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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영화판? 이젠 떠나야겠다

2011-10-27


구술 | 한세준
정리/사진 | 포토라이터 이상엽


*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09년 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한국 영화에 대해 : 당신은 대표적인 스틸 사진가로 알려져 있다.

올해 단 두 편을 했다. 곧 개봉할 정우성, 고원원 주연의 ‘호우시절’을 했고, 변혁 감독의 ‘여배우들’은 아직 개봉일을 잡지 못한 상태이다. 이전과 다르게 선택을 할 수 있는 폭이 좁다. 올해 제작되어 내년에 개봉할 영화는 무척 줄어든 상태다. 영화판의 A급 스태프들도 쉬고 있는 형편이다. 편수 자체가 줄어들다보니 일단 버텨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좋은 스태프들이 일하고 싶어 하지만 일할 현장이 없다. 영화는 중독이다. 영화 촬영현장에 없으면 불안해진다.


영화 사진에 대해 : 사진 전체에서 영화 스틸은 특별한 장르이다.

사진은 영화적인 모티브를 제공한다. 일상에서 접하는 사진이 뇌리에 남아 한편의 영화가 되기도 한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처럼 말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사진이 상업적으로 영화와 함께하는 분야는 포스터 사진과 현장 스틸 사진이다. 스틸보다는 포스터 쪽에 사진가들이 많다. 오래전부터 구본창, 오형근, 강영호 등이 활동했다. 하지만 많이 오고 많이 나간다. 포스터는 그때 그때의 트렌드가 있기 때문이다.

스틸 사진도 역시 들어오는 이는 많지만 열악한 환경 때문에 오래 남지 못한다. 요즘은 예산을 줄이고 현장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촬영 현장에서 포스터를 찍으려고 한다. 이번에 촬영한 ‘호우시절’ 역시 그런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더욱 큰 영화판 사진의 문제는 부가가치가 높아질 수 없는 구조에 있다. 그냥 영화 한편을 홍보하는데 그치고 있다. 가끔 이 사진들이 광고에 PPL 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 내 경우를 들자면 ‘올드보이’와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그런 부가적인 판매에 대해 어떤 수익도 나눠본 적이 없다. 영화판이 갖고 있는 저작권에 대한 무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부러 무시하는 측면도 있다.

내가 일하기 시작하던 때는 거의 대부분의 영화사가 사진에 대한 권리를 가졌다. 필름을 주지 않으면 계약을 하지 않았다. 편당 300~400롤씩 찍었는데 아무것도 수중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수천 컷 찍어도 개봉 때 막상 쓰이는 건 50컷도 안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결과물이 모두 제작사에 넘어간다면 허탈하지 않겠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국 참여하지 못했다. 물론 나중에 영화를 보고서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웃음) 사실 초상권이 문제가 되더라도 사진을 찍은 사람이 그 필름을 소유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지만, 영화사는 사무실에 처박아 두더라도 필름을 요구했다. 사무실이 이사를 하면 그 필름을 버리고 갔다. 한번은 스태프의 신고(!)로 급히 차를 몰고 가서 찾아온 적도 있다. 정말 자존심의 문제이다.

내가 영화사들과 일하는 원칙이 있다. 첫째는 필름에 대한 권한은 사진가가 갖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 영화의 규모에 따라 달라지기는 한다. 처음 이 일을 할 때는 500만원 정도 받았다. 다들 예술영화를 위해 일하냐고 했다. 하지만 그것을 4,500만원까지 끌어올렸다. 파이가 커진 것이다. 내가 영화판에서 한 좋은 일이란 필름도 받아내고 작업비도 끌어올린 것이다.

영화사진과 관련해 있을 수 있는 또 다른 작업은 출판이다. 일본의 출판시장은 크기도 크지만 영화와 관련된 책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저작권과 초상권 문제가 뒤엉켜 책이 나올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놈.놈.놈’ 역시 그런 경우였다. 가제본한 샘플도 만들어 제시했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인연에 대해 : 어떻게 영화판에 발을 들였는가?

원래는 전산통계를 하고 싶었는데 2지망이었던 수학과를 가게 됐다. 카메라를 처음 갖게 된 건 누나가 수동카메라를 물려주면서부터다. 대학 때 친구들과 놀러 다니면서 단체사진을 좀 찍어줬는데, 사진이 신기하게도 잘 나오는 거다. 이후에 사회사진하는 영상매체연구소라고, 광주YWCA에 있는 문화분과 안의 연구소에서 사진교육을 받게 됐다. 그때 만난 친구들과 함께 5월 광주와 관련한 전시도 하고, 전교조 해직교사들 전시도 하고 그랬다. 해직되고 족발집을 하시던 선생님을 비롯해 우리가 전시를 연 이듬해 모두 복직됐는데, ‘아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을 했구나’ 뿌듯해하기도 했다.

우연히 중앙대 사진과를 다니는 형을 만났다. 광주항쟁의 부상자를 찾아서 사진을 찍는 형이었는데, 그 형에게 관련 단체의 사무국장을 소개해주고 대신 사진에 관한 이런저런 갈증을 풀었던 것 같다. 이왕이면 제대로 해보자 싶어 상명대 사진학과 대학원에 가게 됐는데, 아무래도 가장 큰 행운은 그곳에서 오형근, 구본창 두 선생을 만난 것이다. 두 분 다 영화 포스터 작업을 하던 때였다. 구본창 선생은 대학원에서 사진 편집을 가르치셨다.

