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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쓰나미 1년, 먹구름이 내려앉은 땅 오후나토

2012-08-01


“유례없는 규모의 동일본 대지진 그리고 쓰나미. 자연의 대재앙은 마을의 많은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던 장소에는 어디선가 몰려온 쓰레기더미들이 가득하고, 주유소 지붕 위엔 배 한척이, 공장지붕 위엔 5톤 트럭이 올라서 있다. 그곳에 자리하지 않았던 것들과 그곳에 있었으나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들이 한데 뒤섞여 마을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상처만이 가득한 풍경 속에도 산과 하늘의 모습은 예전과 다름없다. 자연에서 온 것들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에 비해 사람이 만든 것들은 이리도 쉽게 무너져 한순간에 존재 가치를 잃어버렸다.” - 2011년 3월 쓰나미 D+9 작업노트 중에서

글│김재송(다큐멘터리 사진가)
기사 제공│월간사진

2012년 2월16일 오전 6시. 도쿄에서 밤새도록 달려온 버스가 오후나토 터미널에 정차했다. 나는 잔뜩 뻐근해진 몸을 추슬러 버스에서 내렸다. 오후나토. 1년만의 방문이었다. 쓰나미 1년 후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다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었지만 그보다 큰 것은 타케노 가족과의 약속이었다.

타케노 가족과의 인연
1년 전 나는 쓰나미 직후의 현장을 담기 위해 토호쿠 지역을 방문했었다. 여러 지역을 다니며 스케치를 하던 중 한 지역을 깊이 있게 담는 쪽으로 작업 방향을 정했고 일전에 한번 방문한 오후나토를 무작정 찾아갔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은 마을에 외국인 사진가가 끼어들 틈이란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날 밤 묵을 곳조차 찾지 못해 돌아서려던 차, 그 마을의 이장격인 타케노 아저씨가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해주겠다고 나섰다. 그날 그의 뒤를 따라 그 집에 묵은 것을 인연으로 나는 타케노 가족의 집에 머물며 그들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아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 보름 동안 그들은 나의 가족이 되었고, 나는 한국으로 떠나며 그들에게 꼭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버스 정류장으로 나를 데리러 나온 여동생 타케노 미키코가 활짝 웃었다. 오빠는 약속을 지키는 멋있는 사람이라며.

오후나토의 아픔은 현재 진행형
미키코는 나를 차에 태우고 바로 집으로 가는 대신 오후나토를 한바퀴 돌았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의 오후나토. 고요하다 못해 적막마저 흘렀다. 차디찬 바다 위에 떠있는 갈매기와 겨울 철새들의 날개짓 이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리아스식 해변의 고운 해안선을 감싸고 있는 바다안개는 오후나토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1년 전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공장 지붕 위에 올라서있던 차량들, 도로 중간을 차지하고 있던 유람선, 있어야 할 곳을 떠나 존재의 이유를 상실했던 모든 것들. 이런 것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50mm 렌즈를 통해 보이는 이른 새벽 작은 어촌마을의 소경은 1년 전의 상처를 잊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예고편이 끝나고 영화의 본편이 시작하듯, 바다 저편에서 동이 터오고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과거의 상처들이 그 모습을 천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뼈대만 남은 콘크리트 건물이 아침햇살을 받으며 덩그러니 서있고, 포크레인과 덤프트럭들은 그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사람들은 안전모와 작업화를 신은 채 분주히 오가며 쓰나미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아직도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새벽의 고요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없고, 온갖 파괴음과 먼지들이 가득했다. 오후나토의 아픔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내 기억보다 더욱 슬픈 곳
타케노 아저씨의 집에 도착한 후 곧바로 여장을 풀고 작업에 착수했다. 타케노 가족은 1년 전과 다름없이 나의 가장 큰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타케노 가족의 안내를 받아 오후나토와 타카타의 곳곳을 돌아보았다. 1년 전 내 발걸음이 닿은 곳들이 새록히 기억났다. 내 기억속의 모습과 달라진 곳도, 여전히 처참한 모습인 곳도 있었다.

