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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Sun BaBa Ra

2010-02-02

흰 눈이 펄펄 내리던 겨울 낮에는 태양의 힘이 절실히 필요했다. 한 걸음씩 앞서가는 시선을 쫒 아 오들오들 떨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늘진 골목길에 보일락말락 쌓인 눈송이는 벌써 녹아들기 시작했고, 지하차도를 빠져나오는 오토바이도 날쌘 바람 앞에서 조심히 달려 나간다.


외대앞역 풍물거리는 지방의 한적한 읍 단위의 마을을 연상시킨다. 이곳에 갤러리 카페가 있을까? 행여나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닐까? 걱정해 본다. 그러나 외대역 GS25 편의점 골목길로 들어선지 채 3분도 되지 않아 삼거리 모퉁이에서 발견했다. 갤러리 카페 Sun Baba Ra! 미처 들어서기도 전에 그 곳의 미묘한 향을 감지했다.

영어의 Sun, 산스크리트어로 스승을 뜻하는 Baba, 이집트 신화의 태양신을 지칭하는 Ra가 합쳐진 Sun Baba Ra(이하 썬바바라)의 입구는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촛불의 촛농이 흘러내려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빛깔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색의 초에서 흘러내린 이 수가지의 얼룩은 지난 시간을 기억하며 그 자리에 오래도록 남아 흔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불교와 이집트 문화에 심취해 있는 썬바바라의 젊은 두 주인장은 사진과 디자인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 중 사진을 전공한 정주영 주인장은 그 문화를 몸소 느끼기 위해 한 달 전쯤 먼 나라로 떠났다. 그 후 홀로 남아 썬바바라를 꾸리는 장혜지 주인장은 이집트 벽화 속 왕비처럼 긴 눈을 가지고 시크한 표정을 곧잘 지어 보인다. 아직은 앳돼 보여 통 나이를 가름 할 수 없지만, 그녀는 일러스트 작가로 온종일 바 한구석에 앉아 스케치에 여념이 없다.

외대 갤러리 카페, 낭만 카바레, 다방으로 불리는 썬바바라는 작년 4월 문을 열어 이제 겨우 10개월 남짓 지났지만 많은 이들의 사랑을 한껏 받고 있다. 물론 인근에 갤러리 카페가 없는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문화를 접목시킨 썬바바라만의 특별한 공간성 때문이다.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묘한 매력에 미리 예상했지만, 지하로 내려갈수록 그 신비로움은 걷잡을 수 없다. 계단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도시의 카페, 왼쪽은 읍내에 있을법한 다방 필을 내고 있다. 얼핏 봐서는 별개의 두 공간으로 보이지만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이는 예사롭지 않게 벽면을 장식하는 작품들 때문일 것이다.


썬바바라 좌우의 두 공간, 모두 벽면 전체를 갤러리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특별한 장식을 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화이트 큐브를 연상시키는 여타의 갤러리처럼 인위적으로 지난 흔적을 애써 지우려 하지도 않는다. 깊게 팬 못 자국, 이전 작가의 전시 흔적, 누군가 끄적여 놓은 글귀 등 이 모든 것들이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 마냥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썬바바라의 특별함은 공간성뿐만 아니라 주인장의 마음가짐도 한몫을 한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정도 진행되는 모든 전시는 작가 자율에 맡긴다. 주인장은 단지 전시를 하고자 하는 작가의 일정을 조절하는 정도만 개입한다.

전형적이고 전문적인 갤러리의 성격을 지양하고, 공간을 지녔다고 누군가를 선별하거나 그래야 하는 이유도 없다고 한다. 또한, 썬바바라가 특수한 계층을 위한 공간으로 규정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다양한 느낌을 지닌 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터울 없이 전시와 공연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한다. 또, 썬바바라에서 한번씩 열리는 인디밴드와 어쿠스틱밴드의 공연은 흥겨운 리듬과 독특한 작품들이 함께 유희의 놀이판을 벌이고, 금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디제잉 파티는 한 주 동안의 갈증을 해소한다. 이렇게 썬바바라는 다문화의 복합공간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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