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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오노레 도미에_파리의 풍자꾼

2007-12-25

오노레 도미에가 태어난 1808년부터 그가 생을 마감하는 1879년 사이 프랑스는 크고 작은 시민항쟁들이 끊이지 않는 정치적 질풍노도의 시대를 경험했다.
마르세이유의 액자 집 아들로 태어난 도미에는 인기를 끌지 못했던 유화작업을 대신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1829년부터 일간지에 정치풍자화를 기고하기 시작한다. 국왕의 살찐 얼굴을 서양배에 비교하여 우스꽝스럽게 풍자한 도미에의 캐리커쳐는 서민층에 많은 인기를 끌었으나, 보수파 정부에게 정치범으로 몰려 투옥당하기도 하였다. 이때 이후로 도미에는 검열을 피할 수 있는 내용으로 주제를 바꿔가며, 파리시민들의 일상과 여가생활, 사랑과 자녀교육 등을 유머 가득한 필치로 그려냈다.
그는 석판공방에서 견습생활을 하던 21살 때부터 시력저하와 곧 이은 시력상실로 더 이상 작품 제작이 불가능해진 65살까지, 많게는 일년에 약 125점(3일에 한 작품 꼴)을 제작, 일생 동안 총 약 4천여 점의 석판화를 남겼다. 도미에에게 이 작품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임과 동시에 프랑스 역사의 기록이자 소시민에게 주어진 발언의 장이었으며 당대를 살아가는 한 파리지안으로서의 자화상이기도 하였다.


오노레 도미에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 이타미시립미술관과의 교류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에서는 1830년 7월 혁명 직전에 제작된 작품번호 1번에서부터 1868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전쟁을 암시하는 말년의 작품까지 총 146점의 석판화를 [모던 파리], [부부와 가족], [여행과 여가], [정치풍자]의 네 개의 소주제로 분류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당시의 정치가들의 얼굴을 희화화해서 재현한 풍자조각, 도미에의 초기 유화양식을 엿보게 해주는 회화작품을 포함한 총159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모던 파리
19세기 중엽의 파리는 좁은 돌담골목에 오수가 흐르던 중세의 도시에서 개선문이 들어서고 방사선의 대로 불르바드가 뻗어나며 실크해트와 거대한 드레스를 차려 입은 중산계층이 도시를 활보하는 모던한 도시로 거듭난다. 도미에는 1855년 파리만국박람회와 미술전람회인 살롱, 식물원을 찾은 관광객을 비롯하여 새로이 등장한 세력인 여성운동가들의 활약상까지 빠짐없이 관찰하였다.


부부와 가족
도미에가 그리는 부부와 가족상에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인간의 모습이 묻어난다. 19세기파리에서도 부부는 서로를 의지하며 기쁨은 두 배로, 때로는 미움도 두 배로 증폭되어 끊임없이 다투고 화해하는 나날의 반복이었나 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둘을 잇는 것은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자식들이다.


여행과 여가
19세기 파리의 휴일을 담은 모습에서는 더 이상 농업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중산노동자층들의 야외 나들이가 중요한 주제가 된다. 파리외곽의 호수나 전원지대를 하루에 왕복 할 수 있게 해준 철도열차의 대중화는 도미에 이후의 인상파화가들에게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다.


정치풍자
도미에의 오랜 석판화 작업은 정치풍자화에서 시작하여 정치풍자화로 끝을 맺는다. 진실을 직시하고 거침없이 부정을 고발하는 도미에의 통쾌한 이미지들은 대부분이 문맹이던 당시 서민들의 뇌리에 그 어느 칼자국보다도 강력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도미에의 정치풍자화들은 시민의식의 고양을 통해 궁극적으로 프랑스의 민주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

자료 제공 _서울대학교미술관

<오노에 도미에 탄생 200주년 기념전>
전시기간 _2007년 12월 14일 ~ 2008년 1월 31일
장소 _서울대학교미술관
문의 _02-880-9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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