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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정연두 - 드림위버의 유쾌한 뷰파인더

2006-05-03


글_최진이 기자│자료_작가 제공

‘가족사진을 무료로 찍어드립니다’라는 전단지 한 장에서 시작된 정연두의 ‘상록타워’(Evergreen Tower, 2001)는 유사하게 보이는 32개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당시 사진에 찍힌 사람들에게나 사진을 감상하던 관객들에게나 흥미로운 사건으로 기억된다. 한 개 아파트동 내 총 32세대의 거실이라는 사적공간을 노출시킨 이 작업은 연출된 사진이 아니다. 시리즈로 제작된 ‘상록타워’는 사각형의 획일화된 동일구조 안에 살고 있는 우리 모습 그대로를 동일한 앵글에서 바라보고, 이를 담담하게 담아냈다. 그러나 이들 각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일한 구조의 엇비슷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각 가정이 고유하게 지니는 삶의 단서들을 우연히 포착할 수 있다.

“전시 오픈 때 모델이 되어 준 상록타워 주민들이 전시장에 왔다. 슬라이드 환등기가 돌아가면서 각 가정의 가족사진이 벽면에 비춰지는데, 재미있는 점은 사람들이 본인 집보다 윗집, 아랫집, 옆집 등이 어떻게 사는지 더 관심있어 했다는 것이다. 아파트라는 동일한 블록구조 안에서 생활하면 전체적인 뷰를 갖기 힘든데, 관람객들은 사진을 보면서 마치 셜록 홈즈가 된 마냥 각 가정의 삶의 형태를 유추해냈다. 예를 들자면 TV 위에 놓인 우승트로피들을 보면서 이 집 아저씨가 보디빌딩 선수였구나, 혹은 음악을 좋아하는 가정이구나 등. 하나의 연극무대에서 세트가 32번 바뀌는 듯한 묘한 느낌이었다.”


일상적인 삶의 풍경이 익숙하고 생경하면서도, 흥미로움을 유발시키는 이유는 일종의 훔쳐보기에서 얻게 되는 긴장과 희열 사이의 아슬아슬함이 작품 속에 은연중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혹은 32개의 슬라이드필름이 환등기 너머 차례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실제이면서 실제가 아닌 환상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삶과 연극의 중간지점을 다루는 듯한 ‘상록타워’는 우리 인생이 여러 개의 막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연극처럼 세상을 향해 투사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정연두는 일상성이나 정체성 등과 관련된 거대담론을 통해 그의 일련의 작업들이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나 일상의 파편을 잡아내고 사적인 이야기를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여, 이를 유쾌하게 풀어낸다는 차원에서 마치 시나리오 작가 같은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비록 정연두가 일상에 접근하는 방식은 1990년대 이후 미술계에서 이슈화 되어 온 흔히 이슈화 되는 공포스런 생경함을 동반한 그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작가, 모델, 관람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긍정적 생경함을 동반한 또 다른 시선이다.

정연두가 ‘아줌마적 관심’에서 일상의 풍경을 선입견 없이 바라보기 시작한 후 제작된 ‘보라매댄스홀’(Borame Dance Hall, 2001) 또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작가는 주변에 대한 이러한 시선 역시 거시적이거나 정치적인 입장에서 조명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슈에 포함된 개개인의 느낌이나 감수성 등을 직접 경험하고, 여기에 부분적 양상이나마 시적 감수성을 가미해 긍정적으로 재현하고자 한다.

“보라매공원의 댄스홀에서 춤추는 어르신들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사실 그분들은 배도 나오고, 탈모되고, 키도 작은 어떻게 보면 춤이라는 행위가 환기시키는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중년의 모습이었다. 보라매공원이 위치한 대방동 또한 부유한 지역은 아닌데, 이런 곳에서 서양의 고급 사교댄스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이 우선 흥미로웠다. 이러한 모습을 그대로 사진으로 옮기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모습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를 환경화시키고 싶었다. 환상이자 판타지를 공간에서 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그래서 ‘보라매댄스홀’은 벽지작업이 되었다. 방 한가득 사방에 도배된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일부를 캡처한 것이지만, 이러한 평범한 모습은 작가의 시나리오에 따라 꿈이 담긴 하나의 환상 속 공간으로 역할바꾸기에 성공한다. 이 벽지작업은 현재 한 일본인 컬렉터의 집 내부 벽을 꾸미고 있기도 한데, 작가의 예술작업이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좋은 사례이다.


