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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 리뷰

가로수길 ‘SOHO IN SEOUL’로 뜬다

2006-07-20


2006년 현재 가로수길을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디지털의 열풍 속에 아날로그가 다시 그리워지듯 가로수길이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패션 발신지로 뜨고 있다. 단지 신인 디자이너들의 처녀비행이 시작되던 곳으로 기억되던 이곳이 문화의 거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 갤러리와 디자이너숍들이 들어서면서 스튜디오 디자인하우스 등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으며 멋을 알고 트렌드를 선호하는 이들이 가로수길로 모여들었다.

그러던 중 IMF 등의 이유로 한동안 잠잠하던 이 길에 1~2년 전부터 다시금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리모델링 등으로 건물들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으며 디자이너들도 발길을 돌려 가로수길로 속속 입성,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현재 가로수길은 패션과 푸드 갤러리 인테리어 등 다양한 문화 코드가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가로수길만의 느낌’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매력을 머금은 거리를 찾으며, 그곳의 문화를 느끼고 열광하듯 신사동 가로수길도 그런 성질의 것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유럽으로 여행을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가로수길이 부리는 마법이다. 휘황찬란하게 단장한 술집과 음식점, 쇼핑숍들이 즐비한 강남의 한복판에 이같이 사람 냄새 나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10년 전의 낭만을 그대로 갖고 있는 가로수길은 최근 들어 생겨나기 시작한 소박한 음식점과 카페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되돌리고 있는 발걸음에 힘입어 라이프스타일 코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가로수길에서 느낄 수 있는 것’, 그 느낌이 이제는 ‘가로수길 스타일’로 정체성(正體性)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른 새로운 패션문화 발신지로 다시금 각광받는 가로수길을 엮는다.


가로수길이 문화의 거리로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이 거리에 다시 활기를 불어 넣은 데는 ‘블룸앤구떼(Bloom & Goute)’와 ‘콰이19(KUAI 19)’, ‘19번지’의 역할이 크다. 지나던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과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냄으로써 가로수길 ‘문화’를 탄생시켰다. 가로수길 스타일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블룸앤구떼’는 플로리스트 이진숙 사장과 파티셰 조정희 사장이 함께 운영하고 있는 공간이다. 지난 99년 2월, 10여년 간 일해 오던 직장에 나란히 사표를 내고 영국과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이들은 그 사건(?)을 어떤 큰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작은 휴식이 필요했었을 뿐이라고 회상한다.

이후 이 사장은 런던의 컬리지에서 플로리스트로 새 인생을 시작했으며, 조 사장은 1년 동안 프로방스에서의 휴식 이후 프랑스 요리학교에 입학해 파티스트리를 전공했다. 그렇게 각자의 새 삶을 꾸려감과 함께 수시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귀국 후의 생활에 대해 계획을 세워 나간 두 사람은 그 결실을 ‘블룸앤구떼’로 맺었다.


가로수길의 역사를 함께 쓴 디자이너 정욱준은 ‘블룸앤구떼’가 갖는 의미는 자못 크다고 이야기한다. “파리의 노천카페를 연상시키는 이 곳은 디자이너에게 충분한 휴식처가 되어 준다. 예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만 있을 뿐 여유 있게 머무는 사람들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블룸앤구떼’가 등장한 이후 사람들이 가로수길을 천천히 즐기게 됐다.”

‘블룸앤구떼’는 꽃과 차 그리고 케이크가 공존하는 곳이다. 지금은 이러한 스타일의 카페가 종종 등장하고 있지만 오픈 당시만 해도 꽃집과 찻집이라는, 잘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너무 다른 두 가지의 것이 한 지붕 아래 있는 것을 신기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눈이 즐겁고 코가 즐겁고 입이 즐거운 이 장소는 그냥 여기저기 놓여진 화분이 마치 한창 손질 중인 정원을 연상시키고 있어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차를 즐김이 편안한 휴식이 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이곳을 즐겨 찾는다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 모씨는 이곳이 겉치레가 없어서 좋다는 말로 설명한다. 청담동 등지에 위치한 카페는 똑같이 눈과 입이 즐거울 수 있으나 격식을 갖춰야 할 것 같다면 이곳은 우리집 정원에 앉아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이 있어 겉치레도,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며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간 중 하나라고 말한다. 가로수길 문화 메카 ‘콰이19’도 그러하다. 베트남의 뒷골목 음식점을 연상시키는 ‘콰이19’는 가수 싸이의 어머니이자 유명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영희씨가 운영하는 곳으로서 독특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콰이19’는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신경옥씨가 낡은 듯 묘한 매력을 지닌 이 건물을 보고 음식점을 해 보면 어떨까 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이에 공감한 김 사장이 레스토랑이 아닌 ‘식당’을 만들면서 탄생했다.

