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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 리뷰

칼 뽑아든 위기의 ‘갭’ 옛 영광을?

2007-06-05

갭은 CEO 폴 프레즐러가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후 신시아 헤리스 등 핵심 멤버도 이탈했다. 로버트 피셔 회장은 4개 전략을 발표하며 당면과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다.

국민 브랜드로 사랑을 받은 「갭」이 1969년 런칭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패션과 리테일 사업에 경험이 있는 유능한 CEO를 찾고 있으며 켄터키 주 헤브론에 위치한 유통센터 폐쇄, 「포스&타운」 철수 등 당면과제를 정면 돌파할 전략을 꾸준하게 찾고 있다.

취재 │ 뉴욕 석효정(Hyojung Suk) 리포터(hjsuk@fashionbiz.co.k)

올해 들어서자마자 패션업계에 가장 관심을 끄는 뉴스거리를 제공한 회사는 단연 갭이다. 지난 2년간의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CEO 폴 프레즐러(Paul Pressler)가 지난 1월에 전격 사퇴했으며 「갭」 브랜드 사장 신시아 해리스(Cynthia Harris)도 물러났다. 뒤를 이어 「갭어덜트」 사장 데니스 존스턴(Denise Johnston), 「갭」 아울렛의 다이앤 닐(Diane Neal), 「갭」의 수석 디자이너 샬럿 누빌(Charlotte Neuville)까지 줄줄이 사퇴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직면했다. 패션계 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도 갭사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갭의 창업자이자 오너인 도널드 피셔와 도리스 피셔는 이 시점에서 갭사를 파느냐, 회생을 위한 재투자를 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리바이스」와 함께 미국인들의 국민 브랜드로 사랑을 받은 「갭」은 현재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이 2년간 겪은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69년 샌프란시스코에 첫 매장을 연 「갭」. 같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한 「리바이스」가 데님의 대명사라면 「갭」은 카키(Khaki)의 대명사이다.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갭」의 카키 바지와 티셔츠를 입어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어린아이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랑을 받아온 브랜드였다.

그러나 한창 잘 나가던 「갭」이 2004년 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지며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163억 달러(15조2970억원)였던 매출이 2006년에는 159억 달러(14조9200억원)로 2% 가량 감소했다. 「갭」이 주춤한 사이 라이벌인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와 「아메리칸이글(American Eagle)」은 5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미국 패션업계의 자이언트인 갭사가 2년 연속 지속적인 매출 하락을 보이자 업계와 월스트리트에서는 갭의 회생을 위한 각종 방안책을 내놓고 있다. 그중 하나는 갭사 계열사인 「바나나리퍼블릭」과 「올드네이비」를 분리시키는 방안이다. 「바나나리퍼블릭」 은 갭사가 보유한 5개 브랜드 중 유일하게 지난해 동일점 매출 실적에서 마이너스를 기록하지 않고 매출 증가를 보인 브랜드다. 그러나 현재 갭사에서 유일하게 수익을 내고 있는 알짜 브랜드인 「바나나리퍼블릭」을 갭사로부터 분리시킨다면 갭사의 존재감이 더욱 흔들릴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 다른 방안은 *LBO(Leveraged-buyout)이다. 최근 투자회사들 사이에서 인수 대상으로 회자가 가장 많이 되는 패션그룹이 바로 갭이다. 업계에서는 헤지펀드 업계의 억만장자인 에드워드 램퍼트(Edward Lampert)가 갭의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ESL 투자회사의 오너인 램퍼트는 부도 상태의 K마트를 시어스 로벅(Sears Robuck&Co)과 합병, 시어스 홀딩스(Sears Holdings)를 탄생시켰고 합병 이후 시어스 홀딩스 사는 3배에 이르는 이익을 냈다.
*LBO(Leveraged Buyout): 인수할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차입하고 그 자금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금융기법.
*MBO(Management Buyout): 경영과 인수