수강 신청한 사람들 중에 나만 저널리즘 파트였고, 다들 광고와 순수 파트 학생들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구본창이라는 사진가가 ‘왜 유명한가?’ 그걸 좀 확인하고 싶어서 강의를 들었던 건데 그게 인연이 됐다. 전남 장흥에서 ‘축제’ 포스터를 찍는데 내가 집이 광주라는 걸 알고서 도와달라고 하셨다. 그때 조수로 따라가서 영화 촬영현장을 처음 봤고, 이후 중요한 촬영 때면 대신 가서 찍었다. 입봉작인 ‘해피엔드’는 오형근 선생의 추천으로 하게 된 것이다.


배우에 대해 : 어떤 이가 당신의 파인더에서 빛나는가?

나의 결론은 감정이 풍부한 배우가 잘 담긴다는 것이다. 정우성은 한 장을 찍어도 멋있다. 송강호는 무궁무진하다. 그런 면에서 두 배우는 다르다. 송강호는 ‘공동경비구역 JSA’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다섯 편을 같이 했다. 편당 촬영 회차가 100회라고 하면 적어도 500일을 얼굴을 맞댄 셈이다. 직계가족 말고 그 정도로 얼굴을 자주 마주한 친척이 있을까. 그래선지 송강호는 내가 왜 자기 앞에 서있는지를 안다. ‘살인의 추억’ 때 점집에서 박두만이 몽타주를 들어 보이는 장면이 있다. 그때 점집이 정말 손바닥만 했다. 들어갈 자리가 아예 없는 거다. 어떻게든 한 컷 찍어야 놀아도 맘이 편할 것 같더라. 그래서 잠깐 빈틈이 난 순간 욕먹을 각오하고 비집고 들어갔다. 그런 나를 형(송강호)이 본 거지. 리허설이 따로 없었는데도 그런 나를 보고 촬영할 장면의 액션을 취해주었다.

‘놈.놈.놈’ 때도 슈팅에 들어가면 내가 못 찍는다는 걸 아니까 레커차를 얻어 타고서 이동하는 동안 배우들이 끊임없이 연기를 해줬다. 원래 다큐멘터리 사진을 해서 그런지 영화 스틸 사진은 연출된 상황이지만 또 다른 다큐멘터리이다. 영화 제작 전체를 놓고 보면 그런 느낌이다. 결국 영화사진 역시 좋은 사진은 진심이 담긴 사진이 아닌가 한다.

‘싱글즈’를 찍을 때 고 장진영의 경우 참 좋은 느낌의 배우였다. 얼굴이 예쁜 것은 둘째 치고 스태프들을 편하게 대하는 태도나 솔직하게 다가가는 모습에서 좋은 인상과 사진으로 남은 것 같다.


생활에 대해 :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고민 중이다. 하지만 결론은 영화판을 떠나는 것이다. 정말 그동안 잘해왔다. 그런데 그만둘 시점이 된 듯하다. 중대 사진과 나와서 큰 뜻을 품고 영화판에 들어왔다가 돈도 못 벌고 힘만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연출부로 옮기는 젊은이들을 본다.

지난 10년 동안 변한 것이라고는 전셋집에서 겨우 대출받아 집 장만한 것, 아이들이 태어나고, 내 곁에 몇 대의 카메라가 있는 것 외에는 뭘까 생각해본다. 정말이지 생활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동시에 이 판에서 오랫동안 사진을 찍어 대종상의 공로상이라도 받는 사진가가 왜 없을까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잠시 동안 영화판을 떠날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좋은 사진으로 돌아가 마음껏 찍어 보고 싶다. 물론 생활은 되어야겠다. 그래서 요리를 배운다.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당장 그것이 내 생활을 해결해주진 않겠지만 다양한 삶의 방식을 고민한다. 그리고 나서 훗날 영화판에 돌아가면 달라진 내가 있지 않을까?




한세준은 1970년생으로 1998년 상명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5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 촬영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90년대 김명곤이 연출한 연극 ‘유랑의 노래’, 정지우 감독의 ‘해피앤드’, 김기덕 감독의 ‘섬’의 현장사진을 찍었다. 그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괴물’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장진 감독의 ‘거룩한 계보’, ‘아들’ 등의 영화사진을 찍었고 ‘와니와 준하’, ‘질투는 나의 힘’, ‘싱글즈’, ‘범죄의 재구성’, ‘슈퍼스타 감사용’, ‘남극일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목요일의 아이’,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쌍화점’, ‘호우시절’ 등 다수의 영화에서 현장사진과 포스터를 찍었다. 개인전 <珍島(진도)-다시래기> (서울 삼성포토갤러리/광주 금호문화재단, 1997), <한강에서> (서울 서남미술관 포토스페이스, 1999>를 가졌고, 단체전 (서울 자하관갤러리, 1998/1999>, <기억의 여행> (서울 조흥갤러리, 2000)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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