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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데이비드 호크니의 i페인터

2011-03-16


“누가 언제 무엇을 먼저 하였는가?” 미술사의 연대기적 순서를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왜?” 그 다음이다. ‘현대미술을 누가 최초로 주도했는가’라는 ‘원조론’에 근거한 단순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누가 먼저 도입하고 시작했는가라는 단선적 원조론은 순전히 오늘의 시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편협한 시각이라는 것이다. 현대예술가는 신문물을 더 이상 창조를 하지 않는다. 다만 가져다 쓸 뿐이다. 이미 과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가져다 쓰는 것은 그냥 소비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소비에 모방과 창조가 걸려 있는 현대미술사의 선후관계가 달라지는 ‘애매모호’한 단위라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먼저 신제품을 예술에 활용한 사람이 창조자이고 뒤늦게 시작한 사람은 아류요 모방자이다. 하지만 이 세계도 발 빠르고 힘 있는 자가 이긴다는 강자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약자인 비유명작가들에겐 창조자의 칭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한 예로 미술학교에서 학생이 과제물로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아주 신선 기발한 작업을 하여 수업시간에 많은 학생들과 교수 앞에 선보였다고 하자. 그리고 이에 높은 학점을 준 교수가 자신의 작업에 도용하여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럼 교수가 최초로 작업한 사람이 된다. 기자도 좀 부르고 방송매체에도 나가고 인터넷으로 국제물 좀 타면 역사에까지 남을 가능성이 생긴다. 그런데 만약 이 교수가 세계적인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람이라면 더 할 나위 없는 기정사실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좀 더 인지도 높은 이가 전시회나 도서를 통해 선보일 때 그 힘이 비로소 신역사의 자료로 적용된다.

글 | 월간 퍼블릭아트 홍일화 프랑스통신원
사진제공 | Fondation Pierre Berge-Yves Saint Laurent ⓒ David Hockney

2007년 7월 미국에서 첫 출시된 이후 세계의 스마트폰 시장 경쟁은 더욱 더 가열되었고 각양각색의 미디어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며 신예술을 향한 손가락의 향연이 시작된다. 2008년 얼리어댑터 아티스트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는 탁자에 꽃다발을 놓은 후 침대에 걸터앉아 아이폰 ‘브러쉬’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꽃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는 내내 설렌다. 오늘은 누구에게 이 꽃그림을 선사할까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완성된 꽃그림은 인터넷으로 전송돼 세상에서 가장 신선한 꽃그림 배달 서비스로 친구에게 전송된다. 이렇게 시작된 ‘iPainting’은 매해 300여 점을 넘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모든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종이도 화판도 물감도 붓도 다 필요 없이 한 곳에 편안히 앉아 모든 것을 손가락 터치하나로 조정한다. 더 이상 작품을 보관할 넓은 공간도 필요치 않다. 매번 하얀 캔버스를 눈앞에 두고 받아야 할 백색공포도 사라진다.

2009년 여름 런던의 Annely Juda 갤러리에서의 작업을 판화 형태로 변환해 판매한 상업전시를 시작으로 그해 가을 뉴욕의 Pace wildenstein 갤러리에서의 상업전, 그리고 2010년 10월 20일부터 2011년 1월 30일 파리의 피에르 베르제-입생 로헝 제단(Fondation Pierre Berge-Yves Saint Laurent)에서 호크니의 3번째 아이폰 전시의 막을 내렸다. 풍경, 초상화, 식물과 정물 등의 iPhone 작업을 해온 호크니의 작업 중에 친구와 지인들에게 선물을 주기위한 순수성이 묻어나는 작업의 시작점인 신선한 꽃들(Fleurs Fraiches)을 주제로 판매가 아닌 전시만을 목적으로 대중에게 선보였다. iPhone과 iPad 그리고 비디오 프로젝트를 이용해 기획된 이번 전시는 호크니의 ‘브러쉬’ 작업 전반 제작과정을 선보이며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미술의 이해에 초점을 맞추었다.