그러나 LBO의 경우 갭의 창업자인 피셔가(家)에서 갭사를 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 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피셔가는 현재 갭사 전체 지분의 약 35%를 보유하고 있고 실제 경영에도 깊게 관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창업자로서 38년을 이끌어 온 갭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무엇보다도 투자회사가 갭사를 인수해서 주인이 바뀐다 해도 결코 갭사가 직면해 있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는 아니라는 것이다. 갭사가 예전처럼 화려한 매출 실적을 내고 있지는 않지만 장기 부채가 적고 현금 소통이 잘 되고 있는 점, 낮은 재고율과 효율적인 회사비용 절감 등을 고려할 때 재정적인 면은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갭이 최근 고전하는 이유는 재정이나 경영적인 측면보다는 패션 브랜드로서의 정체성과 트렌드를 놓치며 고객들로부터 멀어진 데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1월 초에 사임한 프레즐러는 비록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재정과 경영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2002년 그가 갭에 영입된 뒤 2년간은 매출이 163억 달러(15조2970억원)로 최고 수치를 기록했고 매장수도 2664개로 늘어났다. 또한 회사가 안고 있던 32억 달러(3조원)에 이르던 부채를 재고 정리, 부진한 매장 철수, 운영 지출 축소 등을 통해 대폭 감소시켰다. 회사의 효율적인 운영과 강화된 대차대조표, 「갭」의 글로벌화, 「포스&타운(Forth&Towne)」 「파이퍼라임(Piperlime)」 런칭 등 여러 면에서 그의 경영 능력이 빛을 발했다. 그러나 월트디즈니사에서 15년을 일한 베테랑인 그도 패션사업 경험이 부족한 탓에 패션 브랜드를 이끄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90년대에만 해도 샤론 스톤이 오스카상 시상식에 「갭」의 티셔츠를 입고 나올 정도로 「갭」은 쿨한 이미지의 브랜드였다. 갓 태어난 아기부터 노년층에까지 폭넓은 연령층에게서 사랑 받았고 저렴한 가격대로 부담없이 깔끔하게 입을 수 있는 브랜드가 「갭」이었다. 그러나 최근 2~3년간 패션계에는 폭풍이 불어닥쳤다. 바로 「자라」 「H&M」 등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등장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트렌드에 더욱 민감해졌고 가격대를 보는 눈높이도 훨씬 낮아졌다. 힙하면서 저렴한 가격대를 내세우던 「갭」도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아베크롬비&피치(A&F)」와 「아메리칸이글(AE)」은 패셔너블하면서 개성 있는 이미지로 젊은 층을 공략했다. 「갭」의 대표 상품인 카키는 「A&F」의 포켓 카고바지가 대신했고 흰 티셔츠는 로고가 새겨진 「A&F」와 「AE」가 그 자리를 빼앗았다. 프리미엄 데님 열풍이 불 때에도 「갭」은 열풍 흐름에 끼어들지 못하고 카키만을 고집했다. 「올드네이비」는 타깃의 의류 브랜드 등장으로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디자인보다는 비용 절감에 지나치게 중점을 둔 나머지 상품의 질이 떨어졌고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는 데 실패했다. 「H&M」과 「자라」가 상품회전율을 6주로 단축시키는 동안 「갭」은 여전히 더딘 상품회전율을 고집한 것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그렇다고 갭사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느 의류 브랜드가 그렇듯이 위기를 기회 삼아 다시 고객의 발길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갭이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 것은 시간문제다. 든든한 재정과 오너인 피셔家의 전폭적인 후원, 미국과 전세계에서 운영되고 있는 3131개에 이르는 스토어, 38년을 쌓아온 브랜드파워, 무엇보다 「갭」을 그리워하는 고객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현재 갭사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패션과 리테일 사업에 경험이 있는 유능한 CEO를 찾는 일이다. 도널드 & 도리스 피셔와 더불어 회사의 보드 멤버인 「구치」의 전 CEO 도메니코 데 솔레, 월마트의 경영진이었던 보브 마틴 등이 회사 경영과 재무 능력뿐만 아니라 패션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머천(Merchant) 능력이 뛰어난 새 CEO를 찾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아메리칸이글」 CEO인 짐 오도넬(Jim O’Donnell)과 수전 맥갈라(Susan McGalla), 페더레이티드와 JC페니의 CEO를 역임한 앨런 퀘스트롬(Allen Questrom), 「폴로」의 프레지던트인 로저 파라(Roger Farah), 「앤테일러」의 케이 크릴(Kay Krill), 버버리사의 전 CEO 로즈 마리 브라보(Rose Marie Bravo), 「리즈클레이본」의 전 CEO 폴 샤론(Paul Charron), 「앤트로폴러지」의 프레지던트인 글렌 셍크(Glen Senk) 등이 물망에 올라 있다.

그러나 몇몇 인사, 특히 로저 파라의 경우 「폴로」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여서 그의 영입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위기의 갭사를 구해낼 최적임자로 미키 드렉슬러(Mickey Drexler)가 꼽힌다. 그는 수년 전 갭사에서 물러나 당시 매출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J크루」를 다시 살린 황금의 손을 가진 능력자다. 그러나 드렉슬러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12%의 「J크루」 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다시 경쟁사인 갭사로 돌아올 확률은 크지 않다.
업계에서는 갭사가 옛 영광을 되찾기까지는 앞으로 1~2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갭사를 구해줄 유능한 슈퍼 CEO를 찾는 것이 급선무라는 데 입을 모은다. 갭사가 팔릴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하면서 2006년 9월 16달러(1만5000원)대를 고수하던 갭의 주식은 2개월만에 20달러(1만8770원)대로 진입했다. 또한 프레즐러의 전격 사퇴 이후 갭사의 주가는 소폭 상승하며 갭의 회생에 대한 기대감을 모으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은 현재 갭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며 주식가치를 2.9(보류)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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