김 사장은 청담동의 레스토랑과 같은 위압감은 없애야 하지만 트렌드 세터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연출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이 거리를 찾는 이들 대부분이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을 적잖이 맛본 이들이기에 맛에서도 그들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숙제가 주어졌다. 이에 김 사장은 굳이 광동식 사천식 등으로 구분하지 않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선별했으며 유명 셰프보다는 젊은 셰프를 채용해 메뉴를 선정하는 데만 수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미식가들과 멋쟁이들이 물밀 듯 밀려와 휩쓸고 간 이곳은 당당히 합격점을 받아내며 맛과 스타일로 완성된 또 하나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핑크색 벽과 마호가니 빛깔의 원목 테이블이 매력적인 ‘콰이19’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리엔탈풍의 바와 같은 라운지가 등장하며 계단을 오르면 좁은 복도길을 따라 비로소 테이블이 등장하는 신선한 구조다. 삐그덕거리는 나무계단의 정겨운 소리는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권’.


특히 ‘콰이19’의 등장을 환영한 것은 가로수길에 일터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외국에서나 중요한 손님이 왔을 때 식사를 하기 딱 좋은 곳이기 때문. 너무 차려낸 듯하지도 않으면서 스타일리시하게, 기분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맛 또한 좋아서 저절로 테이블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 아래 자리잡은 bar ‘19번지’는 가로수길 분위기로 술을 즐길 수 있는 곳. ‘콰이19’의 인테리어 스타일링을 맡은 신경옥씨의 또 하나의 걸작이다. 같은 건물에 작업실을 쓰고 있던 신 씨가 당시 죽어(?)있던 공간을 자신의 스타일로 정리하고 가까운 지인들과 그곳에서 유쾌하게 술잔을 기울이던 것에서 시작된 장소다. ‘상업’보다는 철저하게 사적인 공간에서 시작된 이곳이 가로수길의 명물이 될 줄이야.

“처음에는 와인 몇 병으로 시작된 곳이다. 술은 거기 있으니 안주는 알아서 시켜 먹으라며 내 멋대로 펼쳐놓은 공간이었는데 어느새 가로수길의 운치 있는 바가 되었다.” 이처럼 가로수길이 여타 번화한 트렌디 거리와 가장 큰 차이점은 돈을 목적으로 의도된 공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꽃과 차가 좋았던 주인장들과 술잔을 기울일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이들이 그냥 내 집의 문을 열어놓은 것뿐. 그래서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이 가로수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는 디자이너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점. 가로수길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일하는 공간의 문을 열어 놓은 채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맞이한다. 즉 가로수길 디자이너들의 숍은 엄밀히 설명하자면 숍이 아니라 쇼룸이자 작업실인 것이다. 99년부터 지금까지 이 길을 지키고 있는 디자이너 정욱준씨는 “가로수길은 디자이너들이 작업하기 가장 좋은 장소”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주변과 다른 모습의 것을 보면 신비한 매력에 빠져들곤 한다. 가로수길도 그런 것의 일종이다. 번화한 서울의 한복판에 이렇게 조용한 거리가 자리하고 있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운치도 있고, 요즘은 재미있는 ‘거리’들이 생겨나면서 더욱 매력적인 거리가 되고 있다. 디자이너들이 작업하기 딱 좋은 곳이다. 조용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주는….”
가로수길에 대해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많은 이가 또 한 명 있다. 디자이너 정욱준과 함께 가로수길을 오랜 시간 묵묵히 지켜온 자타공인 가로수길의 터주대감 「누에(NUE)」 박성대 사장이다. 박 사장은 최근 인트아이컴퍼니의 이름으로 「누에」를 편집숍 형태로 탈바꿈시켰으며 국내외 디자이너들과의 교감의 장을 마련해 운영해 나가고 있다. 「누에」의 디자이너 최은경 실장과 함께 완성한 이 공간은 ‘누에어나더숍’으로 이름지어졌다.

