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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구로구 항동 기찻길

2010-03-23

기찻길이라는 말글 하나에 떠오르는 아련한 마음이 있을 것이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운운하는 동요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길게 이어지는 기찻길을 기어 올라가 걸으며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엠티를 떠났을 때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며 선로 위에서 사진을 찍는다. 고향을 뒤로하고 떠나던 날 창밖을 바라보며 끝없이 이어지는 선로를 바라본다.

체감 온도정도이지 않았을까? 한결같이 쓸쓸한 풍경이었지 싶다. 그 안에선 새삼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 그리 할 일이 없다. 그래봐야 똑같은 화분에 담긴 같은 간격으로 심어진 가로수가 아닌가. 이곳에서 잠시만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주위를 관찰하고 있는 신을 발견한다. 계절의 변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치 챌 수 있다. 논의 초록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고, 길가에 피는 꽃들은 계절에 따라 꼬박꼬박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산에 빼곡히 들어선 나무에 매달린 낙엽의 빛이나 트인 하늘 아래로 쏟아지는 빛도 계절에 따라 그 부드러움을 달리한다. 사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꽃이, 슬레이트 지붕을 가진 집이 모여 있다는 것이, 유명 낚시터도 아닌 그 저수지가. 그러나 우리가 이곳을 몰랐던 때부터 시간은 흘렀고 자연의 변화를 오감으로 받아들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도시를 떠난 적이 없는 이는, 자연에 닿아있는 삶을 그리워 할 리도 없다고 여겼다. 자연과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처럼 덧없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른에 어른을 거듭하며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연으로의 회귀를 갈구한다. 그건 어쩌면 누군가 이곳에서 계절과 시간의 흐름을 목격한 후와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예쁜 날들, 좋은 날들이 있고 비가 내려 질퍽한 날이 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위험한 날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역시 또 지나갈 일이다. 삶이 그러하다.

생활을 이야기하자면 항동의 기찻길은 소음과 약속이 지연되는 곳이며 기찻길에 근접한 주택은 거주성의 관점에서 망설여지는 곳일지 모른다. 하루에 한 번, 혹은 두 번의 운행이 있고 열차는 매우 천천히 지나간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기차 앞에 서 “비키세요”라는 말과 함께 일일이 손짓을 한다. 황토색의 땅에 스며있는 철길과 작은 마을은 작은 저수지로 이어진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논의 초록은 유채꽃, 코스모스, 갈대와 어울려 무엇이든 그림이 된다. 물가의 반짝이는 빛, 낚싯대를 드리운 조용한 이곳 항동은 누구든 어린 기억과 닿을 수 있다.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요즈음이다. 그래도 마음 먹먹해지는 날이 있다. 도시의 삶이 고단한 날, 지친 마음을 쉬기엔 이 도시의 긴장이 버거운 그런 날이 있다. 우리에겐 볕과 같은 위로가 필요하다. 항동에서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길. 항동은 구로구에서 항동 서울푸른수목원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조성이 끝나면 레일바이크도 탈 수 있을 것이고 잘 다듬어진 나무들이 세워질 것이다. 사업이 늦어져 계획대로라면 끝났어야 할 시점이지만 수목원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오랜 시간의 풍경도 충분히 남길만하다. 이 철길을 건너간 사람들도 언젠가 이 풍경이 그리워 질 일이다. 시간, 사람과 기계에 의해 풍경은 늘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무언가 그립다. 21세기 노스텔지어.


주변 촬영지 • • • 항동 기찻길, 항동 저수지
찾아가는 길 • • • 7호선 천왕역 2번 출구에서 50m 도보 - 철도 건널목 - 좌측 광명역 방향으로 진입) 1호선 온수역에서 마을버스 7번 탑승 - 항동 저수지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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