공설체육관도 그중 한 곳이었다. 나는 1년 전 자위대원들과 함께 이곳에 들어와 꽤 오랜시간을 머물렀었다. 할퀴고 찢긴 건물의 외형은 여전했지만, 내부는 이미 모든 정리가 끝이 나있는 상태였다. 이제 정리가 되어가는 피해현장 중 한곳. 체육관은 그렇게 나의 마음과 작업에서 일단락을 내는 터였다. 다케노 아줌마의 한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여기는 1년 전에 500명이 대피했던 장소예요. 이곳에서 단 3명만이 살아남았지요. 안전한 곳이라 여겨 모두들 이곳으로 피신했던 건데, 15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들이닥칠지는 그땐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그 순간 귓가에는 1년 전 쉼없이 울려대던 사이렌 소리와 유족들의 통곡소리가 한데 뒤섞여 재현되었다. 1년 후의 오후나토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1년 전에도 몰랐던 사실마저 새롭게 발굴한다. 이곳에는 얼마나 더 많은, 이런 상처들이 무심하게 아물어가고 있는 걸까.

상처는 또다른 상처를 낳고
오후나토에서 20여킬로미터 떨어진 리쿠젠타카타는 3.11대지진의 이와테현 최대 피해지역이다. 7만여 그루의 해안송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그루의 소나무 잇뽄마쯔는 재건과 희망의 상징이 되었고 ‘기적의 소나무’라 불리며 한국의 언론에도 여러번 소개되었다. 잇뽄마쯔를 기념하는 기념주화가 만들어진다고 하니 그 상징성이 차지하는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나무는 지금 고사의 위기에 처해있다. 쓰나미 이후 지형변화와 바닷물의 수위변화로 인해 뿌리가 바닷물에 잠식된 것. 쓰나미의 직접적인 상처는 피해갔지만, 2차 피해를 입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유키씨는 쓰나미로 약혼녀를 잃었다. 결혼을 불과 석 달 남겨둔 시점이었다. 떨쳐버리려 해도 떨쳐버릴 수 없는 기억이라고 그는 말한다. 주민자치대의 분대장이었던 그는 2월말의 어느 밤 마지막 야간 순찰을 끝으로 더이상 쇼보당 봉사를 하지 않는다. 그녀의 흔적이 있는 이곳에서 더 이상은 살아가기 힘들다는 그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던 그날, 오후나토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치바현으로 이사했다.

아이들의 신발만이 어지럽게 진흙과 뒤섞여 있던 학교는 여전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각지에서 몰려든 쓰나미의 잔해들을 치우는 현장사무소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고 한때 수산시장이었을 곳은 이제 쓰나미 잔해들이 만들어 놓은 쓰레기산이 새로 생겨버렸다.

1년 전 피난소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오이카와 슌(31)씨의 말은 피해지역에서 아픔을 드러내지 않은 채 평범한 듯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나타내준다.

“지금도 후유증이 있는 사람들은 취재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취재로 인해 피해자들이 대지진을 다시 기억해내고 그로 인해 불안해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아직은 정신적으로 치유가 되지 않은 힘겨운 상태입니다.”

대지진 피난민은 34만명에 이른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숫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고통과 우울증 등으로 인해 삶의 끊을 놓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5평 남짓의 작은 공간인 가설주택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에게는 빈번하게 절도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리라. 마음속에서 애써 외면하려는 상처는 점점 더 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후나토는 아직도 먹구름

2만명이 가까운 사망자와 실종자를 낸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한 지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진 1주년을 맞아 외신보도를 통해 접하게 되는 일본 동북지방은 쓰나미와 지진이 만들어 놓은 과거형의 상처보다는 현재진행형의 후쿠시마 핵문제라는 먹구름이 여전히 일본의 동북지방을 둘러싸고 있는 듯 보인다.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왔던 대재앙에 대한 공포를 겪은 그들, 쓰나미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형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생의 모든 것이 있었던 땅을 떠나지 못하고 무너진 삶을 회복하려는 사람들의 극복과정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치열하다. 재앙의 먹구름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려야 걷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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