‘보라매댄스홀’을 촬영하기 위해, 약 3개월 간 사교댄스를 익혔다는 작가는 리듬과 비트에 의해 진행되는 춤의 세계를 제대로 캡처하기 위해서 스스로 스텝의 템포를 익힐 필요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럴 듯한 동작에서 셔터를 누르면 매번 사진에 남는 것은 엉거주춤한 포즈이기 일쑤였기 때문. 그러나 스스로 춤을 배우면서부터는 순간을 제대로 캡처할 수 있었다.
“자신이 대상으로 하는 것의 즐거움을 직접 느끼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느끼면 작업도 피상적으로 되는 것 같다. 물론 그 대상에 과도하게 몰입해 있으면, 객관적 시선 또한 유지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그 둘 사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나 스스로 대상의 즐거움을 알고 작업할 때는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면서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대안공간에서 벽지작업을 처음 전시한 후, ‘○월 ○일 ○시에 작품을 철수할 예정이니 칼만 가져오시면 마음껏 찢어 가셔도 됩니다’라고 공고한 적이 있다. 사실 작품철수를 좀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요청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들도 좋고 나도 좋자는 차원에서 제안한 것이었다. 그런데 딱 3명만 나타났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2년 후 서울의 한 대안공간에서 주최하는 옥션에 똑같은 벽지를 작게 잘라 만원짜리 액자에 끼워 출품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30만원까지 올라가 여러 개 팔린 적이 있다. 분명 똑같은 작업이었는데 이를 액자에 넣으면 작품이 되고, 벽지는 작품으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사실 벽지는 항상 무언가의 배경이며, 분위기만 맞추는 역할을 한다. 나는 주(사람)/객(벽) 전도를 시도함으로써 사람들의 우스꽝스런 모습이 없어지고 분위기가 전환되는 효과를 봤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이 벽지작업이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 아니었다.”

예술과 쓰레기는 종이 한 끝 차이일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실용성과 작품성 사이를 인식하는 대중의 의식전환이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연두는 1969년 경남 진주 출생으로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후, 런던 세인트마틴대학과 골드스미스대학에서 수학했다. ‘Wonderland’, ‘Beat It’, ‘Bewitched’, ‘Chinese Lucky Estate’, ‘Tokyo Brand City’, ‘Borame Dance Hall’ 등 5차례의 개인전을 치렀으며, 20여회가 넘는 단체전에 참가했다.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참여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술비평가 유키 카미야는 정연두를 두고 ‘드림위버(dreamweaver)’라고 했다. 꿈을 실현시켜주는 시리즈 작업인 ‘내사랑 지니’(Be witched, 2003)와 가장 최근 작업인 ‘이상한 나라’(Wonderland, 2004)에서 비롯된 호칭인데, 정연두를 대표하는 이들 작업은 아직 현재진행형의 시제를 띠고 있다.
40명의 꿈을 실현시킬 생각으로 시작된 ‘내사랑 지니’는 현재 50%만 완성된 상태이다. 이 작업은 작가의 기획안에 대한 기금이 마련될 때마다 재개된다. 그래서 다소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우연히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작업하게 되면서 꿈의 양상도 다르고 사람들 간 취향도 다르다는 것을 배울 수 있어 여러모로 의미 깊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40명일까. 당황스럽게도 작가는 단순한 답을 내놓는다. “슬라이드 환등기 작업인데, 트레이에 80개 홀이 있다. 트레이 홀 숫자를 다 채우려고” 그 숫자를 정했단다.

2004년 에르메스미술상 후보작품으로 올랐던 ‘이상한 나라’도 5~8세의 유치원 어린이 그림을 2,000여개 모아 그 중 17개 그림을 실제로 재현한, 일종의 ‘희망프로젝트’였다. 작가는 “어린이가 어른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어른이 어린이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교차되는 시점에서, 현실과 유사하지만 결코 현존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고 고백하며, 여전히 실제계와 상상계 사이에서 부유하는, 그 사이 간극이 발산하는 가능성의 매력에 푹 빠져 있음을 시사했다.


작가에게 이러한 작업을 위한 중간 매개체가 되는 것은 줄곧 사진이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사실을 기록하는 도구이지만, 정연두에게는 환상을 기록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는 스스로의 직업에 대해 “시각전문가라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다루는 전문가 입장에서 창조하는 사람의 개념이 더 큰 것 같다. 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했지만, 그때 익혔던 제작방법들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나 아이디어, 목적에 적합하지 않았다. 지금은 방법론적으로 무엇을 표현하고자 할 때, 사진이 가장 잘 표현되기 때문에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어떤 방법론을 택하느냐는 열려 있는 문제이다. 내 욕구를 표현하는 데 있어 돌을 깎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되면 돌을 깎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5월 말, 국제갤러리 개인전 오픈을 앞두고 있는 그는 현재 풍경작업에 몰두해 있다. 일명 ‘로케이션’ 작업으로 채워질 이 전시에 출품될 작업들은 작년 관훈갤러리 전시에 출품되었던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로운 작업들이 될 것이다. “다소 과거지향적이고 어두운 느낌이지만, 사진 한점한점을 쉽게 지나칠 수 없게 만들 것”이라며, 더이상의 언급을 거부한다. 그런 그가 준 힌트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제목이기도 한 ‘Are You Lonesome Tonight?’을 전시명으로 정했다는 것.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에서 일종의 신뢰감, 유연함을 느낄 수 있었던 데에는 삶을 바라보는 그의 뷰파인더가 유쾌하기 때문일 것이며, 작업에 대한 작가의 소명과 의지가 명쾌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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