iPhone 출시 이후 많은 이들이 ‘브러쉬’를 이용한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이것이 미술 대혁신이라 말하지 않았다. 아니 ‘브러쉬’는 이미 1990년대 Adobe Systems (Photoshop, Illustrator, flash, etc)을 통한 작업으로 신개념 미술로 자리를 잡는 듯 했으나 디자인으로 치부되며 순수미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예술가들의 밖으로 탈출을 가능하게 했던 튜브물감의 혁명과 빗대어 말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 이유인즉 손가락을 이용한 신체의 직접적 터치가 들어가는 숙련도를 요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즉, 예술가의 직접적인 손가락 화면 터치는 예술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실질적 애플리케이션에서의 변화는 없지만 더 좋은 작업을 만들기 위한 작가의 손가락 액션이 들어간 ‘Finger Action Painting’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특유의 풍부한 실험정신으로 피카소와 비교 될 정도의 천재성을 인정받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 선두에 섰기 때문이다. 회화, 데생, 판화, 사진, 영화, 무대장식, 일러스트레이션 등 거의 모든 매체를 통해 작품을 제작하고 74세의 나이에도 새로운 시도에 목말라 있는 그가 선택한 장르이기에 미술계는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제 수많은 작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호크니가 2008년 iPainting를 먼저 했다고 역사에 남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이것이 순수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기에 해결해야 할 궁극적 변수가 남아있다. 바로 작품의 보관방식과 가격 책정이다. 첫째로 보관방식의 경우 호크니는 작품들이 스마트폰 속에 저장되는 것을 선호한다. 그는 “만약 내 작품이 인쇄되어 나온다면 빛의 파장으로 나타내는 색상을 잃게 되는 아쉬움을 안게 된다.”고 설명한다. 만약 집에 걸고 싶다면 iPhone 자체를, 더 큰 작품을 원하면 iPad를, 그 보다 큰 것을 원한다면 iMac을 벽걸이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둘째로 가격 책정 면에서 그는 “시간적으로, 내 작업을 메일로 보내는 것에 만족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내 작업을 구매 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이 없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렇게 메일로 작품을 주는 것은 내 친구들에게 많은 기쁨을 준다.” 앙그르, 카라바지오, 얀 반 에이크 등의 거장들이 천재적 자질만이 아닌 광학의 힘을 이용해 명작을 완성했다는 주장을 펴낸 「명화의 비밀-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 , 「호크니가 쓴 호크니」 등 호크니는 대중에게 보다 쉬운 미술의 이해를 위해 많은 저서를 남긴 이론가이도 하다. 그래서인가? 그의 다양한 시도는 피카소의 것보다 더 이해하기 쉽되 가볍지 않으며 작가의 존엄성과 예술의 숭고함을 지켜내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 노력한다. 아마도 iPhone작업이 그가 시도했던 다양한 작업 중에 대중에게 미술의 이해를 위한 가장 쉬운 접근법이라 여겨진다. 아직까진 스마트폰의 가격 또한 많은 부담을 주긴 하지만 디지털 미술품 공유를 위한 최상의 도화지론 최적격이다. 아무리 사진기술이 발달했다 하여도 아직은 사진과 원화의 이미지에서 많은 차이점을 드러낸다. 그러하기에 원화를 보러 시간을 쪼개어 미술관으로 옮겨야하는 번거로움과 시간을 줄여주며 미술관 입장료 비용으로 원작과 똑같은 아니 원작을 직접 접하는 새로운 시대의 도약일지 모른다. 문학과 음악에 비해 디지털 미술품 공유는 많이 늦어진 편이다. 이제 싸이월드의 도토리처럼 혹은 핸드폰의 피처링 다운받듯 대가의 디지털 원화를 유료 다운로드 혹은 불법다운 받을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데이비드 호크니 작업을 저렴한 가격에 유료 다운로드 받는 날이 온다면 미술의 대중화는 좀 더 쉬워질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 음악시장처럼 많은 골칫거리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호크니의 꿈은 점점 더 현실화되어가고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변화와 발전 속도가 시각예술에 미치는 영향이 과연 예술가들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줘 예술의 비상이라 일컬을 수 있는가? 이번 전시가 던지는 화두이다. 호크니의 끊임없는 도전에 진심으로 박수를 친다. 하지만 전시장 속의 작품은 솔직히 많이 실망스럽다. 아직 손가락이 충분히 익숙하지 않아서는 아니라고 본다. 대중화를 위해 시간을 단축한 것도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직은 변화과정과 발전 모습을 더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시대의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많은 작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그 속도를 따라잡는 데만 허덕이고 있는 작가들 또한 비일비재하다. 적응도 하기 전에 새로운 것이 나오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창조가 아닌 적응이 현대미술의 한 단편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대중화와 다양화에는 일조를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영원성 보다 시도에 의한 순간성에 머물러 버리는 피상적 작업으로 남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글쓴이 홍일화는 경기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Ecole des Beaux-Arts를 졸업하였다. 다수의 권위있는 기획전에서 작품세계를 인정받았고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Quimper 시립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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