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파스투로 | 2011-08-08
친구 중에 노란색을 유독 싫어하는 인물이 있다. 노란색만 보면 경기를 하는 그녀가 처음부터 노란색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란다. 바로 어린 시절에 겪었던 강렬한, 순간의 기억 때문이라고. 이처럼 색에 대한 호불호, 혹은 취향을 만들어내는 것은 신기하게도 색과 연관된 ‘기억’이다. 기억은 의외로 힘이 세다. 때로는 한 사람의 전 생애를 지배하는 가장 큰 도구가 되기도 하는 기억. 프랑스의 색채학자 미셸 파스투로의 책 ‘우리 기억 속의 책(Les couleurs de nos souvenirs)’은 색과 연관된 그의 기억을 담은 매우 흥미로운 에세이이다.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자료제공 | 안그라픽스
2010년, 프랑스에서 메디치 에세이상을 수상하며 그 이름을 알린 ‘우리 기억 속의 책’은 색다른 색채학 서적이다. 색에 관한 책이면서도 본문에 한 번도 시각적인 이미지가 등장하지 않는 이 독특한 저작은 저자 미셸 파스투로가 반 세기가 넘는 세월에 걸쳐 기록한 색의 기억, 유행과 패션, 일상생활, 예술과 문학, 신화와 상징, 취향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질서와 위반의 상징이었던 초록색이 어찌 하여 자유를 상징하는 색이 되었는지, 혹은 위험과 위반의 색이면서 동시에 축제와 사랑을 의미하는 빨간색의 아이러니를 소개하는 본문은 그 자체로 색다른 재미를 독자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사실 색을 정의한다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수 세기가 흐르는 동안 색에 대한 정의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화했으며, 어떤 문화권에 속하는 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어 왔다. 색채학자인 저자 미셸 파스투로는 여러 해 동안 색의 역사와 상징에 관해 연구하면서 점차적으로 이 책에 대한 착상을 싹 틔웠다고. 그는 그 과정 중에서 어느 날 문득, 반세기가 넘는 개인의 역사, 프랑스 및 유럽 사회의 역사와 관련된 색에 대한 기억들과 용례와 규범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때가 되었다는 자각을 했단다. 객관적인 색의 역사와 더불어 작가의 개인적이고 지극히 신변잡기적인 이야기 또한 담고 있는 이 책은 그러기에 더욱 그 스펙트럼이 넓다.
먼저, 이 책에는 저자가 오랜 시간을 통해 수집해 온 객관적인 색의 역사가 담겨 있다. 그는 일례로 기독교적 전통 아래에서 악마와 죽음, 죄악의 색이었던 검은색이 어떻게 겸손과 절제의 색으로 바뀌게 되었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색채 이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 이와 같이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사실들은 저자가 60여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차곡차곡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서술되었다. 또한 이 책은 약간의 공상적인 부분을 담고 있기도 하다. 긴 시간 동안 그가 색에 관해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을 증언하려는 욕구, 그 사회적이고 윤리적이고 예술적, 시적인 쟁점을 강조하려는 갈망에서 저자의 공상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저자는 읽는 이를 색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공상으로 이끌어 가는 듯 하다. 오직 색을 통한, 색에 의한 이 저작은 색이라는 도구 하나로 일상과 패션, 문학, 그림, 스포츠, 정치, 역사 등의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엮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