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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폐타이어로 만드는 슬픈 변종

2008-01-01

폐타이어로 만든 동물 조각으로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 지용호가 지난 12월 19일부터 1월 1일까지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지용호는 전통조각의 재료 대신에 현대 산업사회의 산물인 ‘폐타이어’라는 독창적인 매체를 사용하면서도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전통조각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현재 뉴욕대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지용호는 꾸준히 ‘뮤턴트(mutant)’를 주제로 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11월 ‘상어 Shark’ 작품이 필립스 뉴욕컨템퍼러리 경매에서 $145000(약 1억3천만원)에 낙찰되는 등 스페인 아르코아트페어와 크리스티, 필립스 경매를 통해 해외미술계에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뮤턴트의 모습은 자연의 거대한 순리에 따라 탄생한 적자생존으로서의 뮤턴트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반역이라는 인간의 파괴적 행위에 의해 곧 사라지고 멸망해 갈 슬픈 생명체의 모습과 다름 없다.”
- 작가노트 중에서

변종을 뜻하는 ‘뮤턴트(mutant)’란 동식물의 형태가 일반적인 형태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이현상을 거쳐 형성된 결과물을 의미한다. 변이는 자연적으로 생길 수 있지만 외부 요인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지용호는 특히 인공적인 변이에 관심을 갖는다. 이는 유전자의 인위적인 결합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로 인해 모든 생명체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용호의 뮤턴트들은 돼지 코를 한 용의 머리나, 닭의 꼬리가 달려있는 목이 길어진 늑대, 힘없이 처량한 사자의 모습 등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비정상적인 형태이거나 다른 종의 동물과 합쳐진 새로운 생명체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뮤턴트. 과감하게 변형되고 왜곡된 모습은 타이어 특유의 거친 무늬와 검은색으로 표현되어 일견 무섭고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그 속에 보이는 처량한 눈빛은 연약하고 불안정한 그들의 존재와 상황을 드러낸다.
이러한 불안하고 슬픈 변종, 뮤턴트를 통해 작가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와 그 속에 노출된 인간의 불안한 심리 상황, 인간의 파괴적인 행위로 인해 힘을 잃어가는 자연의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형식과 기법적인 면에서 볼 때, 내 작업은 전통적인 구상조각의 영역에 속한다. 나는 미켈란젤로와 로댕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로댕의 조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작가노트 중에서

지용호는 흙, 대리석과 같은 전통적 조각재료 대신에 현대사회의 산물인 ‘폐타이어’로 작업한다. 그러나 형식과 기법 면에서 순수 전통조각의 맥락을 잇고 있는데, 실제로 해부학적 지식과 강도 높은 노동력을 바탕으로 하여 철이나 스티로폼으로 기본 뼈대를 제작한 후 그 위에 실제 근육처럼 여러 종류의 폐타이어를 자르고 접착하는 전통적 소조 기법의 제작 방식이 이를 잘 보여준다.
먼저 자전거나 오토바이, 자동차에 사용되는 각 타이어의 질긴 정도나 두께 등의 특성을 파악한다. 딱딱한 타이어로 동물의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근육을 재현하기 위해서 각 타이어들의 특징을 감안한 후, 그것을 근육에 적합하도록 다루는 것이다. 또한 타이어를 자르고 붙이는 작업 과정은 강도 높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물리적인 어려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렇듯 매우 현실감 있는 동물의 근육들은 힘과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전통적인 조각의 제작방식 속에서 되살려진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반전통적 조각매체인 ‘타이어’로 탄생된 지용호의 뮤턴트는 전통과 현대 조각을 잇는 가교로서 역할을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 소조기법으로 작품의 기본 뼈대를 제작한 후 그 위에 폐타이어의 특성을 활용하여 힘과 테크닉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지용호의 방식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예술의 고유한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의 예술관에서 기인한다.
동시대 미술가들, 특히 대다수의 현대 조각가들이 참신한 재료와 기법만을 추구하여 전통과 분리된 현대조각의 새로운 작업을 지향하는 요즘, 독특한 재료뿐 아니라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성실함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집약적인 지용호의 작업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또한 전통조각의 제작 방식을 고집하는 젊은 작가의 이번 전시는 설치미술의 확산과 탈장르로 조각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진 미술계의 현 시점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점이자, 평면매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되어있는 조각 미술에 활력이 되어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자료제공_인사아트센터 조의영 02-73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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