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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달항아리_채움과 비움

2009-07-21


“비움과 채움! 그리고 新 달항아리”, 동양화가 오관진
오관진은 자신을 태워 만들어진 도자기를 그리는 화가이다. 그는 청화백자운룡문호, 막사발, 달항아리, 분청사기와 같이 솔직하고 덤덤한 우리 땅의 정서가 배어 있는 도자기들을 주제로 한다. 도자기는 달구어진 불구덩이 속에서 태어나는 그 만들어짐의 과정처럼 정서적인 교감을 우리들에게 이끌어내고 현재의 조심스러운 삶의 궤적을 더듬는 감상과 실용의 경계에 있다. 그래서 작가의 시선에 머문 도자기의 표현은 그 무수한 이야기 거리를 안고 회화로 조각으로 빚어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청화백자는 용문을 새긴 조금은 멋을 내고픈 반듯한 가문의 마음이 들어 있고, 막사발은 거친 어머니의 손이 스쳐간 듯 그립다. 분청사기는 한번 긋고 지나간 단순하지만 구조적인 세련미를 준다. 그 가운데 달항아리는 그 형태와 색감, 울려 퍼지는 진하고 깊은 감동에서 그 아름다움이 넓고도 높이 평가된다.

달의 이미지를 덧입은 달은 남편 예(?)에게 내린 불사약을 훔쳐 먹었다가 예장군에게 발각되자 달로 도망가 숨었다는 항아가 사는 신화속의 상징물이면서도 밤을 밝히고 자신을 모습을 바꾸어가는 신비한 세상의 밤을 창조하는 미디어였다. 또한 달은 자신의 몸이 이지러졌다가 다시 살아나는 재생, 불사의 상징물로 고래로부터 신성시되었다.

주병이나 매끈한 그릇은 그 됨됨이가 사대부의 반지르르한 잘난 마음이나 요염한 미인의 세침한 맛이 흐르는 듯 하지만 둥근 달항아리는 듬직한 체구를 갖고 후덕하고 넉넉하여 돌아앉은 여인네의 풍성한 뒤태를 보고 있는 듯 푸근하고 정겹다.


오관진은 이러한 도자기의 저마다 뿜어내는 본연의 생명력에 시선이 멈춘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도자 자체의 질감과 아름다움을 사진을 재현한 듯 탁월한 묘사력으로 도자의 형태와 질감, 숨 쉬는 마음, 그것을 감상하는 자의 역사 속에서 부유하는 시선까지도 끌어안고 있다.

한지로 바탕을 만들고 조각하듯이 날카로운 칼로 환부를 도려내듯 바탕을 비우고 돌가루와 안료를 혼합하여 자기(磁器)의 매끈한 형태를 올린다. 태토와 유약과 나무가 뜨거움 속에서 한바탕 어우러져 만들어낸 자신의 균열을 막사발에도, 달항아리에도, 분청사기에도 섬세하게, 집요하리만큼 성실하게 채워 나간다.

그리고 근원을 알 수 없는 고목나무가 항아리를 받치고 있으나 그 존재는 깨끗하고 정갈하기만 하다. 함지박에 놓인 이질적이고도 모던한 체리는 화면을 뚫고 밖을 향해 아니 화면 속으로 들어가는 어셔의 <도마뱀> 에서 보여주듯 평면에서 존재한 도마뱀이 화면 밖으로 나와 사물 속에서 존재하다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존재와 환영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목재로 화면을 파내고 상감으로 정교하게 채워 넣는다. 즉 과거와 현재, 그림과 관람자, 대상과 화가와의 소통이 대상물의 낯선 존재와 행위를 끌어들임으로써 하나의 유기적인 회화로 승화시키고 있다.

오관진은 동양적인 화면 바탕을 붓으로 그려내는 행위가 아니라 칼로 파내고 채워 나가는 반복된 행위를 통해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한두 가지의 매화가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매화는 겨울을 이겨내고 그 까마득한 추위 속에서 거칠고 굽어진 가지 속에 오롯하고 산뜻한 꽃을 피워낸다. 원대의 오진은 매화 도인이라 하였고 청의 금농은 평생을 매화만을 그린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듯 향기와 꽃 매무새 그리고 그 성정까지 5감을 자극하는 매화의 이 극적인 미의 대조(contrast)는 오관진의 그릇을 완성도 높은 시각적 아름다움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담박한 그릇 속에서의 깨끗한 매화라!

오관진의 매화는 춤을 추듯 리듬감을 갖는데 살포시 내딛는 발디딤과 함께 버선의 곡선을 따라 멈칫 멈칫 비상하는 고요한 듯 휘몰아치는 것은 소담한 그릇과의 묘한 인연일 것이다. 오관진의 그림은 파내고 채워진 두터운 질감 속에 깨지지 않는 견고한 도자기의 성질을 표현한다.