‘누에어나더숍’은 디자이너 최은경 실장의 「누에」가 70% 정도 무게 비중을 갖고 움직이며 나머지 여백에는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 「후라보아」와 국내 작가 유림 등 「누에」와 어울리는 아이템이 함께 믹스돼 있다.
과거의 「누에」와 비교해 보면 참 많이 달라졌다. 과거엔 디자이너 부티크와 같았다면 지금은 유럽의 어느 골목에 위치한 작은 편집숍과 같은 이미지다. “예전에는 옷에 내가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고정 고객들이 많아지고 그들과의 관계가 깊어지다 보면 내가 의도하는 옷이 아닌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로 자꾸 변해갈 수밖에 없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힘들어졌다. 그래서 큰 결심을 했다. 돈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하자는 것으로.” 최은경 실장의 이야기다.

「누에」는 길 건너 작은 숍으로 옮겨옴과 함께 ‘누에어나더숍’의 새 이름을 내걸고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변신했다. 아기자기하고 손맛이 느껴지는 옷들이 마치 소녀의 방과 같은 편안함을 전하는 숍에 걸리게 되면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옮겨놓게 했으며 돈을 포기하고 즐겁게 작업하고자 한 것이 오히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게 된 셈이 됐다고 전한다.

2년 전 가로수길에 입성한 디자이너 이석태씨도 가로수길에 같은 의미로 즐거움을 느낀다. “이곳은 내 작업실이고 쇼룸이다. 옷을 많이 팔고자 하는 의도였다면 다른 곳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조용하면서도 인스피레이션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작은 목적에서 이 거리를 선택했다.” 그 계기는 이렇다. 그가 둥지를 튼 이곳, 2년 전 지하 작업실 한 칸에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매장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둘씩 옷이 팔려나가기 시작했던 것. 지인들이 작업실에 놀러 와서 구입해 가던 것이 어느새 꽤나 많은 오더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작업실 1층에 쇼룸을 오픈하는 데까지 일이 진척됐다.

그는 가로수길의 문화란 이런 것이라고 설명한다. “의도한 대로 착착 진행되는 완벽함보다는 내가 원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함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믹스돼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내는 것. 일종의 사람과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이 살아있는 것이 가로수길의 매력이 아닐까” 하고 말한다.
이처럼 가로수길에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통로가 생겨나고 있다. ‘팀블룸(Thim bloom)’ ‘이노필(inno feel)’ ‘아트앤드림(Art n Dream)’ 등도 그러한 맥락이다. 가로수길 초입의 예화랑 6층에는 ‘팀블룸’이라는 이름의 의미 있는 공간이 위치해 있다. 예약을 해야 방문 가능하다는 것에 일부 특정 계층을 상대로 한 맞춤형 쇼핑 공간인가 싶지만 ‘팀블룸’은 다른 이유에서 예약제를 고집한다.

골무와 베틀을 뜻하는 영어단어의 합성어인 ‘팀블룸’은 미나 퍼호넨(Mina Perhonen) 안티파스트(Antipast) 에바고스(Ebagos) 앙리쿠일(Henry Cuir)의 네 디자이너 브랜드로 구성된 새로운 형식의 쇼룸이다. 대량 생산된 제품이 사람들에게 따뜻한 느낌을 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사람의 섬세한 손길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오직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뿐인 수공예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것들이 손에 쥐어지던 순간의 기쁨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날 때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따뜻한 감성과 취향을 맛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이 매장의 총괄 책임을 맞고 있는 수지 김 디렉터는 쇼룸을 찾는 고객들에게 그들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예약제로 움직인다고 한다. 물론 수공예 아이템들이라 비교적 고가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곳은 판매를 주목적으로 하는 공간이 아니며 손맛이 느껴지는 따뜻한 아이템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장소로 기억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원래는 해외 브랜드 수입을 담당하고 있는 회사의 쇼룸으로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는데 그냥 쇼룸으로 쓰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주위의 성화에 이곳을 오픈하게 됐다고. “조금 전에는 20대 초반의 커플이 다녀갔다. 어린 학생들이 구입하기에는 너무 비싼 아이템들이긴 하다. 그래도 옷뿐만 아니라 액세서리 등 작은 소품들도 많아 이것저것 구경하고 차도 마시며 즐기다가 컵받침 2개를 구입해 갔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머무르는 시간 동안 즐거운 얼굴을 하는 것, 그리고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작은 소품 하나를 고를 수 있다는 말이다.”

