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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캔버스 플레이 (The Canvas Play)

2010-05-06


평평한 캔버스 위로 붓이 지나간 흔적, 혹은 지워진 자국이 뚜렷하다. 그 사이로는 잘못 쓴 철자나 뒤집혀 쉽게 알아볼 수 없는 단어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전영진의 그림은 작가와 미술 비평가들이 매달렸던 문제, 즉 회화가 그저 천으로 싸인 캔버스 위에 붓을 이용하여 물감으로 덮은 평면이라는 주장을 전면으로 다룬다.

에디터 │ 이지영(jylee@jungle.co.kr)
자료제공 │ 예화랑(www.galleryyeh.co.kr)

커다란 캔버스에 그려진 단어 위로는 붓 자국이 자못 거칠게 지나가 있다. 색의 조화가 아름다운 그림 속 글씨는 뒤집혀 쉽게 알아볼 수가 없다. 부분적으로 틀리게 발음하거나 일부러 잘못 쓴 철자도 있다. 때문에 오히려 단어 자체에 더욱 집중하도록 만든다. 2010년 5월 6일부터 27일까지 청담동 예화랑 Art 2010에서 열리는 전영진의 개인전 ‘모더니즘과 워홀의 벽지/벽화(wall-painting) 사이에서’는 이 시대에 회화가 갖는 의미에 대해 탐구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상상마당에서 열린 기획전 <서교육십2010: 상상의 아카이브-120개의 시선> 에도 포함된 바 있는 전영진의 그림은 20세기 한때 작가들과 이어서 미술 비평가들이 매달렸던 문제를 전면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회화가 과연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회화가 그저 천으로 둘러싼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덮은 평면이라는 허무하기 짝이 없는 주장은 한동안 회화의 존재 이유에 대한 갖가지 비평적인 담론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전영진의 작업에 등장하는 붓의 자국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붓으로 무엇을 묘사함으로써 스스로의 자국을 지워가는 것이 아니라 붓이 지나간 그 흔적 자체를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은 그림의 뒤집혀 있는 ‘Stroke(붓자국)’이라는 단어에 더욱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는 평면 위에 그려진 붓자국이 그저 붓자국(Stroke)일 뿐이라고 말함으로써 19세기의 세잔, 20세기의 피카소와 같이 예술이 예술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지도 모른다. 또는 한때 현대 회화의 거장들이 그다지도 집착했던 문제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이러한 작업은 오히려 평면으로의 회귀를 주장했던 모더니즘 작가들이 간과했던 바를 상기시킨다. 지나친 평면화가 앤디 워홀이 주장한 것처럼 회화를 그저 장식적인 ‘벽지/벽화(wall-painting)’로 축약시킬 위험을 지니지는 않는지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광활하고 오래된 물음, 이 물음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젊은 작가가 빚어낸 그림을 통해 현대회화의 본질과 의미를 살펴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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