떠있는 화면위에 부유하는 고목은 아득한 동양의 여백과 만나면서 무한히 펼쳐지는 영원한 시간의 울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의 화면은 동양적인 모티브와 관념을 내재하지만 항아리에 조용히 감도는 빛과 깊은 음영, 자로 잰 듯한 정확한 기하학이 보이는 것은 다분히 서양화의 작화태도이다. 즉, 그의 그림은 한지위에 그려내는 동양화의 행위를 파내고 채워 넣는 상감기법이라는 공예적인 부분으로까지 확장시키고 있으며 빛의 과학적 반사의 제시를 통해 서양화로의 이행을 보여준다.

오관진의 작품은 균형이 빗나간 달항아리, 불길이 스치다 만 막사발의 검은 흔적, 흙이 자신의 본성을 다한 숙명적인 균열까지 초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오랜 역사를 숨쉬어온 자기(磁器)의 시간처럼 눈앞의 화면은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그림 밖으로 매화가 자라나고 체리가 뒹구는 화면이 살아 움직이는 초현실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작가는 비움의 미, 비움의 여유, 비움의 여백 속에서 우린 포용의 크기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가마에서 전부를 태워내고 비로소 오롯한 그릇을 만들어 내는 깊은 심연 속에 고뇌하는 장인처럼 오관진은 2차원의 화면에 그릇을 채워내고 마음을 불어 넣으며 그것을 ‘채움’과 ‘비움’이라 하고 있다.

오관진의 실험적인 작화태도는 타올라 변화한 도자의 비움과, 다시 가득한 심성을 채우는 항아리의 삶과 닮았다. ‘비우기’ ‘채우기’ 그리고 그 이후에 만남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회화영역으로 확장되어 다시 만나는 시간속에 감도는 한 빛, 新 달항아리의 탄생일 것이다.

미술비평 : 박옥생 미술사


한국화가 오관진의 개인전 달항아리(채움과 비움)를 주제로 한 작가의 작품은 사실적 표현과 함께 명암법을 도입하여 기존 한국화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형태의 테두리를 먹 선 대신 날카로운 칼로 선 맛을 살려 더욱 간결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도예기법 중 하나인 상감기법을 차용하여 관객들에게 입체적으로 극명한 느낌을 전달한다.

오관진은 작품을 통해 도자기가 뿜어내는 생명력에 집중하고 도자기 자체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재현한 듯한 탁월한 묘사력으로 그 형태와 질감까지 설명하고 있다. 그는 균형이 빗나간 달항아리, 불길이 스쳐지나간 막사발의 검은 흔적, 불을 향한 숙명적인 대항의 결과인 작은 균열까지 극사실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그 속에서 매화가 자라나고 체리가 뒹구는 화면 밖의 또 다른 초현실적인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는 마치 그가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회화 영역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닮아 있는 듯하다.

취재 안정원 화가 오관진


작가는 말한다
채움과 비움 아니 비움과 채움 •••
나는 마음의 그릇에 한 없이 채우려고만 한다. 정작 내 자신의 그릇크기는 생각도 못하며 그저 채우려고만 하는 것이다. 비움이 있어야 채울 수 있는 것을 ••• 그 간담함을 •••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진게 많으면 많을수록 자꾸 더 채우려고만 한다. 비움의 미, 비움의 여유, 비움의 여백 속에서 우린 포용의 크기가 달라진다.
욕심과 새것, 새것을 좋아한다. 그 새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나의 그릇을 반드시 비워야만 한다. 그 간단한 진리에 나는 욕심 비우기를 계속 하고 있다. 그리고 큰 그릇을 만드는 것에만 눈을 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담을 것인가가 중요함을 알기에 ‘마음의 수련’에도 더욱 정진해야 할 것 이다.

사랑한다. 많은 것들 많은 사람들을 난 사랑한다. 그 많은 사랑을 담기 위해서라도 우선 비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큰 그릇, 큰마음, 이것은 수련의 반복에서 얻을 수 있다.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그릇은 작아지고 채우려 애를 쓰면 쓸수록 큰마음도 작아진다. 사랑하자! 내 자신부터 사랑하자. 그래야 남도 사랑할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해본다. 그 사랑을 담기위해 미움을 비워야 할 때이다.

웃자! 더 크게 웃자! 하찮은 것에 눈 파는 것을 경계하고 이제는 크게 웃을 일이다. 여유의 웃음 . 그것은 비우면서 드러나고. 비움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작업을 하며 나는 그런 마음을 가지려 다짐과 노력을 했다. 신기하게도 하면 할수록 마음이 급해지고 자꾸 보여주고 싶고 채우려고 드는 또 다른 나를 발견 하였다.

마음의 경계를 펴자. 자연에서 얻는 나무와 흙(도자기)의 어우러짐 요번 작업을 통해 비움의 미를 찾고자 노력하면서 자연과의 함께함을 감사히 하는 마음도 깊어갔다. 비움과 채움의 끝없는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우선 비워야 채울 수 있는 진리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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