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리뷰

형식이 내용이 될 때, 고상우 <컬러 음화 속에 나타난 페르소나>

2007-10-30

글 | 민병직 미학

반전의 전략

반전反轉에 반전은 인생이나 극적인 드라마 구조에만 있는 것만이 아니다. 사진 역시 반전(네거티브)에 반전을 반복하면서 포지티브한 재현의 과정을 거치는데, 사진이 가지고 있다는 투명한 재현의 신화 역시도 사실 그 복잡한 속내가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이미지의 전도라는 광학상의 원리 자체가 반전이라는 컨셉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전 혹은 네거티브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사진적 재현의 경우 사진이 가지고 있는 반전의 속성이 쉽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데 반해 고상우의 작업은 이러한 사진의 네거티브한 속성 자체를 표면화, 전면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단순히 이런 반전의 효과, 곧 컬러 네거티브의 이미지 효과에만 그치지 않고 이를 내용으로 연동시켜 컨셉화하는 점에 있다.
컬러 네거티브의 이미지 효과 자체만으로도 나쁘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어릴 적 신기하게 보았던 컬러 필름을 추억케 하는, 독특한 색감의 효과가 눈길을 잡아끌기 때문이다. 전도된 색상에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색감 이상의 것들이다. 세상의 이면과도 같은 색감 자체가 깊은 느낌을 전하고 있고, 반전된 색감을 통해 일정한 의미론적인 효과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속셈은 이러한 반전된 이미지 효과를 매개로 하여 어떤 의미 전달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푸르게 보이는 모델이 실은 한국계 혼혈 여인이라는 이번 전시(고상우 <컬러 음화 속에 나타난 페르소나> /2007.7.25~8.11/2×15갤러리)의 기본적인 설정이 그렇다. 하지만 작가가 활용하는 반전의 전략은 전도된 이미지 색감만이 아니라 이미지를 둘러싼 것들, 텍스트, 배경, 모델의 포즈, 메이크업, 제스처, 의복, 소품 등 화면을 이루는 전체적인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연출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게 한다는 면에서 작가가 구사하는 반전의 전략은 전체적으로 일관적이며, 다층적인 코드화를 이루고 있다.
이미지 효과뿐만이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전체적으로 반어적인 뉘앙스를 짙게 풍기고 있기에 사진이 가지고 있는 네거티브한 속성을 형식화된 내용으로 전용시켜 펼쳐 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형식이 내용으로 전화되고 있는 것이다.

반어적인 수사학의 작동

간단한 방정식 같기도 한 이러한 의도는 비교적 자명한 의미 작용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메인 모델인 비대한 한국계 혼혈 여인을 축으로 하여, 일견 아름다움을 둘러싼 사회적인 의미 작용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반어적인 작가의 생각들을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이를테면 뚱뚱한 아시아계 혼혈 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코드화, 곧 편견이나 가치 평가에 대한 작가의 문제 설정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실제적인 효과는 단순하지 않고 좀 더 복잡하고 양가적으로 다가오는데 작가가 겨냥하고 있는 반어적인 수사학이 반전된 이미지 효과에서뿐만이 아니라 작업 전반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반전된 색상의 효과뿐만이 아니라 작품의 표제, 작업 속의 텍스트, 오브제, 모델의 포즈나 제스처를 전체적으로 연출한다. 그런 면에서 상당히 연극적인데 반전의 묘미를 살리는데 있어 이만한 작전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예컨대 여인의 갖가지 포즈나 제스처는 언뜻 어색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의도되었음이 분명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특정하게 관례화된 포즈를 문제시한 것인데,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포즈나 제스처에 대한 갈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델과 함께 등장하고 있는 나비나 꽃의 설정도 여인의 판타지에 대한 반어적인 설정을 보여 주는 것들이다. 의미상으로 보자면 화려했을 오브제의 효과가 그렇게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목 또한 사랑, 꿈, 두려움, 가시에 찔린 여인 등의 수사학적인 네러티브가 반복되고 있는데, 여성의 판타지와 두려움이라는 양가적인 의미들을 담아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작업을 단순히 사회적으로 규정된 아름다움에 대한 작가의 불편하고 비판적인 입장으로만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소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여성의 아름다움을 둘러싼 사회적인 코드화에 대해 작가의 비판적인 발언쯤으로 읽혀질 수 있겠지만, 작가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맥을 고려해 본다면 자신의 체험과 결부된 좀 더 복잡하고 양가적인 뉘앙스들을 전달하기 위해 의도된 설정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낯선 동양인으로 살아가며 느껴야 했던 자신의 경험을 비대한 푸른 몸의 모델로 설정하여 이를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결국 이질적인 모델의 설정 자체가 작가 자신의 체험과 감정이 이입된 설정인 것이고, 모델의 반전된 색감 효과나 의도적으로 연출된 포즈를 통해 이질적인 땅에서 낯선 그들에게 다시 낯설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복잡한 사적인 체험을 전이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 낯설고 이상한 타자의 이미지가 이번 전시에서 반복되고 있는 비대한 푸른 여인의 이미지인데, 밝아 보이지만 우울한 느낌을 주는 푸른 색감의 효과가 적절했다는 생각이다.

