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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얼굴과 얼굴 사이의 공감

2008-06-03

얼굴이라는 단어로부터 떠오르는 온갖 이미지들은 그것을 묘사한 것이든 실제인물이든 간에 대면했을 때 나타나는 첫인상이다. 작가들이 묘사한 얼굴들을 서로 한 공간에 모아놓은 특별한 전시, ‘대면하다’ 展은 얼굴에 주목함과 동시에 작품들이 나타내는 형상들의 대면식을 만들어 낸다. 얼굴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나 첫 대면을 할 때 가장 먼저 보는 부위로써 사람이 묘사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부위이다. 이번 전시에는 중국작가 인쿤의 아이의 얼굴을 통한 사회주의에 대한 시선, 이이남의 명화를 차용, 재해석한 연구로써의 얼굴, 박영근의 위인에 대한 아우라의 해석, 강지만의 코믹하지만 사랑스러운 얼굴, 강우원의 인터넷으로 인한 익명적 현대인의 초상, 김순임의 따사로운 울로 만들어진 얼굴의 캐릭터 등을 볼 수 있다.

자료제공 ㅣ 얼갤러리

박영근은 관념적이거나 사실적인 묘사로 현재 한국 및 해외에서 활발한 전시를 펼치고 있다. 캔버스에 바탕색을 칠하고 그라인더와 샌더로 형태를 만들어낸 후, 흐르는 듯한 곡선들로 속도감을 더하는 기법으로 이질적인 시공간에 존재하는 요소들을 조합하는 '이미지 계보학'을 해왔던 박영근은 그 연장선상에서 더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서사 만들기를 시도한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좌표의 중심을 외부에서 자신에게 되돌리고,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에서 파생된 이미지와 그로부터 시공간적으로 확장된 이미지들을 조합하여, 객관적인 서사와 상관없는 주관적인 서사를 구축하는 일을 시도한다. 이번 전시에는 위인들로부터 파생되어지고 조합된 이미지들을 빠른 속도감과 그라인더의 응축된 에너지형태를 통해 인물의 내적인 아우라를 표출해낸다.

강지만은 일인칭적인 시점으로 환상을 넘나든다. 코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주인공들은 커다란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서 환상의 나래로 빠져들고 있다. 그가 항상 주제로 삼는 것은 대중의 무관심으로 주인공들은 항상 혼자이며 심지어 화면에 출연하는 동물들조차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렇기에 인물의 얼굴에 더욱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밝고 따스한 색감의 돌가루가 섞인 독특한 안료로 하나하나 정성이 깃든 붓터치로 그려내는 얼굴은 고독한 현대인의 자아를 찾아 가는 여정을 소소한 소재로 담아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얼굴을 통해 아직 자라지 못한 피터팬이 세상에서 떠돌며 겪게 되는 좌충우돌 방황 여행기를 표현하고 있다.

강우원은 일정한 두께를 갖는 아크릴 판을 소재로 하여, 이미지에 해당하는 부분을 수공으로 일일이 따내는 과정을 통해 판을 만든다. 그런 연후에 합판에 그 판을 대고 안료를 수 차례 덧바르는 기법을 시도한다. 작가는 작가가 만든 고유한 안료로 두꺼운 고형의 이미지로 물질성을 강화한다. 점들로 이루어진 작품이 가진 독특한 입체성은 흡사 척 클로즈의 인물 해석을 두툼한 입체화 버전으로 바꾼 듯이 보인다. 작가가 차용하는 인물상은 인터넷에서 차용된 이미지로서, 익명적이고 출처불명의 이미지를 일반화하고 보편화한 미디어 환경, 인공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익명의 주체가 포토샵을 통해 변용되는 개인의 자기연출시대-이미지의 정치학으로서 개개인의 불분명한 정체성이 작가가 중첩시킨 레이어로 된 망점으로써 표현되어 이질적이고 무한의 요소들로서 현세대를 구조화시킨다.

이이남의 작품은 영상을 조작하는 첨단과학과 고전의 만남이란 화두에서 시작한다. 액자틀이나 병풍으로 위장된 LCD모니터 속에서 일어나는 영상 작업이란 점에서 비디오 모니터 속에서 진행되는 비디오 아트의 형식과 닮은 점이 많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지닌 특징이라면 고대의 명화, 현대의 걸작이 차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완료된 작품에 또 하나의 생명을 가함으로써 고전이나 현대의 걸작을 재해석하고 있다는 변주의 미학에서 그의 창작의 요체를 발견할 수 있다. 이이남의 작품은 고전과 현대의 만남이란 독특한 상황 속에서 비그가 선택하고 있는 고전이나 현대의 작품이란 이미 완성된 것들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남준 이후의 또 하나의 영상의 혁명을 조용히 추진해나가고 있는 그의 연작들 중 인물 탐구를 조명한다.

김순임은 부드럽고 따뜻한 이미지를 주는 재료로 작가가 만난 인물들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표현한다. 작가는 기억의 한 부분을 더듬어 자신의 한 부분을 만들어준 평범한 사람들-알려지지 않은 작가만의 神(작가주)의 모습을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부드러운 재료들로, 가족을 입히고 덥히는 어머니들의 방식인 바느질과 펠팅으로 표현한다. 그들의 모습은 다른 누군가를 닮아 있어서 보는 이들로 그들의 누군가를 연상시킨다. 다시 말해 작가에게 기억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어떤 이가 되어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얼굴들이다. 또한 이 얼굴들은 설치 방식에 따라 괴기스럽게도 따스하게도, 혹은 공허하게도 보이는 중의성을 가지고 있어 단편적으로 이해될 수는 없으나 작가가 활용하는 실이나 펠트 같은 재료로 다양한 특색들을 부드럽게 포용하고 있다.

중국의 아방가르드 1세대 작가로써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아카데믹한 배경과 이론, 조형성을 갖춘 인쿤은 급변하는 중국의 사회, 문화의 흐름 한가운데에서 당대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함께 중국 현대미술의 변혁을 이끌었다. 그의 대표작인 중국 영웅(Chinese hero)시리즈는 어린 시절 서구에서 도입되어 중국에서 새로운 아이콘으로서 사랑을 받은 만화책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인물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어린아이로 상징되는 인물들의 변형을 통해 가지는 이미지는 얼굴을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살짝 벌어진 입술과 통통한 볼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이 가진 유머가 보이지만 정반대로 아이들이 중국의 정치적인 현실을 풍자하는 상황묘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커다란 반전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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