가로수길 이미지 메이킹에 한몫을 하고 있는 ‘이노필’은 겉에서 보기에는 갤러리 같은 느낌이지만 인테리어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 건물이다. 그냥 사무실로 쓰기에는 너무 멋진 공간이라 가끔 1층 윈도를 통해 다양한 아트 전시회를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이 회사 김계연 사장은 향후 회사 내부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로수길에 어울리는 ‘갤러리’ 공간을 마련해 이 길이 문화적으로 조금더 성숙할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다면 기분 좋은 일일 것이라고.
기분 좋은 공간이 또 있다. 멋진 비주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곳, ‘아트 앤 드림’은 국내 몇 안되는 디자인 전문 서점이다. 사실 서점이라는 단어보다는 감성 충전소 갤러리라는 명칭이 더욱 잘 어울릴 듯한 이곳은 세계 각지에서 수입된 패션 인테리어 건축 사진 등 문화 전반에 걸친 서적을 만날 수 있다. 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된 내부에는 감각적인 표지에 책들이 즐비해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그림’이 된다.

이곳의 장점은 누구든지 얼마든지 머물다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숍 안에 얼마동안 있든지 누구 하나 지켜보는 이가 없어 몇 시간이고 책을 꺼내보고 즐겨도 불편함이 전혀 없다. 때문에 예술가를 꿈꾸는 학생부터 대학교수, 건축가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이곳을 즐겨 찾고 한데 어울려 정보를 나누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오픈한 지하 전시공간은 이곳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국내외의 신진 작가들을 직접 발굴해 내 이색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들이 ‘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가로수길의 시작은 크고 작은 화랑과 갤러리였다. 이곳의 독특한 아우라는 그들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그 감성을 지켜내고 싶다’는 관계자의 말처럼 앞으로 있을 전시회 역시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무장됐다.

로드앤스톡(www.loadnstock.com)과 조인해 이뤄지는 ‘코리아 포토페어’가 그 대표적 예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 40인들의 작품을 인테리어 디스플레이와 결합시켜 생활 속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예술작품을 사고파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좋은 예술인들의 활동이 어렵게 됐고 예술은 곧 배고픈 직업이란 의식이 생긴 것이 사실이다. ‘아트앤룩스’는 다양한 전시회를 통해 외국에서는 이미 대중화된 작품 거래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한다.”
가로수길의 푸드 문화도 저만의 색이 매우 강하다. 그냥 단순히 생겨난 것들이 아니라 각각 예술가적 기질이 뛰어난 주인들의 가치관이 반영돼 있기 때문일 것. ‘그랜드마더(Grand Mother)’ ‘앨리앤티크(Alley Antique)’ ‘룩앳미(Look at Me)’가 그런 곳이다. 태국스타일의 퓨전 레스토랑 ‘그랜드마더’는 심상치 않은 인테리어로 지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다. 태국 왕실을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인테리어와 잔잔한 조명들은 이곳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고 있다. 와인과 맥주 칵테일 등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음료를 제공하며 간단하게 식사도 할 수 있는 이 레스토랑은 주변에 작업실을 둔 여러 분야 디자이너들의 리프레싱 장소로 자주 이용된다. 유명 연예인들도 이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친 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레스토랑 메뉴가 아닌 안락한 휴식이다. 이곳의 주인인 유지영 실장은 동대문에서 여성복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디자이너다. 직업상 늘 새롭고 빠르게 변해 가는 유행을 좇다 보면 아련한 추억이 그리울 때가 많다며 그런 편안하고 포근한 휴식처를 만들고자 이곳을 오픈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언제나 찾아가면 부담스럽지 않은 카페. 프랑스의 시골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앨리앤티크’에서는 가로수길에 배어 있는 포근한 정을 느낄 수 있다. 카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앤티크 가구들은 김사장의 아내가 프랑스를 돌며 수집해 온 것들이다. 10년 전에는 이 길에 ‘앨리앤티크’ 홀로 자리잡고 있었지만 2~3년 전부터 주위에 ‘태린’ ‘런던하우스’ ‘샤갈’ 등 앤티크 매장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앤티크 퍼니처숍 거리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눈에 띄는 스넥숍 ‘룩앳미’는 밖에서도 수제 버거와 샌드위치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탁 트인 인테리어가 신선하다. 이곳의 사장은 디자이너 박소현씨. 가로수길에 ‘소도플래닝’이라는 디자인 숍을 운영하고 있는 박 사장은 가로수길에 어울리는 간단한 식사 공간을 제공하고자 룩앳미를 오픈하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맛도 맛이지만 따뜻하게 맞이하는 박 사장의 인간미에 반해 이 곳을 찾는 고객의 90% 이상이 단골 손님이다. “그냥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가로수길의 문화 공간이길 희망한다. 그냥 들렀다가 따뜻한 분위기의 인테리어에 반해 사진 한장 찍고 지나가면 어떤가? 그냥 그러한 사람들의 반응에 웃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가로수길은 아기자기한 숍들로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하기도 한다. 알록달록한 천 조각들이 눈길을 끄는 ‘랄로(LALO)’는 일본 미국 영국 등지에 퀼트제품과 함께 국내 신진작가들의 퀼트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나라마다 성향이 다르듯 다양한 맛을 갖고 있어 같은 퀼트지만 보는 느낌은 모두 다르다. 일본은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소녀다운 느낌이, 미국은 실용적이면서 모던한 색감이, 그리고 영국은 이국적이면서 로맨틱한 감성이 특징이라고.