네거티브와 포지티브의 양가성

전체적으로 이런 양가적이면서 애매한 효과가 반복되고 있다. 이를테면 ‘I am beautiful’ 연작에서 ‘미스 유에스에이’ 띠를 두른 비대한 여인이 “나는 아름답다”라는 문구를 쓰고 있는 사진의 경우 이질적인 시선 속에서 힘들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야만 했던 소외감이나 사회적 인정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갈망 같은 것들이 동시에 느껴진다. ‘Earth on the move’의 경우 이러한 힘든 존재감을 희화된 포즈를 통해서라도 즐기고자 했던 어떤 태도가 느껴지는 작업이라 할 수 있는데 ‘Peacock Lady’에서의 여인의 위풍당당하고 과시적인 포즈와 연결된다. 반면 ‘Proposed Lady’의 경우 프러포즈를 받은 여인의 수줍은 느낌들이 살아 있는 작업인데, 여인이 받고 있는 붉은 장미가 실제로는 푸른 장미라는 사실을 안 순간 서글픈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작업 전반에서 화려하면서도 우울한 여인의 판타지, 양가적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묘한 태도를 느낄 수 있으며, ‘Love Letter’의 경우 이러한 여인의 복잡하고 양가적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 그대로 묻어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화면 속에 등장하는 여인은 작가의 또 다른 자아, 전도된 자신인 셈이고, 그런 면에서 작가의 세상에 대한 특정한 발언을 담아내고 있는 매개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반전된 색감의 효과뿐 아니라 갖가지 오브제의 설정이나 모델의 포즈나 제스처를 통해 의도적인 연출을 수행한 것이다. 다소 어색하게 드러나고 있는 모델의 연극적인 포즈가 더 눈에 들어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며,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작가의 반어적인 입장을 전달하는데 있어 제법 효과적인 연출인 것 같다.
셀프 포트레이트라는 사실을 따로 전해 듣지 않았다면 눈치 채지 못했을 ‘I Love You’ 작품도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잘 보여 주는 작업이다. 이 역시 반어적이고 역설적인 의미 작용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양가적인 세상에 대한 태도나 입장으로 다가온다. 이는 네거티브 개념이 주어진 대상에 대한 부정이나 비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반대의 의미인 포지티브 개념 또한 상정하고 있다는 면에서 이른바 이항 대립binary opposition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업이 단순한 네거티브에 머물지 않는 이유도 다양하게 의도된 연출과 설정을 통해 이를 메타적으로 사유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나 문맥을 의도적으로 들추어냄으로써 얼마간 탈코드화된 의미 작용의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인 듯싶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문화적 코드화를 접합하고 문제시 하는 설정 자체가 그러한 문맥화된 상황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경우 작가의 존재론적인 설정 자체가 의도적인 연출을 통해 매개됨으로써 단순한 네거티브와 포지티브를 넘어서는 양의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우울한 컬러 톤의 네거티브 이미지가 전하는 묘하고 독특한 정조가 길게 남는 것이다. 거짓 세상, 투명한 세상의 신화에 대한 반어적인 들추어냄이라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반전의 묘미 같은 것들 말이다.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