 아니라 그 내면에 있는 문화까지도 모두 묶어서 콘텐츠화 한다.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왜 깊게 파지 못하는가라는 반성이 있었다. 세분화된 것들을 종횡으로 엮어내는 사회. 나하고 맞았다. 태생이 한국이라 대범한 척 하지만 내가 관심 갖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추구하는 사진도 그런 것인가?
사람들이 그런다. “저 사람도 사진가래.”(웃음) 사실 그들은 내 사진을 아는 것도 본 것도 별로 없다. 굳이 사진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탐미주의자다. 사진역사를 통틀어 브레송을 가장 좋아한다. 나는 그와 근원적인 출발이 같다. 세상을 발견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흘려버렸던 사적인 관심을 사진에 담는 것이다. 스승이자 내 사진의 정점에 있는 사진가다. 사진수업을 할 때도 닮아가려 했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나는 그의 업적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존경한다. 내 작업의 한 축은 아름다운 풍경사진이다. 지금은 보여줄 여유가 없다. 다른 축은 시각의 다의성이 있는 사진이다. 한 사진에서 XY축을 보여주고 싶다. 사물의 관계들. 그런 실험과 접근이 재미있다. 그리고 즐긴다. 사진의 효용성을 따지지 않는다. 밥벌이로서 사진은 내 의지와 관계없기 때문에 흥미 없다. 많은 사진가들이 밥벌이 사진을 작업이라 착각한다. 사진기자 30년이면 다 작가더라! 그리고 상업사진가로 좀 뜨면 작가 대접을 바란다. 밥 사진으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진판이 싫다. 그리고는 이편이냐 저편이냐를 나눈다. 나는 중간에서 가만히 있고 내 사진만 한다. 솔직히 내가 사진가인 척 한다면 기만이다. 지금 출판은 사진가 입장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작업이 있다면 사진가로 나선다. 다만 지금은 중간이다. 대중과 사진가 사이. 이렇게 하면 ‘사진을 잘 찍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경험, 이런 진행과정을 거치면 좋은 사진을 한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대중들의 좋은 것에 대한 열망, 그것을 파악한다. 산악 인구보다 많은 1,000만의 사진인구가 생기면 길이 보일 것이다. 그 힘을 믿는다. 시장이라는 힘. 그것을 연결하는 힘. 그것에 주목해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요즘 사진출판 시장? 긍정적이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출판계에 준 충격은 크다. 유사한 책도 많고. “나도 그런 책은 만든다”는 용감한 아마추어도 출판대열에 끼어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필자들이 발굴되고 에디터들이 그들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요즘의 사진관련 출판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출판을 활성화시켰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는다. 그리고 요즘의 출판문화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시대적인 분위기를 거스를 수 없다. 문학계가 모델이 된다. 문학은 스펙트럼이 넓다. 백낙청의 책에서 시골 아주머니의 시집까지 있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독자들이다. 판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결과는 문화소비자들을 몫이다. 또한 인터넷에서 픽업했다고 품질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 콘텐츠는 인정받은 것이다. 프로 사진가이냐 아니냐하는 것은 의미 없다. 그리고 문화가 상업적인 기능을 갖는다고 무시할 필요 없다. 필자나 에디터 모두 그런 책을 펴내는 데는 나름의 메시지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온 것인가?
80년대는 가난했다. 하지만 20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술보다 전시나 영화, 공연을 찾는다. 이것을 사진판에 적용하면 대중은 자발적인 선택을 한 것이고 나름대로 추구하는 것이 있다. 사진가가 아니라고 그의 작업을 의심하기보다는 보편적으로 만들어지고 나눠지는 모습을 긍정하자.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예술의 기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다. 사진은 예술이다. 지향점은 바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색기이다. 수많은 시도들이 있지만 더 내공을 쌓아야 한다. 지엽적인 문제들은 차츰 사라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할까?
스타가 나와야 한다. 파바로티는 세계적인 스타였지만 소탈했다. 대중은 그것을 멋있게 봤고 사랑했다. 사진가도 그래야 한다. 대중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런 사진가가 돼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친절한 사진가씨’가 없는가? 세상을 향해 너무 작은 것을 내놓고는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닌가?

인터뷰 중간, 커피는 포도주로 바뀌었다. 2000년 빈티지의 보르도산이다. 맛은 무겁지 않고 윤광준과의 대화만큼이나 경쾌했다. 요즘 술 한잔 하면서 하는 인터뷰가 유행이라지만 인터뷰이에게 미안했다. 두병이나 땄기 때문이다. 그래서 녹음기가 있는 공식 인터뷰를 마친 후 비공식 인터뷰를 위해 동네 한식집으로 가서 보쌈과 소주를 샀다. 그는 사진을 떠나본 적이 없다. 주변에 대한 호기심이 그의 자양분이다. 그리고 즐기고 있다. 그는 병렬적인 인간, 셀을 만드는 벌 같은 인간으로 그만의 방을 전방위로 채워가고 있다. 그것이 윤광준의 에너지다. 그런 그가 요즘 몽골에 빠졌다. 그래서 감성과 낭만만이 가득한 요즘의 여행 사진책이 아니라 인문과 교양이 담긴 사진 여행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와도 지향점이 같기에 함께 일산의 밤이 깊도록 새로운 모습의 여행책 출간을 결의하며 술잔을 부딪쳤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완추안 호텔방 창 너머로 새벽이 오고 있다. 성도로 돌아가 바로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잠은 버스에서 자기로 하고 글을 쓰며 짬짬이 가방도 싸고 있다. 서점에서 산 멋진 사진들로 채워진 중국의 인문지리서들을 펼쳐보며 그와 수다 떨 시간을 예상해 본다. 아직도 사진이 담당해야 할 출판의 자리는 넓기만 하다. 그리고 슬쩍 동영상을 띠워본다. “텔미 텔미 테테레테테 텔미!” 확실히 중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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