매장 벽면에 장식된 이불보는 제작기간만 1년이 넘게 걸렸을 만큼 ‘상품’이라기보다는 ‘작품’으로 불려져야 할 것들이다. 다양한 디자인의 핸드백 역시 한땀 한땀 손으로 넣은 스티치와 컬러감은 인테리어 오브제로도 손색이 없는 아이템. 숍 안에는 이와 어울리는 앤틱 소품과 가구들이 어우러져 유럽 어디쯤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뉴욕 등을 돌며 직접 사 모은 재미난 제품들은 모두 판매용이다. “세계를 돌며 사 모은 소중한 개인 컬렉션이지만 단순히 소장품이 아닌 제품으로 선보여 마니아들과 교감하게끔 하고 싶었다”는 오너의 말에서 숍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긴다.

“숍을 찾는 분들 중에는 인테리어 종사자들이 많다. 손님과 주인 관계를 떠나 툭 터놓고 생각을 나누고 있어 숍 운영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했을 아이디어도 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가로수길은 어릴 때부터 뭔가를 생각하고 싶을 때나 머리를 비우고플 때 자주 걷던 길이라며 지금처럼 이곳이 지나치게 상업화되지 않은 예술가적 감성이 묻어나는 거리로 지켜지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또 하나 가로수길의 재미있는 명물 공간으로는 ‘오타루(OTARU)’가 있다. ‘오타루’는 일본과 캐나다에서 들여온 이국적인 소품들로 가득하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숍보다는 박물관과도 같은 곳’이라는 주인장의 말처럼 내부에는 세월을 머금은 개인소장용 제품들도 함께 진열돼 있다. 셰비시크(Shabby chic:영국 디자이너 레이철 애시월이 만들어 낸 용어로 가구, 소품 등에 빈티지 느낌이 나도록 화이트 도장을 한 후 사포로 벗겨 내 만들어진 스타일)로 정의될 화이트톤의 인테리어 제품들은 보는 이를 편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수년 전부터 셰비시크가 인테리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예전의 앤틱이 갈색톤의 무거운 분위기였다면 이제는 소녀스럽고 사랑스러운 화이트톤이 대세’라는 것이 관계자의 말.

가로수길의 장점 중 하나는 마니아가 뚜렷하다는 점이라는 오너의 말처럼 고객층 역시 한번 구입 후 다시 찾아오는 단골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숍이 주체가 돼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 이 거리의 공통적인 특색이다. 작게는 원하는 제품을 부탁하고 오너와 앤틱에 대한 정보도 교환하며 숍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도 함께 내는 것.

