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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를 이해하는 방법

피터 노이마이어 | 2013-11-13


미국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에드워드 고리 (Edward Gorey, 1925년-2000)는 아동 문학뿐 아니라 일러스트레이션과 순수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으로 사람들과 소통해왔다. 그의 작품은 특히 기괴하고 때로 잔혹할 정도로 세상의 부조리를 잘 선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유동적인 세계 - 에드워드 고리와 피터 노이마이어의 편지 모음(이하, 덧없는 세상)》은 그의 작품 속에 담긴 비밀을 알 수 있는 열쇠이자, 그를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책이다.

글│박진아 미술사학자, 디자인평론가( jina@jinapark.org)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피터 노이마이어(Peter F. Neumeyer)는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 창조적 협업자로서 그와 우정을 나눈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일러스트레이터와 저자로서 《도널드와 …(Donald and the …)》(1969) 《도널드가 난관에 봉착했네(Donald Has a Difficulty)》(1970) 《왜 낮과 밤이 있는 걸까요?(Why We Have Day and Night)》(1970) 등의 책을 펴냈다. 이 책은 바로 이 두 작가가 세 권의 책을 작업하던 1968년 9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총 13개월에 걸쳐 나눈 편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둘의 관계를 친구, 뮤즈, 협력자 등의 한정적인 단어로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 것이다. 이 둘이 나눴던 75여 편의 편지와 편지봉투 일러스트레이션 28점, 60여 점의 엽서 등은 작업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지극히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내용을 동시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영감은 종종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던 말이 있다. 이처럼 책에서는 철학책에서나 만날 수 있는 명상적 주제의 대화뿐 아니라, 에드워드 고리가 생전에 좋아했던 책이나 작가에 대한 사견과 신변잡기-맛있는 핫케이크 만드는 법, 고양이들의 성격과 행동- 등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다. 일러스트레이터와 작가와의 사이에 오간 공상, 사색, 창조 과정 등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올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며 불거졌던 반전운동과 반문화주의가 기성 사회를 뒤흔들던 1960년대 말엽, 미국은 환상주의 아티스트 고리에게 정치적, 사회적으로 지나치게 심각한 시대로 여겨졌을 것이다. 고리와 노이마이어 두 사람 모두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에 휩쓸리기보다는 저마다의 창조분야에 몰두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 공통적이 있다. 에드워드 고리는 롤링 스톤스나 지미 헨드릭스를 앞세운 1960년대 대중 청년문화 보다는 차라리 한 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1860년대 영국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7세 시대로부터 영감을 찾았다. 보르헤스의 문학을 즐겨 읽었고, 일본 미학에 심취했으며, 막스 에른스트나 르네 마그리트 풍의 근대 초현실주의 회화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또한 에드워드 고리는 미술 작품에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보는 기대는 부질없는 믿음에 불과하다 여겼다. 그는 ‘그림 속에 담긴 메시지나 의미, 철학적 깊이는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오히려 ‘사람들이 의미 발견에 대해 이야기하면 꼭 의심해 보라’ 라고 경고하곤 했다.
그가 노이마이어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고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강한 바램이 있다네. 내가 진짜로 존재한다고 믿지도 않아’ 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그림 그리기란 고리에게 현실로부터 훌훌 벗어나 환상의 세상으로 이송될 수 있는 도피처였다. 그러는 한편 그 역시 그림을 업으로 한 작가로서 친구인 노이마이어에게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포드 재단의 예술후원을 받고 싶다며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한편, 이 책을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노이마이어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자면, 열정적으로 자신의 인생에 몰입했던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결혼해 아내와 세 아들을 둔 가장이자 하버드대 교육 대학원과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캠퍼스에서 강의 스케줄에 치인 바쁜 교수로, 하루가 멀다고 에드워드 고리와 편집자 사이의 이어주는 역할을 소화한 그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한 권의 책이 출판되기까지 작가로서의 고집과 매출을 중시하는 출판사 사이의 팽팽한 긴장은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복병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적합한 책 제목을 놓고, 매출에 더 관심이 많은 출판사 편집자인 해리 스탠튼과 일러스트레이터 에드워드 고리 사이의 의견 차이부터 그의 책을 아동용이나 성인용으로 책의 분류하는 방법에 대한 숙고 등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 사이를 중재하고 또 조언하는 것이 바로 노이마이어다.
이와 함께 아동 독자를 고려해, 낙관적인 해피엔딩을 대상으로 할지 아니면 그의 다른 책이 담고 있는 내용처럼 인생의 부조리함과 씁쓸함을 그대로 보여줄 것인가 하는 논의를 보면 그림책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많은 예술 작업에서 창조적 협력관계를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는 만큼 글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 그림책을 완성하는 데에도 훌륭한 두 작가의 창조적 교감은 중요한 요소다. 오늘날 우리는 하루 24시간, 주 7일을 쉴 틈 없이 지인들과 트위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손쉽게 공유한다. 손편지로 우정을 나눴던 그 두 사람의 이야기가 특히 와 닿는 것은 이들이 오랜 시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전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에드워드 고리는 최근 들어 더욱더 미국과 유럽의 크리에이티브와 작가들 사이에서 조용한 사랑과 흠모를 받고 있는 일러스트레이이자 아티스트, 시인이다. 영화감독 팀 버튼에서부터 인더스트리얼 록밴드 나인인치네일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고스 하위문화(Goth Subculture) 스타일의 선두주자이며, 때론 음산하고 때론 기괴하면서도 괴짜스런 유머와 수수께끼 같은 드로잉을 그려 성인을 위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로도 불리는 현대판 초현실주의자다. 20세기 최대의 격변기였던 1920년대 중엽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2000년에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무려 백 편이 넘는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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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칼럼니스트
미술평론가, 디자인 및 IT 경제 트렌드 평론가, 번역가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월간디자인의 기자를 지냈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미술관 전시 연구기획을 했다. 현재 미술 및 디자인 웹사이트 jinapark.n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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