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3
수원 효원공원 안에는 중국식 정원이 있다. 중국 광둥성과 경기도간의 인연으로 마련된 월화원은 중국 영남지방의 조경 특색을 살린 공간이다. 산, 물, 수목, 화초, 호수를 그대로 가져온 정원에는 은은하고 멋스러운 분위기가 난다.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면 옛 시인이 읊었던 한시 같은 풍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에디터 | 김유진(egkim@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자연과 가까웠던 옛 사람들의 시선은 주로 하늘과 강, 산과 들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치에 따라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을 보며 시 한 수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았던 옛 중국 시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 정원(庭園)은 곧 그런 자연을 가깝게 품어보고자 했던 소망이다. 나뭇잎의 색깔, 바람 소리, 달빛, 흘러가는 구름을 이야기하는 한시에는 대부분 그들이 바라보았던 정원 안의 풀과 연못, 작은 생명들의 움직임이 들어있다.
수원시 인계동 효원공원 안에서 만난 월화원은 옛 중국인들의 풍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중국 영남지역인 광동성, 시대로는 명 말기에서 청 초기에 남아있는 민간 정원의 형식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중국 조경 기술자 80명이 직접 이곳에 와서 벽돌-목조 구조의 광동지역 고건축 양식을 그대로 재현했다.
월화원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의 띄었던 것은 벽돌로 된 구조물 사이의 무늬, 중정을 중심으로 둘러싼 연랑의 난간, 풍경을 액자 속의 그림으로 만들어버리는 처마 쪽의 문양, 그리고 날렵한 기와다. 웅장하고 거대하기만 할 것 같지만, 의외로 작은 부분까지 베어있는 중국식 건축양식이다.
공예술이 돋보이는 문틀과 건물 기둥에 장식된 회색빛의 부조, 청벽돌이나 백색가루를 사용한 담장, 나무껍질 색깔의 목조, 나무색깔의 배합을 그대로 따온 갈색 나무 현판 위의 초록빛 글씨들. 겸손하고 기품있는 우리 선조들의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기와의 끝. ‘산이 휴식하고 누각을 말아올린다’는 ‘헐산권붕’을 제 모양으로 삼아 ‘한번 꺾고, 끝을 살짝 말아올라간’ 모양이다. 곡선이 도드라지는 처마의 모양과 비스듬한 기와지붕의 면을 강조한 기와의 틀은 가까운 이국의 기와가 가진 미학이다.
정원답게, 간단한 구조물과 건축물이 구조적이고 조직적으로 공간을 나누고 있음에도, 은은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아마도 양쪽 어디에서든 그 너머의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공간과 공간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정원의 개념을 인공적인 장식 정도로 여기기보다는 바라보고, 감상하고,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였던 구조물에는 석순(돌 죽순) 소재의 유리화 벽이 중정의 경치를 조각조각 시야로 들여놓고, 정원 내부 담장의 꽃문양 유리 통화창과 담장면에 원으로 마름모로 다양하게 뚫어놓은 누창은 그 너머의 풍경을 틀 모양에 맞는 정원의 모습을 선사한다. 막혀있는 담장 마다 뚫어놓은 문에는 지춘(봄을 느낀다), 통유(아름다운 경치가 통하는 문), 일쇄(안락하고 상쾌한 곳으로 들어가는 문), 신운(운치있는 경관문), 입아(우아한 경치로 들어가는 문)와 같은 이름을 달아 의미를 담았다. 막혀있으면서도 열려있는, 조화로운 개방 구조가 시야의 안과 밖을 소통시키며, 풍경을 은은하게 재단할 때 정원의 아름다움은 극을 이룬다.
입구 오른편의 옥란당이나 정면의 부용사처럼 전통적인 중국식 건축물이 분위기를 더하는 가운데, 마치 흐르는 강물을 마중 나온 것 같은 모양새로 연못에 떠있는 월방(月放)은 강과 호수가 유난히 절경을 이루는 중국 영남지방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아마도 옛 중국사람들은 우아한 한시가 품을 수 있는 행간의 여백만큼이나 풍경의 운치를 즐겼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 곳이 진짜 중국의 정원이라면 땅을 파내어 연못을 만들고 그렇게 파낸 흙으로 산을 만들어 그 정상에 지었다는 우정(友亭)같은 정자에 앉아 정원을 한눈에 내려다 보며 몇 수의 시를 지어내려 갔을 것이다.
월화원을 거닐다 보면 중국의 옛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를 그대로 밟고 있는 기분이 든다. 한 공간에 있지만, 아주 작은 시간차를 두고 놓쳐버린 그 사람들의 빈자리에는 그들이 사랑했던 자연을 닮은 정원이 그대로 있었다. 곧 봄을 기다리고 있는 정원은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의 사계절처럼 아름답게 흘러갈 것이다. 그 정원 안에, 자연이 그리고 자연을 노래한 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