대다수의 인테리어 숍들이 내부 촬영금지를 원칙으로 하는데 반해 이곳은 활짝 열려 있다. ‘가로수길은 많은 패션피플들과 예술인들, 혹은 그들처럼 되길 원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거리다. 이곳의 느낌을 함께 느끼고 공유할 수 있다면 그걸로 OK’라는 오너의 말에서 가로수길의 특색을 읽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생활과 예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의 기프트숍 ‘코발트(KOBALT)’도 가로수길을 대표하는 핫 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카림라시드 등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센스 있는 아이템들을 모아놓은 이곳은 주변 디자이너 및 패션 관계자들의 기분전환 코스로 꼭 거쳐가는 장소다.

패션매장들도 그냥 브랜드 매장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갤러리 같은 느낌의 편집숍 ‘라우나(LAUNA)’와 센스 넘치는 ‘드레스업앳12(DRESS UP AT 12)’, 유럽풍 슈즈매장 ‘프렌치솔&런던솔(French Sole & London Sole)’ 등도 가로수길 스타일의 매장으로 꾸며진 곳들이다. 가로수길 초입에서 조금 들어선 곳에 위치한 ‘라우나’는 가로수길 패션 숍의 특징인 갤러리 같은 공간을 이루고 있다. 특히 ‘라우나’는 매시즌 전혀 다른 컨셉의 인테리어를 선보이며 공간이 주는 의미를 강조할 계획이어서 또 하나의 독특한 명소로 자리잡을 것을 예상케 한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수십개의 전선에 매달린 전구들과 검정색 석고상, 거대한 빈티지 트랜지스터 오디오 등 옷을 판매하는 숍과는 멀어 보이는 ‘라우나’. 독특한 오브제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잘 짜여진 노래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떤 브랜드를 판매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소개하느냐란 생각이 든다. 숍을 구성하는 옷이 달라진다면 당연히 매장 역시 달라져야 한다”는 이윤아 사장은 매시즌 새로운 인테리어 컨셉으로 소비자들을 매료시킬 계획이라고.

이 사장은 “가로수길은 숍 하나하나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서로간의 끈이 튼튼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동시에 많은 것을 배워갈 수도 있는 곳”이라며 ‘라우나’ 역시 그러한 감성을 나누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60년대 글래머러스 스타일을 숍 컨셉으로 가져 가고 있는 ‘드레스업앳12’는 언더그라운드의 감성을 바탕으로 예술적이면서 고급스러운 손길을 숍 안에 담아내고자 의도하며 세련된 빈티지 룩을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 남성 슈즈 브랜드 런칭을 계획하고 있으며 동시에 「스웨어」 「언더그라운드」 「엘리키시모토」 등 유럽 브랜드를 함께 믹스해 캐릭터 슈즈숍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하니 이것 또한 기대해 봄직하다.

케이스모드 사라제시카파커 등 할리우드 패셔니스타들이 즐겨 신는 발레리나 플랫 슈즈 브랜드 「프렌치솔&런던솔」도 국내 첫 매장을 가로수길에 오픈했다. 이 브랜드는 프랑스 디자이너 제인 윙크워스가 유년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플랫슈즈를 선보이고 있다. 오직 발레리나 플랫만을 전문으로 5백여가지의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으며 유명 패셔니스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이 브랜드의 홍지나 이사는 가로수길이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유럽 감성이 풍성하게 녹아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이곳에 첫 숍을 오픈하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그 밖에도 유명 브랜드 수입 편집숍으로 꾸려지고 있는 ‘라비아’도 최근 가로수길에 새로이 둥지를 틀고 가로수길 문화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다. 무역 컨설턴트 출신의 강지연 사장은 「구찌」 「프라다」 등 유명 럭셔리 브랜드들로 구성되어 자칫 신선할 것이 없을 듯하지만 가로수길다운 인간미 넘치는 매장으로 꾸려가는 것이 타 매장과의 차이점이라고 이야기한다.
가로수길에 열광했던 사람이기에 이제 이곳에서 사업을 하게 된 이상 본인이 느꼈던 감성을 그대로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이 거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은 생각이 아닐까 한다. 다른 거리에서 느낄 수 없는 가족 같은 느낌이 가로수길에는 따뜻하게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가로수길’을 이야기하며 몰려드는 것은 이곳의 사람들이 의도한 무엇이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패션을 그리고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로수길은 단지 패션의 거리가 아니라 서울 도심 한복판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사람 냄새, 그것이 만들어내는 문화 코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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