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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불혹(不惑); 속세에 정신을 잃고 판단을 흐리지 않음

2011-09-27


십자가에 매달린 그 남자는 고통스러워 보인다. 캔버스를 꽉 채운 얼굴은 극한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내면의 굴곡을 투영한 눈물이 뺨을 타고 한 방울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의 강렬한 고뇌와 슬픔은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다.

글 | 월간 퍼블릭아트 조숙현 기자
사진 | 서지연

자화상, 정치인, 팝 스타 등 줄곧 인물화를 탐구해온 화가 강형구가 조심스럽게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예수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그’ 얼굴은 아니다. 작가는 30년 가까이 가톨릭 신자로 살아왔지만 종교적인 테마를 인물화로 끌어들이는데 있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그렇지만 예수를 실제로 본 적은 없다. 그러므로 기존의 종교화에 등장하는 예수의 얼굴을 그려 그것을 예수라고 믿게 하는 것은 혹세무민(惑世誣民)이다. 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예수의 얼굴을 그리지 않고 예수의 고통을 이 남자의 얼굴로 표현함으로써 성스러운 존재의 보편에 집중한다.”


강형구에 관한 오해와 진실 1. 그는 극사실주의자가 아니다. 사실주의가 눈앞에 보이는 실체를 시각적으로 복사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라면, 그는 반대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상황을 오브제로 삼는다. 사진처럼 정교해 보이는 그의 인물화들은 사진을 대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다. 그의 그림은 결코 인물의 표피를 모방하는 데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자화상을 포함해 그가 그린 그림 속 인물은 인물의 히스토리와 그 인물이 살던 시대의 향수까지 감상자에게 전달한다. 그는 인물의 내면에 담긴 이야기들을 소환함으로써 인물화를 매개로 관객들의 상상력과 추억을 건드린다. 이런 논리로 추적했을 때 그가 유명인을 그리는 이유는 간단해진다. 고유명사로 일컬을 수 있는 심벌, 심벌을 시각화하는 화가, 그리고 시각화된 심벌을 감상하는 관객 3국면이 심벌의 실체를 중심으로 어떤 내면적 합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가 그린 마릴린 먼로는 섹스 심벌이자 1950년대 미국 팝 문화의 아이콘이지만 강형구는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마릴린 먼로의 표정을 제시함으로써 그녀의 내면적인 무게와 그녀가 풍미했던 사회의 시대를 곧바로 관객 앞에 호출한다. <마더 테레사> 역시 얼굴 전체를 손으로 가리고 있는 형상이지만, 오히려 얼굴을 감싼 그 주름진 손이 그녀의 추측하는데 큰 실마리로 작용한다. 이 때 테레사 수녀의 손은 그녀의 실체를 대표하는 총체이고, 그는 이것을 최대한 정확한 시각적 정보로 전달하고자 사실주의적 기법을 차용하게 된다.


강형구에 관한 오해와 진실 2. 그는 개인과 인물이 아니라 사회를 그려내는데 주력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간단한 트릭이다. 그의 캔버스는 결코 한 명 이상의 인물을 허용하지 않지만, 그 거대한 얼굴들의 집합은 결국 사회의 상(想)을 담당한다. 인물의 얼굴과 표정에 집중하되, 그 얼굴이 사회의 상호적 영향력을 주고받는다는 전제는 이 집합이 결국 인물이 속한 사회를 다룬다는 공식을 성립시킨다. 일례로 몇 해 전 열렸던 전시에서 강형구는 존 F. 케네디, 아브라함 링컨을 선보인 책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것은 그의 인물화가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를 ‘펼쳐놓는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 의도와 궤를 함께 한다. 한편 그가 빈센트 반 고흐, 레오나르도 다빈치, 램브란트 등 예술가 시리즈를 그리는 이유 역시 한 국가와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가장 투명한 거울이 예술가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고호가 살던 시대의 네덜란드의 국왕의 얼굴은 알지 못하지만 고호의 불행한 삶과 그에게 관대하지 않았던 기억한다. 결국, 그가 정말로 그리고 싶은 것은 어떤 아이콘의 모방이 아닌 아이콘의 집합, 즉 보다 큰 맥락에 관한 이야기이다.


강형구에 관한 오해와 진실 3. 그는 똑같은 그림을 두 번 다시 그리지 않는다. 자화상을 예로 들어보자. 강렬한 붉은 물감을 배경으로 삼은 자화상은 인생이라는 파도에서 자칫 균형을 잃을 수 있는 자신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런가하면 사뭇 종교적인 색채마저 풍기는 경건한 자화상은 그의 삶의 주춧돌이 될 수 있는 구심이 되어 삶의 이상향을 제시하며 조율한다. 이러한 이면에는 인물에 대한 다양한 각도와 생김새를 구사하기 위한 노력들이 존재한다. 그는 영화를 보다가 등장인물에서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얼굴을 발견하곤 스케치로 옮기기도 하고, 인물의 다양한 각도와 조명을 연구하기 위해 직접 조형물을 제작하기도 한다. 예술품이라는 것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고, 작가는 영원히 한 화풍으로 결박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예술을 대하는 그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다.



강형구에 관한 오해와 진실 마지막. 그는 이제 불혹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올해 그의 나이는 58세. 이것은 공자가 지칭했던 불혹의 원 수치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혹의 원뜻을 생각해 볼 때, 그는 이제야 스스로 본인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라고 평가한다. 금이든 은이든, 예술가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이 작가를 미혹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강형구는 1954년 태어나 1980년 중앙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10년 동안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한 뒤, 본격적으로 전업화가로 전향했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영은미술관,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과 서울에서 개인전 및 단체전시를 가진 바 있으며,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2009년 <살바도르 달리> 가 경매가 88만 홍콩달러, <반 고흐> 가 120만 홍콩달러를 기록하는 등 좋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경기도 광주 영은미술관 부속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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